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경성제국대학에서 시작돼 100년 가까이 유지돼 온 한국 의대의 ‘의예과(예과) 2년 + 의학과(본과) 4년’ 체제에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2+4’의 고정된 학제가 의학 교육의 유연성을 저해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를 필두로 학제 개편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3월 KAMC가 조사한 결과 의대 학장 대부분이 대학의 특수성을 살리는 유연한 교육 과정 구성에 찬성했고, 지난달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서 ‘임상 전 교육 3년 + 임상 교육 3년’ 학제를 제시하는 등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하지만 개편 소식을 접한 학생들의 반응 사이에는 온도 차이가 있다.

◇예과, 폐지되는 건가?=취지상 예과는 의학을 배우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을 기르는 기간이지만 그 실효성에 물음표가 붙는다. 원광대 의대 황병윤 학생회장(25)은 “대부분 의대에서 예과 기간에 의학을 공부하지 않으며, 예과 성적이 본과 진학 후에는 반영되지 않기에 예과를 휴식기로 보는 경향이 있다”라고 털어놨다. 예과와 본과의 연계성 결여, 학습 의욕 감소와 같은 부작용이 계속해서 나타나자 전국 의대 협의체인 KAMC에서 학제 개편을 고려하기에 이르렀다. KAMC 관계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전보다 기초, 임상, 실습 등 본과의 학습량이 급증했다”라며 “예과 동안 무너진 학습 태도로 인해 본과의 많은 학습량에 적응하지 못해 휴학하거나 유급하는 학생들이 많다”라고 논의의 배경을 설명했다.

KAMC가 추진하는 학제 개편은 법령 개정을 통해 예과·본과 통합 6년제를 시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재 의대의 교육 과정은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5조에 따라 예과 2년, 본과 4년으로 고정돼 있다. KAMC 관계자는 “틀에 박힌 ‘예과 2년 + 본과 4년’을 없애고 각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교육 과정을 구성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며 “통합된 6년의 교육 과정을 통해 각 의대의 목표나 학생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폭넓은 교육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일본은 예과와 본과의 법적 구분을 없앤 상태”라며 “국내에서도 조속한 시행령 개정을 위해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학생들은, 글쎄=하지만 의대 학생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학제 개편이 사실상 예과를 폐지하고 본과를 6년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는 불만이다. ‘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 전시형 전 회장(26)은 “학교별로 커리큘럼을 특성화하고 인재상을 다양화하는 것에는 동의한다”라면서도 “모든 대학이 이 취지에 공감해 개편을 꾀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라고 꼬집었다. 취지에 부합하는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학생과 교수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본과를 연장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겠냐는 우려다. 아울러 그는 “예과 기간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는 학생마다 천차만별이기에 예과 학생들의 학습 태도가 방만하다고 일반화할 수 없다”라며 “예과 기간은 의대 학생이 다른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고 자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이라고 설명했다. 학제 개편이 학업 부담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이경진 씨(전남대 의학과)는 “이미 일부 본과 과목을 예과 기간에 가르치고 있다고는 하나 본과에서 학업 부담이 줄었다고 볼 수 없다”라며 “학제 개편은 사실상 본과를 4년을 6년으로 연장하는 것으로 원래의 취지와 달리 학습의 총량만 늘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학제 개편 논의에 학생들의 목소리가 전달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의대 김지현 학생회장(의학과·19)은 “지난 3~4년간 학제 개편과 관련해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가천대 의대에 재학 중인 김모 씨(22) 역시 “학제 개편 논의가 이뤄지는 것도 모르는 의대생도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교육 과정이 학생들에게 큰 무게를 갖는 만큼 의견을 들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당부했다. 학생들의 반응에 KAMC 관계자는 “학생들이 일방적인 학제 개편이라고 느끼지 않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서울대는?=서울대에선 아직 의대 학제 개편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의대 김정은 교무부학장은 “(학제 개편에 대한) 공감대는 있지만 서울대 의대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학과 관계자 역시 “학부 과정 개편을 논의하고 있지 않다”라고 밝혔다. 서울대 의대 내부 분위기를 묻자 김지현 학생회장은 “학제 개편에 대한 반대 여론이 더 많다고 느껴진다”라면서 “학제 개편이라는 일방적인 개혁보다는 학교와 학생 간의 협업이 더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교육 과정의 급격한 변화보다는 학생의 의견을 반영해 예과의 중요성을 인지할 수 있게 하는 학습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KAMC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아니므로 시행령 개정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점쳤다. 예과 폐지, 본과 연장과 같은 극단적인 개편안이 아닌 만큼 의대 학제 개편의 흐름은 막기 어려워 보인다. 의대협 전시형 전 회장은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이후에 생길 잡음을 없애는 것이 급선무”라며 “각 대학에서 급격한 변화로 인해 학생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실질적인 학제 개편을 준비해나가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학생과 교육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의대 학제 개편을 위해서 보다 많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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