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신문』 주간 시절
나의 『대학신문』 주간 시절
  • 대학신문
  • 승인 2019.12.1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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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간 회고
황동규 전 주간(1991.8.17~1992.10.11),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황동규 전 주간(1991.8.17~1992.10.11)/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먼저 『대학신문』 2000호 출간을 축하한다. 좋은 일도 있었고 궂은 일도 있었을 것이다. ‘논어’ 식으로 하자. 없어서는 안 될 의미 있는 일을 2000번 해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내가 주간을 맡은 때는 좋은 때가 아니었다. 신문사 자체가 지금처럼 충분한 공간을 가지지 못하고 그렇지 않아도 비좁다는 도서관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또 지금처럼 신문사에서 조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촌 로터리에 있는 인쇄소에서 다른 대학 기자들과 차례를 다퉈가며, 때로는 자정을 넘기며, 조판을 했다. 그 때문만이 아니었다.

지금은 학생 기자들과 주간 및 자문 교수들과의 사이가 아주 좋다고 들었다. 하긴 그때도 원천적으로 사이가 뜨악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금요일 부장 기자들과 점심을 같이하며 다음 신문의 기획을 끝냈는데, 기자 누군가가 학생회에 가서 말을 듣고 와서는 토요일 저녁 신촌 인쇄소에서 불쑥 기획을 바꿔야겠다고 할 때가 꽤 있어서 주간을 괴롭혔다. 학생 기자 측의 요구는 늘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서울대 학생회가 받아들인 전체 대학 운동권의 일방적인 주장을 내세우는 때가 많았다. 그러나 서울대 학생 기자는 역시 서울대 학생 기자! 자정이 가까워지면 예외 없이 학생과 교수를 비롯한 서울대의 구성원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종안을 만들 수 있었다.

잘한 일도 있었고 잘못한 일도 있었을 것이다. 잘했든 못했든 젊었던 그때가 그립다. 자정 넘어서까지 고된 일을 하고도 다음날 아침 글을 쓰고 강의 준비를 할 수 있었던 젊음. 학생 기자들과의 소주 맞 대작까지 포함된 그 젊음을 통해 조금조금씩 쌓아간 상호 간의 신뢰가 있었다. 소련 연방의 해체 후 얼마 안 된 정신적인 혼란기여서 나를 찾아와 지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내 의견을 경청한 기자들도 더러 있었다. 기억된다. 당시 한국 대학의 신문으로는 유일하게 『대학신문』이 주최하는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전교생의 인기투표를 하도록 한 것. 결과를 조작하지 않겠다는 학생 기자들의 약속과 그것을 믿고 추진한 주간의 결심에서 그 일은 성사를 보았다. 투표가 끝날 때까지 문교부(교육부)측의 거의 입에 담기 힘든 반대 통문들과 교수들의 진심에서 우러난 신상 걱정을 들으며 일을 끝낼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그 신뢰였다.

지금은 학생 기자와 주간 사이의 신뢰는 더욱 굳을 것이다. 대학 언론의 자유는 더 천부적인 것이 됐을 것이다. 앞으로 『대학신문』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의미 있는 ‘대학’ 신문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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