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대학원 권순만 교수
보건대학원 권순만 교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우리 사회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우리가 과학적으로 그 실체를 아직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사람들의 이동이 국가 안에서는 물론 국경을 넘어 매우 많아서 전파를 막는 것이 매우 어려운 점 때문에 이 신종 감염병은 예상치 못한 큰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차별과 형평성, 공공보건의료의 중요성, 정책의 우선순위 설정 등 보건 정책 차원에서 몇 가지 근본적인 고민을 해보게 된다. 코로나19 확산의 초기에 중국인 혹은 중국 교포에 대한 차별과 낙인에 대한 우려들이 있었고 지금도 확진자에 대한 낙인이 여전히 존재한다. 더구나 이제는 우리가 다른 나라로부터 그런 낙인의 피해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또 장기적인 입원이 많고 평소 서비스의 질에 대해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는 정신병원, 요양 시설, 복지 시설들 역시 이런 신종 감염병의 피해에 매우 취약하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보면, 재택근무가 장려됐지만 정작 대기업 종사자나 화이트칼라가 아닌 경우 그런 혜택을 누리는 것이 요원한 것도 사실이다. 또 사회적 거리두기가 절실하게 권장됐지만 이런 과정에서 빈곤층 아동이나 노인, 장애인 등 취약 계층은 더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신종 감염병이다 보니 불확실성이 크기는 하지만, 지나친 반응과 걱정은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 확진자가 거쳐 간 의료기관이나 진료한 의료인에 대한 과도한 격리는 정작 치료를 받아야 하는 다른 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진료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확진자가 지나간 모든 경로를 공개하는 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문제를 초래할 뿐 아니라, 국민들이 필요 이상으로 위험을 높게 인지하게 만들고 이런 패닉은 경제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정책 소통을 통해서 정부와 전문가들이 질병의 위험 수준에 대해 국민들과 정확하게 소통을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치료가 필요한 확진자들이 많아지면서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수가 적은 우리나라의 문제점들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확진자의 중증도를 평가하고 적재적소의 보건의료기관에 환자를 보내는 것은, 공공보건의료 체계가 민간의료기관들보다는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병상 수는 가장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부분이 민간 병원들이다. 그러다 보니, 수익성이 낮은 부문의 병상은 부족하고 또 위급 상황에 빠르게 대응해 병상을 배분하는 데는 한계가 보이면서, 확진자가 많은 지역에서 병상이 부족한 실정이 생긴 것이다. 향후 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정책 수단으로서 공공의료기관과 공공보건인력에 대한 정부의 투자가 증가해야 한다.

정책의 우선순위 역시 많은 고민을 안겨 줬다. 예를 들어 누구를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진단할 것인가, 병상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등이다. 시간이 촉급한 상황에서 모든 확진자를 입원시키려 하다 보니 정작 입원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나 기저 질환을 가진 환자가 제대로 입원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겼다. 이미 메르스 사태를 경험했으나 막상 시간이 지나면, 눈앞에 닥친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자원을 투자하게 되고 신종 감염병의 위기 상황에 대한 대비책은 우선순위가 밀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보면 신종 감염병뿐 아니라 예를 들어 인구 고령화에 따른 많은 문제들 역시 보건 정책이 당면한 큰 과제이다. 감염병은 그 피해를 즉각적으로 느끼지만 인구 고령화의 문제는 바로 체감하기 어렵다 보니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곤 한다.

몇 년 전 학교를 휴직하고 아시아개발은행에서 보건 정책 부문의 책임자로 일하면서 아시아 국가들의 보건 정책을 지원하던 때가 생각난다. 이번에 우리가 경험하고 있듯이 신종 감염병의 문제는 보건·의료뿐 아니라 경제와 국제 개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저소득 국가에 대한 원조를 크게 줄이고 있는 선진국의 보수 정부들조차도 국경을 넘어 발생하는 신종 감염병의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보건안보(Global Health Security)라는 이름으로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보건의료 체계가 극히 취약한 저소득 국가의 현실에서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전반적인 국가 보건 정책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신종 감염병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다. 신종 감염병 대책으로 때로는 즉각적인 처방에 집중하는 선진국들의 원조가 과연 저소득 국가 입장에서 보건 부문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반영하는가, 장기적으로 저소득 국가 보건 정책의 역량 강화에 효과적인가 등이 국제 보건과 국제 개발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고민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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