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생존경쟁의 현장으로 나가는 졸업생들에게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생존경쟁의 현장으로 나가는 졸업생들에게
  • 대학신문
  • 승인 2020.02.2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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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명예교수(경제학부)
이준구 명예교수(경제학부)

대학의 문을 나서는 여러분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딛게 됩니다. 이 낯선 세계는 미리 정해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거대한 불확실성의 세계입니다. 여러분은 좋든 싫든 이 세계로 뛰어들어가 갖가지 불확실성과 씨름해 나가야 합니다. 대학에서는 여러분들을 이끌어주는 교수가 있었고, 배움의 길을 함께 걷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홀로 그 불확실성의 세계를 헤쳐나가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가야 할 길을 보여 주는 지도도 없고, 안전한 길로만 인도해 주는 안내자도 없습니다.

최근 급속한 기술 발전의 영향으로 인해 여러분들이 직면하게 될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듯, 가까운 장래에 인공지능(AI)이 수많은 종류의 일을 인간으로부터 빼앗아 갈 것입니다. 지극히 예외적인 몇 가지 경우를 빼놓고는 어느 직업도 인공지능의 확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는 여러분이 대학 문을 나서면서 선택한 직업 그 자체가 멀지 않은 장래에 사라지고 말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이런 정도의 불확실성은 과거 어느 세대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가히 혁명적인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자신의 삶에서 불확실성을 더 크게 만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대학 문을 나서면서 들어간 직장에서 평생 일하게 될 수 있을까요? 나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아주 적다고 봅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거의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분의 세대는 거의 모두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일생 동안 직장을 몇 번씩 옮기는 양상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직장을 옮길 때마다 여러분이 또 다른 종류의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요.

여러분은 이 불확실성의 세계를 성공적으로 헤쳐나갈 만반의 준비를 하셨습니까? 이 물음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불과 몇 되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안에 휩싸여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나 자신도 몇십 년 전 여러분과 똑같은 불안을 느끼며 대학의 문을 나선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때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직면할 또 하나의 커다란 도전은 치열한 생존경쟁입니다. 대학에서도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생존 그 자체를 좌우할 정도의 격렬한 경쟁은 아닙니다. 기껏해야 학점을 둘러싼 경쟁 혹은 친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경쟁 정도가 고작이겠지요. 그러나 사회에서의 경쟁은 때때로 나와 너 둘 중에서 누가 살아남느냐는 수준의 살벌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회의 문에 들어서자마자 여러분들은 이 치열한 생존경쟁의 소용돌이로 휘말려 들어갈 것입니다. 

공동체로서의 대학은 기본적으로 관용의 분위기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설사 어느 누가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학칙을 위반한 정도의 큰 잘못이 아닌 이상 용서를 해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대학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웬만한 잘못은 주위에서 눈감아 주겠지라는 안이함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에 들어간 여러분은 교수와 친구들이 아니라 직장의 상사와 동료들에 둘러싸인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 새로운 집단의 사람들과 맺는 인간관계는 과거에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동안 대학은 여러분에게 일종의 온실과도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 덕분에 여러분은 거친 바람과 모진 눈비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온실 안의 모종이 언제나 그 속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싫더라도 두렵더라도 언젠가는 밖으로 옮겨져 대지에 뿌리를 박고 거친 바람과 모진 눈비에 맞서야만 합니다. 온실 안에서 자란 나무는 온실 천장의 높이 이상으로 자랄 수 없습니다. 대지에 굳게 뿌리를 박은 나무만이 하늘을 찌르는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동안 안주해 오던 대학이라는 온실을 떠나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을 뿐 아니라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하는 곳으로 여러분을 떠나보내는 심정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낯선 세상을 성공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한 것 같아 불편한 마음입니다. 나는 다만 여러분의 젊은 패기를 믿어 보려고 합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여러분의 젊은 패기가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힘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서울대학교를 떠나는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학교에 들어오게 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오직 소수에게만 허용된 특권입니다. 그 특권을 누린 여러분은 큰 행운을 얻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여러분은 사회의 도움 덕분에 교육에 드는 경제적 부담이 크게 덜어지는 행운까지 누렸습니다. 그 행운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무엇을 요구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는 것이 내 간곡한 부탁입니다.

여러분은 모두가 인정하는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입니다. 엘리트라는 타이틀이 영광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영광과 더불어 사회적 책무라는 무거운 부담도 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모두가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트라고 해서 여러분의 삶이 다른 사람들과 달라야 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마음 어느 한구석에 ‘사회적 책무’라는 말을 고이 간직해 놓고 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준구 명예교수

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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