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과 박한선 강사
인류학과 박한선 강사

우리 학교 대학원생의 절반이 소위 ‘타대생’이다. 엄연히 학적이 있는데도 타대생이라니 좀 이상하다. 서울대 학부 출신이 아니라는 은어다.

학부 정원은 삼천 명을 조금 넘는다. 그런데 대학원 정원은 사천 명을 훌쩍 넘는다. 학부생 전원이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해도 천명이 모자란다. ‘타대생’은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하는 서울대의 구조적 숙명이다. 이런 과도기적 상황에서 학교 명성에 무임승차한다는 왜곡된 공정 담론이 대두한다. 반대편에서는 정당하게 입학했음에도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피해자 서사가 양산된다. 이 와중에 우리는 모두 신라 시대 골품제도를 복습하는 슬픈 기회를 얻는다.

십 년 넘게 서울대 밥을 먹었다. 두 개의 박사 과정을 밟았고 그중 하나는 졸업했다. 두 개의 연구소 연구원과 두 개의 단과대학 강사로 일했다. 부속 병원에서도 일했고, 보건진료소에서 학생 상담도 하고, 약 칠 년간 서울대 전공의를 가르쳤다. 타대생 이슈는 민감한 주제라서 조금 저어했지만, 나 같은 경우도 드물 것 같아 용기를 낸다. 십 년차 타대생이 쓰는 블루스다.

소위 타대생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성골이 아니니 결국 만족스러운 대가를 얻지 못하리라는 불안이다. 이른바 ‘입결’(입시 결과)이 낮은 단과대 학부생도 비슷한 불안을 느낀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들러리가 될 것만 같다. 당연한 걱정이다. 헛수고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과연 젊음을 투자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얻을까? 처음부터 경력이 ‘완벽’해야 했다는 강박적 반추다.

둘째, 원래 능력이 부족하니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리라는 불안이다. 주변에 똑똑한 서울대 출신이 가득한데, 어떻게 당해내냐는 것이다. 교수님도 왠지 나를 낮춰 볼 것 같다. ‘역시 타대생이니 고작 이 정도 밖에는……’이라는 두려움. 얼굴도 모르는 학부생도 왠지 나를 깔볼 것 같다. 첫 번째 불안의 논리와 정반대인데, 놀랍게도 두 가지 상반된 논리가 공존한다.

셋째, 현실적인 고립감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대학원은 학부와 달리 서클이나 학과 활동을 통해 유대를 높일 기회가 별로 없다. 소위 ‘타대생’이 절반을 넘지만, 여전히 본교 출신이 가장 많다. 나만 빼고 모두가 서로 친할 것 같다. 강의를 들으러 가도 친구 하나 없고, 랩에서도 혼자 지내다 보면 금세 지친다.

시쳇말로 ‘아싸’가 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소속됐다는 느낌은 자기 존중감과 정서적 안정감으로 이어지며, 자기 효능감과 행복감을 향상시킨다. 이방인이라는 느낌은 정반대의 경로를 밟는다. 그러니 모처럼 시작한 대학원 생활이 즐거울 수 없다. 늘 소극적, 방어적으로 행동하니 점점 교수님의 평가가 나빠진다. 괜한 의심과 까칠한 불평만 늘어나니 그나마 살갑게 대하던 동료도 멀어진다. 아, ‘역시 타대생이라 차별을!’이라는 자기충족적 예언이 비로소 실현된다.

편견과 선입관은 분명 옳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디폴트 값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장 공정한 곳을 찾는다면 바로 학교다. 노력으로 인정받고 싶다면 이만한 곳이 없다. 교문 밖 세상은 정말 무지막지하다. 서울대 출신과 경쟁할 수 없으니, 이미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음)이라는 체념도 곤란하다.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은 다름 아닌 본인 자신이 아닌가? 주변의 대학원생을 보라. 다 고만고만하다. 진짜 우수한 학생이라면 진작에 취업하지, 대학원에 있을 리 없다. 물론 농담이다.

나만 빼고 다들 친할 것이라는 불안은 절반은 진실이다. 학부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면 분명 서로 친하기는 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대개는 그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의 특징 중 하나는 낮은 동류의식이다. 똘똘 뭉쳐서 외부인을 배제하는 일은 드물다. 아직 ‘서울대 학부 출신만 끼리끼리 밥 먹자’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물론 ‘순혈’을 운운하면서 왜곡된 자부심을 드러내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그동안 자부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을 몇 명 상담했는데, 대부분 대인 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어야만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그냥 그러려니 하자. 당신의 문제가 아니다.

2020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입학을 축하한다. 타대생이 아닌 서울대 학생으로 희망찬 시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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