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폴리스’와 ‘자하연’은 『대학신문』에서 이름 붙였답니다
‘아크로폴리스’와 ‘자하연’은 『대학신문』에서 이름 붙였답니다
  • 정인화 기자,최해정 기자,강지형 부편집장
  • 승인 2019.12.08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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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대학신문』 코너명의 역사

마로니에

마로니에라 하면 혜화역 인근의 마로니에 공원이 생각날 것이다. ‘이’ 마로니에는 ‘그’ 마로니에가 맞다. ‘마로니에’라는 코너는 마로니에 공원의 마로니에 나무에서 유래됐다. 1959년 당시 문리대와 법대는 혜화에 위치해 있었고, 당시 『대학신문』의 편집국장이었던 법대 김회한 교수가 문리대 뜰(지금의 마로니에 공원)에 선 큰 키의 마로니에 나무를 보고 이 코너를 창안했다. 

마로니에는 1959년 9월 28일 자 신문에 처음 등장했다. 물론 이전에도 마로니에의 전신 격인 수많은 칼럼 코너가 존재했다. 대표적으로는 1952년 2월 4일 『대학신문』 창간호부터 함께했던 ‘장침단침’이 있다. ‘장침단침’은 전쟁이라는 폐허 속에서도 학문, 문학, 사회와 대학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외에도 ‘페리칸의 변’ ‘벤취여담’ ‘뭉수리’ 등이 마로니에가 나오기 전까지 마로니에의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결국 지면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코너는 마로니에다. 마로니에는 초기 익명으로 운영됐지만 2003년에 들어서며 『대학신문』의 대학원생 간사가 쓰는 코너로 정착했다.

첫 마로니에. 마로니에 나무와 코너에 대한 설명과 함께 “상아탑 속의 마로니에는 볼 줄 알며, 들을 줄 알며,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아울러 갖추었을 것이니 그대는 고발하라!”라고 적혀 있다.
첫 마로니에. 마로니에 나무와 코너에 대한 설명과 함께 “상아탑 속의 마로니에는 볼 줄 알며, 들을 줄 알며,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아울러 갖추었을 것이니 그대는 고발하라!”라고 적혀 있다.

 

아크로의 시선

1975년 3월 31일 자 『대학신문』의 ̒대학쌀롱̓ 코너에 학생 시위와 문화 공연의 중심지였던 중앙도서관 앞 광장에 ‘아크로폴리스’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대학쌀롱을 작성한 신봉길 기자는 다른 기자의 독촉 속에 원고를 작성하던 중 중앙도서관 앞 구릉의 경치에서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가 연상돼 해당 기사를 작성하게 됐다. 2006년 3월 6일부터 본래 대학원생들의 칼럼을 싣던 ‘대학원에서’ 코너가 대학원생과 학부생으로 필자 층을 넓혀 ‘아크로의 시선’으로 개편됐다. ‘아크로’는 아크로폴리스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현재 아크로의 시선은 다시 필자를 대학원생으로 한정해 다양한 주제에 대한 대학원생의 견해와 감상을 전하고 있다. 한편 1981년 학내 구성원의 칼럼으로 이뤄진 ‘아크로폴리스’ 코너가 신설돼 한동안 유지됐지만, 이는 현재 아크로의 시선 코너와는 무관하다.

1975년 3월 31일 자 ‘대학쌀롱’. “관악캠퍼스 중앙도서관 앞 광장은 …(중략)… 집회가 있을 때마다 학생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자 어떤 학생은 이곳을 ‘관악의 아크로폴리스’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집회 때는 자주 자유토론도 벌어져 옛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이 생각났기 때문이라고.”
1975년 3월 31일 자 ‘대학쌀롱’. “관악캠퍼스 중앙도서관 앞 광장은 …(중략)… 집회가 있을 때마다 학생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자 어떤 학생은 이곳을 ‘관악의 아크로폴리스’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집회 때는 자주 자유토론도 벌어져 옛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이 생각났기 때문이라고.”

 

자하연

1975년 7월 14일 자 ‘새 캠퍼스 새 풍물’. 당시 『대학신문』에는 갓 완성된 관악캠퍼스가 낯선 학생들을 위해 관악캠퍼스의 주요 건물들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 “누군가가 이름지어 ‘아크로폴리스’라고 했다 …(중략)… 그것이 어느새 학생들 사이에서 이곳을 통칭하는 공식 명칭처럼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1975년 7월 14일 자 ‘새 캠퍼스 새 풍물’. 당시 『대학신문』에는 갓 완성된 관악캠퍼스가 낯선 학생들을 위해 관악캠퍼스의 주요 건물들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 “누군가가 이름지어 ‘아크로폴리스’라고 했다 …(중략)… 그것이 어느새 학생들 사이에서 이곳을 통칭하는 공식 명칭처럼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1975년 8월 25일을 기점으로 교수의 칼럼을 실어오던 코너 ‘함춘풍’의 이름이 ‘자하연’으로 바뀌었다. 1974년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뒤 ‘인문대 앞 연못’이라 불렸던 곳에 『대학신문』이 자하연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며 코너의 제목도 함께 바꾼 것이다.

자하연이라는 이름은 관악캠퍼스의 옛 지명 ‘자핫골’에서 따왔으며 자핫골은 조선시대 문인이자 대시인인 ‘자하 신유’가 살았다는 데서 비롯됐다. 당시 편집자는 새로운 코너명을 소개하며 “자하연의 연은 못을 말하며 지성과 젊음의 연못인 대학에 이 칼럼이 던지는 파문과 그 반향을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대학신문』이 붙인 자하연이라는 이름은 지금까지도 인문대 앞 연못의 공식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자하연 코너는 서울대 강사와 직원으로부터 학내외 사안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담은 글을 기고 받으며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

첫 자하연. ‘홍’이라는 필자가 ‘길의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쓴 수필이 실려 있다. 글의 말미에 “오작교 가는 길은 롤러스케이트의 정감으로 이어져야 하고…”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작교는 지금은 없지만 과거 자하연에 있었던 돌다리의 이름이다.
첫 자하연. ‘홍’이라는 필자가 ‘길의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쓴 수필이 실려 있다. 글의 말미에 “오작교 가는 길은 롤러스케이트의 정감으로 이어져야 하고…”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작교는 지금은 없지만 과거 자하연에 있었던 돌다리의 이름이다.

 

맥박

첫 맥박. 장소영 기자의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사회의 특권 집단이면서도 동시에 저항 집단인 대학의 특성과, 그 안의 언론이 수행해야 할 역할을 고찰하고 있다.
첫 맥박. 장소영 기자의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사회의 특권 집단이면서도 동시에 저항 집단인 대학의 특성과, 그 안의 언론이 수행해야 할 역할을 고찰하고 있다.

1952년 개간한 『대학신문』은 당시 여느 신문이 그러했듯 모두 세로로 쓰였다. 시간이 지나며 차츰 가로로 편집된 기사가 등장했는데, 개간한 지 38년 만인 1989년 8월 28일 자로 『대학신문』은 컴퓨터를 이용한 전면 가로 편집을 시작했다. 이와 함께 등장한 코너가 ‘맥박’이다.

당시 첫 맥박을 작성한 장소영 기자는 “또 하나의 마디가 시작되는 순간이다”라며 전면 가로 편집의 시작을 알리고, 대학에서 언론의 역할을 맡은 『대학신문』의 정체성을 성찰했다. 초기 맥박의 필자에 대해서는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아 맥박을 작성한 사람이 기자인지 데스크(편집장, 부편집장, 각 부서 부장)인지 알 수 없다. 이후 1998년 3월 2일부터 맥박은 데스크의 몫이 됐다. 그렇게 『대학신문』의 변화를 알리며 등장한 맥박은, 이제 데스크가 사회의 ‘맥박’을 짚어 보는 코너로 자리 잡았다.

 

 

대학쌀롱

첫 대학쌀롱. “대학쌀롱을 개방합니다. 교수들의 연구생활에서 솟아오른 우감이랄까 전문분야의 가벼운 일가언 같은 것을 400자 내지 600자 정도로 간명하게 압축하여 투고하여 주심을 바랍니다.”라는 편집자의 말이 적혀 있다. 첫 대학쌀롱에는 고 김두종 교수의 “의(醫)는 인술이 아니라 인도적 자각의 기술이며 고대의 기술이 아니라 훌륭한 근대의 기술”이라는 짧은 소고가 적혔다.
첫 대학쌀롱. “대학쌀롱을 개방합니다. 교수들의 연구생활에서 솟아오른 우감이랄까 전문분야의 가벼운 일가언 같은 것을 400자 내지 600자 정도로 간명하게 압축하여 투고하여 주심을 바랍니다.”라는 편집자의 말이 적혀 있다. 첫 대학쌀롱에는 고 김두종 교수의 “의(醫)는 인술이 아니라 인도적 자각의 기술이며 고대의 기술이 아니라 훌륭한 근대의 기술”이라는 짧은 소고가 적혔다.

‘대학쌀롱’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63년 전인 1956년 10월 8일에 만들어졌다. 대학쌀롱은 이후 폐지와 부활을 반복하다 1961년이 돼서야 지면에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대학쌀롱은 초기 학문적인 성격을 띠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학문을 다루는 코너보다는 사회 이슈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자리로 변해 갔고, 1990년대에 들어서며 풍자적 성격이 매우 강해졌다. 

대학쌀롱은 본래 한편의 글로 구성됐으나 1996년부터 서너 편의 짧은 글이 하나의 제목으로 실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오며 대학쌀롱은 더욱 짧아졌고 최근에는 ‘드립’에 가까운 글이 됐다. 아울러 지금은 교수가 아닌 학생 기자들이 대학쌀롱을 담당하고 있다. 교수의 학문적 기고문에서 출발해, 이제는 학생 기자가 사회를 향한 비판 의식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코너로 변모한 것이다.


『대학신문』은 정보 전달의 창구지만, 동시에 학내 구성원들이 의견을 교류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기도 하다. 『대학신문』의 다양한 코너들은 얼핏 봐서는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모두 나름의 역사와 역할, 그리고 목적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학내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든, 『대학신문』에는 그런 당신을 위해서만 준비된 의견 코너가 있다. 뭔가를 주장하고 싶거나 알리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대학신문』의 문을 두드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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