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회 대학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우수작 수상 소감
제61회 대학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우수작 수상 소감
  • 대학신문
  • 승인 2019.12.08 07:34
  • 댓글 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현서(전기·정보공학부)
박현서(전기·정보공학부)

초등학교 때 메이플스토리를 했다. Ti없ol맑은I, ddZI존단도dd 같은 아이디를 만들고 주사위를 굴리면 캐릭터 능력치가 나왔다. 전사를 하려는 애는 힘이, 도적을 하려는 애는 민첩성과 운이, 법사를 하려는 애는 지능이 높게 나올 때까지 원하는 직업에 맞는 능력치를 위해 계속 주사위를 굴렸다. 스피커에선 알아듣는 게 머더퍼킹 뿐인 에미넴의 루즈 유어셀프, 그리고 ‘디스 에인 어 송 포더 브로킨하티드’란 가사로 시작하던 본 조비의 잇츠마이라이프가 흘러나왔다. 수련회 장기자랑 때 이걸 불러서 여자애들의 환호를 받는 상상을 했다.

메이플은 주사위 굴릴 기회라도 줬다.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나는 사람이란 직업이 내 능력치에 그다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무늘보나 가을바람, 자하연냥이 정도가 괜찮아 보였다. 이불에 누워서 하고많은 것 중 어찌하여 사람 같은 걸 하고, 수많은 일과 마주하여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그리하여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을 겪으며 살아야 하는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렀고 전사와 도적, 법사였던 애들이 다른 존재가 돼 가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다. 다들 어떤 주사위를 굴렸는지 몰라도 어떻게든 자기 선택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누구는 서울에 남았고 누구는 오창, 망포, 화성, 이천, 세종, 평택, 대전, 광주, 포항에 자리를 잡고 누구는 외국으로 나갔다. 사람이라는 직업이 맞지 않는 사람답게 남의 일에 별 관심이 없는 내게, 그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결과를 얻을지도 별 관심 가지 않는 이야기다. 그래도 내가 찰나라도 좋아했던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든 멘솔 캡슐을 깨물며 인생 좆같다거나 그때 그러지 말 걸 그랬다며 힘들어하지는 않길 바란다.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생각할 정도니 그들도 내가 그러진 않기를 바랄 거라고 기대해 본다. 그럼 됐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방식대로 하고 싶었는데 영화나 웹툰은 필요한 게 너무 많았다. 텍스트를 주물럭거리며 마음에 들게 고쳐 나가는 단순 노동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사는 것도 비슷하겠지. 마음에 들게. 단순하게. 즐겁게.

떠다니던 문장들이 잠시 누울 이불을 깔아주신 『대학신문』 관계자분들과 심사위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연말 저녁의 들뜬 서울대입구역과 신촌 거리에선 머라이어 캐리의 올아이원트포크리스마스이스유가 울려 퍼지겠지. 다들 건강하면 좋겠다. 동년배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 그 길을 지나갈 올더머더퍼킹브로킨하티드피플에게 이 글을 바친다.

 

박현서(전기·정보공학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7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안찬호 2020-05-09 22:21:24
응원합니다

때로미 2019-12-18 01:32:08
사람이라는 직업이 내 능력치에 맞지않는다는 말 깊게 동감하는 바입니다 다음생엔 고양이로 태어날꾸양

곽준형 2019-12-16 12:28:03
동그랗고 부드러운 것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듯한 문장입니다 좋네요

유명채 2019-12-11 06:10:16
학생회관 중앙동아리 생활을 오래 하셨고, 집에 고양이를 키우며, 설문조사의 비고란에 한 문장짜리 감상을 쓰는 타입이실 것 같네요.

포스 2019-12-10 01:04:50
fos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