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빈 (경제학부)
이재빈 (경제학부)

월~토를 수학 강사로 일하고 하루를 바짝 쉬는 날, 우연히 공고를 봤습니다. 아점을 먹고 부랴부랴 쓰기 시작해 23시 54분에 겨우 완성해서 보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저녁 먹는 것도 잊고 낄낄대며 쓰다 보니 스스로가 이야기를 지을 때 가장 몰입하고 행복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마감일에 일필휘지로 썼지만 「쥐잡이」의 발상은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자리해 있었습니다. 가장 큰 영감의 원천은 소련의 SF 소설 『개의 심장』이었습니다. 그 작품은 소비에트형 인간이 개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합니다. 사회주의의 인간이 개와 같다면 자본주의의 인간은 쥐와 같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라그랑쥐 함수로 경제학 문제들을 풀면서 떠올랐습니다. 경제학은 자유로운 인간을 말하지만 그 자유는 효용이 최적화되도록 세팅된 경로를 따라서 움직이는 자유입니다. 그 자유는 실험실의 미로에 놓인 쥐가 더 큰 치즈 덩어리를 향해 달려가는 자유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 만에 학교에 돌아왔던 해에 14동 인문소극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전에 없던 훌륭한 극장이었습니다. 다음 해 총연극회의 봄 공연 〈벚꽃동산〉에서 배역을 맡았습니다. 그 무대에서 희곡이라는 양식의 글쓰기를 처음 접했습니다. 홀린 듯이 안톤 체호프의 도시, 상뜨뻬쩨르부르그로 떠나 일 년을 뻗대다 돌아왔습니다. 연극 포스터로 가득 차있던 상뜨빼쩨르부르그의 지하철 역 안을 거닐던 걸음걸음이 희곡을 쓰고 싶다는 욕망에 다달았습니다. 쓰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이 테란이고 시가 저그라면, 희곡은 프로토스와 같다고. 다른 종족들과 다르게 건물을 소환하고 유닛을 워프하는 외계 종족 프로토스의 영토처럼 무대라는 공간은 다른 운동 법칙이 작동하는 제3의 행성으로 느껴집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옛날 옛적 프로토스에 운명적으로 손이 잡아끌렸듯이, 희곡은 저의 문학적 종족이 되었습니다. 프로토스로 우승하기 위해 매 가을마다 전례 없는 자신만의 전략들(가령 더블-넥서스)을 들고나와 분투했던 옛 스타-게이머들처럼, 저만의 새로운 스타일이 담긴 재밌는 희곡을 쓰고 싶습니다.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2019년에 프로토스를 들먹이는 수상소감을 남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재빈(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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