이건우 (윤리교육과)
이건우 (윤리교육과)

펜을 드는 일은 언제나 힘이 드는 일이다. 손끝에서 흘러나온 찰나의 언어들을 세상에 붙잡아두는 일. 그 언어들로 하여금 나의 세상의 한쪽을 짊어지게 하는 일. 시를 쓴다는 것은 내게 이런 일들이라서, 시를 읽고 또 시를 쓸수록 시를 쓰는 일은 내게 더욱 버거운 일이 된다.

그러나 기어이 펜을 들게 하는 힘이 있다. 그것은 믿음의 힘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나를 채워줄 수 있을 거라는, 그렇게 넘치는 그림자를 질질 흘리며 걸어가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의 힘이다. 나는 시가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이뤄져 있을 거라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펜을 들게 하고, 그림자를 사랑하게 한다.

그림자를 사랑하는 일은 시를 쓰는 일과 같다. 그림자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지만 나는 모른 체한다. 그림자에도 질량이 있다고 믿는다. 나의 그림자의 질량이 나의 영혼의 질량이며, 나의 언어의 질량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림자를 사랑하는 일은 시를 쓰는 일과 같다고 믿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그림자는 어떤 자국을 남기게 될까.

한때 나는 왜 시에 모든 것을 걸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에 스스로를 미워하고 책망하곤 했었다. 시를 앞에 두고 주저하다 주저앉고 다시 일어났다 주저앉기를 반복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에 인생을 걸지는 못해도 시와 더불어 걷는 삶이라면 꽤 훌륭한 삶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내 마음에 들어앉고 있다. 시는 삶을 희생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채울 것을 요구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설령 그림자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앞으로도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닐 시를 사랑할 수 있게 격려를 보내주신 『대학신문』과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린다. 내 곁을 스쳐 간, 스쳐 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께 감사드린다. 그토록 많은 스침의 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 순간들이 오래도록 나의 그림자에 남아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솔에게 크나큰 감사와 사랑을 드린다.

 

이건우(윤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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