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영(미학과 학사졸업)
신세영(미학과 학사졸업)

 

등교하는 학생들로 가득 찬 버스를 타고 정신없이 아침을 시작했고, 자동차로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멀미를 하며 저무는 해를 바라봤습니다. 모두에게 익숙한 일상이겠지요. 저에게도 너무나 당연한 하루였던 그런 시간들이 흘러 곧 서울대학교 학부생 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졸업’이라는 문 앞에 서서 저는 이제야 한숨 돌리고, 그동안 지내 온 시간을 되돌아봅니다. 더 많이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게 해 준 좋은 친구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치고, 삶의 방향을 바꾸게 한 교수님과의 풍요로웠던 대화들도 떠오릅니다. 참 멋지고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늘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듯이 학기 중 과제와 시험에 치여 이따금 지치곤 했습니다.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도 그 무게를 더했습니다. 이런 대학 생활에서의 잔잔한 파도를 무사히 넘어 온전히 완주할 수 있도록 저를 든든하게 지탱해 준 것은 방학마다 떠났던 ‘여행’이었습니다.

두 번째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을 무렵,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저의 손을 잡고 화창한 6월 어느 날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다녀온 엄마의 영향 때문이었을까요. 잠시 숨통을 트고 일상과 동떨어진 또 다른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던 엄마와의 짧은 여행은 저에게 아주 큰 힘이 됐습니다. 말 그대로 일상 탈출의 달콤함을 맛보게 됐던 것이지요. 덕분에 무사히 두 번째 대학 입시를 견디고 서울대학교에 오게 됐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입학한 1년 동안은 새내기로 입학 동기들과 선배님, 조교님, 교수님들의 친절한 도움을 받으며, 대학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어느새 2학년이 되고 나니 대학 생활의 무미건조한 일상에 매몰돼 가는 저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반복적인 생활 패턴에서 밀려드는 마음속의 중압감과 현실적 무게는 지치고 주저앉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곧 다가올 방학에 떠날 여행을 계획하고 상상하며 다시 기운을 내어 현실의 대학생으로 모든 일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제 자신을 다독였습니다. 저에게 방학마다 한 달 정도 아주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여행은 대학 생활을 생기 넘치는 알찬 시간들로 채워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친구들과 떠난 흥겨운 여행들도, 혼자서 떠났던 자유로운 여행들도, 모두 말입니다. 여행을 떠났던 낯선 공간에서 직접 경험했던 저만의 특별한 순간들이 마음속 동경과 이상의 별이 돼 또 다른 성장을 꿈꾸게 했고, 일상으로 여긴 대학 생활을 한 걸음씩 성실하게 걸어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졸업을 앞두고 떠나온 여행을 하고 있는 지금, 비엔나에서 프라하로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 이 글을 쓰며 깨달았습니다. 대학 생활 자체가 평생 제 곁에 있는 일상이 아니라 시작과 끝이 있는 특별한 시간, 즉 여행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제가 만났던 사람들, 제가 선택한 많은 일들, 제가 공부했던 아름다운 것들이 다른 나라에서 새긴 순간의 빛보다 마음속 깊이 하나하나 축적돼 더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대학교 합격이라는 비행기 티켓을 얻고 그 순간부터 시작된, 계획을 세울 수조차 없는 긴 여행을 떠났던 것입니다. 제 아름답게 빛나는 청춘의 시간 동안 서울대학교에서 평생토록 잊지 못할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이제 그 여행이 끝나 갑니다. 한편으로는 아쉽고 한편으로는 무사히 이 여행을 마친 제가 참 대견하기도 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날 준비를 마치면 저는 또 다른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떠나겠지요. 오래도록 추억할 ‘서울대학교’라는 여행을 마음에 가득 품고서 말입니다.

 

신세영

미학과 학사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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