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교수 인터뷰 | 정년을 맞이한 교수들의 회고와 후학에게 전하는 말

방영주 교수(의학과)
방영주 교수(의학과)

기자가 연구실로 들어가자 교수는 웃으며 커피 한 잔을 따라줬다. 41년이 넘는 의사 생활을 해온 방영주 교수(의학과)는 우리나라 위암 치료의 선구자다. 방 교수는 위암 치료 약의 개발을 이끌며 암 환자를 줄이겠다는 의지를 실천했다. 그는 서울대병원 종양내과에서 항암제 연구를 120건 이상 진행하고 표적치료제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제11회 아산의학상을 수상했다. 

Q. 전공을 종양내과로 선택한 계기가 있나?

A.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의대 3학년이 됐을 때 종양내과 고(故) 김노경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노경 교수는 의사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를 가르쳤다. 의사는 과잉 진료를 하거나 이익만을 챙기기보다 환자를 위한 최선의 치료를 해야 한다고 일깨워 줬다. 둘째로, 종양내과가 발전할 여지가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내과를 선택할 때만 해도 암을 치료할 수 있는 방안이 거의 없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암세포를 치료하는 기술에 관한 연구조차 많이 진행돼 있지 않았다. 

Q. 우리나라에서 임상 시험이 보편화되기 전 어떤 부분이 제일 어려웠나?

A. 1986년에 교수가 되고 나서 김노경 교수님의 지시에 따라 처음 임상 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임상 시험이 진행될 기반이 마련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먼저 사람들이 임상 시험에 선뜻 동의해주지 않았다. ‘시험’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꼈을뿐더러 임상 시험 동의서에 쓰인 의료 용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임상 시험이 어떤 종류의 시험인지조차 잘 알지 못했다. 또한 기관감사위원회(IRB)의 임상 시험 허가 시스템이 미비했고, 진료량에 비해 연구 인력이 부족했다. 이외에도 임상 시험 방법에 대한 정부의 규정이 오늘날처럼 명확하지 않았다. 서울대병원에서도 허술한 규정을 보완할 시스템이 없었다. 이에 부산대 신상우 교수와 함께 임상 시험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환자와 기관감사위원회로부터 동의를 받는 규정을 만들어 임상 시험의 발판을 마련해 나갔다. 

Q. 기억에 남았던 진료 경험이 있다면.

A. 일본 제약 회사에서 진행한 항암제 임상 연구에 참여했던 29살 일본인 환자가 기억에 남는다. 환자가 임상 시험을 허락해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외국인 환자에게 임상 시험에 대한 사전 동의를 받기 위해서는 외국 의료 용어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이를 다시 외국어로 번역해야 한다. 이 과정은 보통 한 달 이상 걸리지만, 의사와 기관감사위원회의 협업으로 이를 2주 안에 해냈다. 개발된 치료제의 효과도 좋아서 환자의 상태가 눈에 띄게 호전됐다.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 치료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임상 시험이 유명해지고, 일본의 임상 시험 허가가 빨라졌다. 

Q. 우리나라 진료 시스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진료를 할 때 두 가지 목표가 있다. 하나는 보다 나은 치료법을 개발해서 사람들의 삶을 길고 건강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내가 맡은 환자에게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의 치료를 해주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협진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협진 시스템은 크게 미국식 시스템과 영국식 시스템으로 분류된다. 미국의 경우 협진을 할 때 환자가 비싼 비용을 내기 때문에, 협진을 하겠다는 의사의 응답이 빠르게 돌아온다. 답을 느리게 할수록 협진 의뢰가 들어오지 않아 의사 본인에게 손해기 때문이다. 반면 영국은 환자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만큼 협진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현재 영국 시스템에 가깝다. 그러나 협진을 신속히 해야 환자에게 더 좋은 치료를 권할 수 있기에 협진 시스템의 유료화 혹은 체계화가 필요하다. 

방영주 교수는 1986년부터 시작한 오랜 교수 생활이 “감사했고 행복했던 시간”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인생의 황금기인 대학 시절에 학업이든 연구든 열심히 하면 좋겠다”라며 “우수한 서울대를 만들기 위해 학생들이 학업을 성실히 하고 바른 태도를 갖췄으면 한다”라고 바람을 내비쳤다.

사진: 박소윤 기자 evepark0044@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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