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째 공감을 얻지 못한 도서정가제
17년째 공감을 얻지 못한 도서정가제
  • 김대은 기자
  • 승인 2020.02.2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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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2일(수), 코엑스 스타트업브랜치에서 뉴스페이퍼·독서신문·웹툰인사이트 등 3개 언론사 및 ‘완전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생태계 모임’(완반모)의 주최로 ‘(완전) 도서정가제 2020 언론사/완반모 초청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개정 도서정가제에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함께 모인 첫 토론회다. 도서정가제 찬성 측에는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가, 반대 측에는 배재광 완반모 대표가 발표자로 나섰으며 대학생 3인 및 이재민 만화평론가가 패널로 참여했다. 이들은 도서정가제 실시 이후에 나타난 부작용과 앞으로 도서정가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논의했다.


도서정가제는 도서의 판매 가격을 정가 그대로 유지하도록 할인을 제한하는 제도다. 2003년에 처음 도입됐을 때에는 할인율을 19%로 제한했으나, 2014년 11월 개정으로 할인율 제한이 15%로 강화됐다. (『대학신문』 2014년 10월 6일 자) 현행 도서정가제는 2014년 11월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할 것으로 개정됐지만 3년이 더 연장된 것으로, 2020년 11월 재개정을 앞두고 있다.


완전 도서정가제 도입해야

시민들이 도서정가제에 대한 각종 유언비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지적됐다. 아직 소비자가 도서정가제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등을 중심으로 도서정가제에 관한 소식이 과장되거나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2019년 10월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도서정가제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21만 명가량의 동의를 얻었다. 해당 청원은 도서정가제 때문에 책값이 크게 올랐다며 도서정가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했지만,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2014년에 정가제를 개정한 후로 4년간의 책값 인상률이 22%에서 5%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웹툰, 웹 소설 등 전자 출판물에도 도서정가제가 적용될 것이라는 우려도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ISBN*이 발급되지 않으면 도서정가제가 적용되지 않기에, ISBN을 발급하지 않아도 되는 디지털 콘텐츠는 도서정가제를 따를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백 대표는 “전자책에 도서정가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일부 공문이 내려간 것 때문에 오해가 가중된 측면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도서정가제가 제대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완전 도서정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완전 도서정가제는 모든 도서를 일체 할인 없이 정가에 판매하는 제도로, 이는 도서 할인율을 15% 이내로 제한하는 현 제도를 강화하는 방향이다. 서점에서 할인이 가능한 현 제도하에서는 출판사가 도서 할인율만큼 미리 책값을 올려 정가를 정하지만, 완전 도서정가제로 할인을 원천 금지하면 출판사가 정가를 미리 올려받는 현상을 예방할 수 있다. 백 대표는 “현재 도서정가제는 정가제라기보다는 ‘할인 제한제’에 가깝다”라며 온전한 도서정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도서정가제 위반에 따르는 과태료 300만 원의 가벼움도 지적됐다. 백 대표는 “현 과태료는 대형 서점 입장에서는 큰 액수가 아니다”라며 “액수를 늘리고 과태료 대신 벌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취지는 좋으나 부작용 속출해

반대 측에서는 도서정가제가 도서 구매를 억제해 지역 서점에 오히려 피해를 준다고 맞섰다. 상품의 수요가 감소하면 가격을 낮춤으로써 적정 가격을 찾아야 하는데, 사회 전반적으로 독서에 대한 흥미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도서 가격이 하락하는 걸 인위적으로 제한하면 비싼 가격에 책을 사지 않는다는 뜻이다. 장재원(20) 씨는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개인의 도서 구매액이 많이 감소했다”라면서 “도서정가제는 시장 자체를 공멸로 이끄는 악법”이라 비판했다. 마찬가지로 박민영(21) 씨는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도서 가격이 상승하면서 시장 전체가 축소됐다”라고 지적했다. 박 씨의 주장대로 2015년 상반기 서적출판업 생산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17%가량 하락했다.


이외에 도서정가제를 디지털 콘텐츠에 적용해서는 안 되며, 최근 그에 대한 우려를 낳을 만한 정부의 시도가 있었다는 점이 지적됐다. 현재 웹툰, 웹 소설 등을 유통하는 디지털 콘텐츠 사업자는 현금으로 ‘코인’을 구매할 때 구매 액수에 따라 할인율을 다르게 두고 있다. 그러나 도서정가제가 적용되면 더는 현 수익 모델을 적용할 수 없다. 이처럼 중소형 플랫폼이 독자적인 수익 모델을 포기하면 정가를 적용하고 있는 네이버, 카카오 등 대형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이재민 만화평론가는 “최근 디지털 콘텐츠 유통 사업자들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콘텐츠에 ISBN을 부여하라는 공문을 받았다”라며 “아무리 명문화된 규정이 없더라도, 정부에서 공문이 내려온다면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중소 플랫폼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백원근 대표를 제외한 모두가 도서정가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한 참가자는 “대형 게임 플랫폼인 ‘스팀’이 90%씩 할인을 하는 바람에 게임 업계가 망하리라 전망하는 사람이 많았다”라며 “그러나 결과적으로 스팀 덕분에 불법 복제물이 아닌 정품을 사 게임을 즐기는 문화가 확산됐다”라고 도서정가제를 반기는 출판업계의 입장을 비판했다. 그러나 도서정가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책이 지식의 보고라는 측면에서 게임과 같은 다른 소비재와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지금 도서정가제를 지속하려면 제도를 정비하고 소비자에게 도서정가제의 취지를 설득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ISBN(국제표준도서번호): 전 세계 모든 도서의 초판 및 개정, 증보판의 발행에 앞서 붙는 고유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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