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영화 〈기억의 전쟁〉이 상처를 보듬는 법

타인에게 받은 상처에 대해 사과받지 못한 경험이 있는가. 잊지 못할 아픔은 트라우마로 이어지고,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 극복하려 한다. 몇몇은 마음속에 상처를 담아두기도 하고, 일부는 그때의 일을 다른 이에게 털어놓고, 누군가는 트라우마를 남긴 대상에게 진실된 사과를 요구한다. 기억의 전쟁(2018)은 전쟁으로 상처받은 이들의 기억을 전해준다.


 “당시 군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총으로 쏘기 시작했어”


청각 장애인인 응우옌 럽 아저씨는 손으로 총을 쏘는 듯한 몸짓을 했다. 1968년 2월 12일, 우리나라에서 경제성장이 한창이던 때, 베트남의 중남부 하미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럽 아저씨는 예고 없이 마을을 쳐들어온 군인들이 마을을 불태웠던 장면을 공책에 그린다. 담담한 표정과 달리, 그의 묘사는 너무나도 잔인하다.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2월 12일의 기억에 무뎌진 모습이다.


1인극을 하는 배우의 몸짓처럼 보이는 럽 아저씨의 소리 없는 손짓은 학살 피해자들이 사라져가는 와중에 진상 규명을 외치는 그의 쓸쓸한 처지를 보여준다.


”트라우마 때문에 한국을 방문하는 것조차 두려워”


눈물을 흘리며 말을 내뱉는 딘껌 아주머니는 베트남 전쟁의 또 다른 피해자다. 그녀는 전쟁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변했다. 전쟁 직후, 온 가족을 잃은 그녀는 누군가 자신의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겁을 먹었다. 하지만 현재 그녀는 한국을 방문해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여성 운동가다. 돈을 받고 거짓 이야기를 지어낸다고 자신을 지탄하는 사람들에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 그녀는 강인해졌다.


“혹시 여기에 당시 학살에 가담한 군인이 있다면 손을 잡고 나에게 사과해 달라”


2018년 4월 시민 평화 법정에서는 피해자들이 진상 규명을 위해 목소리 낼 기회가 만들어졌다. 평화 법정 증인석에 선 딘껌 아주머니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지만, 증언을 할 때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재판관이 딘껌 아주머니를 호명해 당시의 상황을 묘사해 달라하자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딘껌 아주머니가 서 있는 재판장이 잠시 고요해진다. 이후 총소리, 비명소리, 불타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이 소리가 실제 피해자의 흐느낌과 목소리에 덧입혀져 그녀의 아픔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백 명의 베트콩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자”


한편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가 벌인 시위에서 월남전쟁 참전 군인들은 고의로 민간인을 학살하지 않았다고 외친다. 순식간에 영화는 상반된 기억이 난무하는 기억의 전장으로 변한다. 구호를 외치는 참전 군인과 전쟁을 경험한 이들의 기억 사이에서 우리는 누가 전쟁의 피해자이며, 어느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그들 또한 상부의 명령으로 학살을 강행하여 전쟁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기억의 전쟁〉은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증거보다 여러 주체의 ‘기억’으로 전쟁을 그려낸다. 우리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지는 피해자들의 '기억'을 통해 그들의 상처에 공감하게 된다. 영화의 개봉을 계기로 베트남과의 관계에서 갈무리 되지 않은 일들로 새로운 상처가 생기지 않기를 희망한다.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감독, 2020.02.27., 12세 관람가, 79분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감독, 2020.02.27., 12세 관람가, 7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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