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민(독어독문학과 박사과정)
정수민(독어독문학과 박사과정)

방탄소년단이 ‘MAP OF THE SOUL: PERSONA’ 앨범 이후 10개월 만에 정규 4집 ‘MAP OF THE SOUL: 7’로 돌아왔다. 앨범이 발매되기 전 가장 먼저 공개된 것은 ‘Interlude: Shadow’ 컴백 트레일러다. ‘Shadow’는 2013년 발매한 ‘O!RUL8,2?’ 앨범의 인트로 ‘O!RUL8,2?’의 악기들을 샘플링해 만든 이모 힙합(Emo Hip Hop) 장르 기반의 곡으로 방탄소년단 멤버 중 슈가가 주인공을 맡았다. 해당 컴백 트레일러에서 슈가는 그의 다양한 자아와 욕구를 상징하는 군중과 마주하고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을 직설적으로 내뱉는다.

영상 초반 슈가는 과거에 자신이 갈망했던 성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랩 스타가 되고 싶었고 최정상에 올라 부와 명예를 비롯한 모든 것을 갖고 싶었다. 큰 꿈을 가진 소년은 결국 왕좌에 앉게 됐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그가 마주한 것은 ‘더 커진 그림자’였다. 그는 “두려워 높게 나는 게 난 무섭지/아무도 말 안 해줬잖아/여기가 얼마나 외로운지 말야/나의 도약은 추락이 될 수 있단 걸/이제야 알겠어 때론 도망이 차선이란 걸”이라고 고백한다. 방탄소년단으로서의 성공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부담감과 책임감을 주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영상 속 정신없이 달리던 그가 도달한 곳은 무대의 끄트머리였고 검은 복장에 복면을 쓴 군중은 도망가려는 그를 끝끝내 아래로 끌어내린다.

고립된 무대로 소환된 슈가는 무대 아래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그를 촬영하는 수백 명의 군중 앞에서 “Please don't let me shine/Don't let me down/Don't let me fly/이제는 두려워”라고 노래한다. 이러한 그의 고백은 참으로 모순적이다. 더 높이 날고 더 밝게 빛나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스타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가장 밑바닥의 나를 마주하는 순간’이라는 부분에서는 마이크에 의해 유리가 깨지는 장면이 연출되는데 위태로워 보이는 유리 바닥을 부수는 것이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꿈을 상징하는 마이크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가 가장 밑바닥에서 마주한 것은 익명의 군중 또는 자신의 그림자이다. 실제로 무대 위에서 가수는 강한 스포트라이트로 인해 관객의 얼굴을 볼 수 없지만 반대로 관객은 가수의 표정 하나하나까지 다 볼 수 있다. 이는 스타와 대중의 비대칭적인 관계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스타들이 흔히 갖는 공포 혹은 두려움은 이러한 관계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군중이 많을수록 스타는 빛나지만, 그림자 역시 짙어진다. 또한, 두려움은 그 실체를 알기 어려운데, 모두 같은 복장을 하고 얼굴을 가린 채 미동조차 없는 수백 명의 군중이 이를 잘 보여준다. 두려움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두려움과 대면해야 하지만 이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영상 후반부에는 분위기가 한층 더 어둡게 전환되며 무대 위의 슈가와 함께 검은 복장의 슈가가 무대 아래 군중 사이에 등장한다. 군중 속에 섞인 그는 “도망칠 수 없어 어딜 가던지/나는 너고 너는 나야 알겠니/너는 나고 나는 너야 알겠니"라며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후 무대에 걸터앉은 슈가와 무대 아래의 슈가가 서로를 바라본다. 무대 위의 슈가가 사회적 자아인 페르소나를 나타낸다면 무대 아래의 슈가는 페르소나에 따라붙는 어두운 내면의 그림자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페르소나와 그림자가 서로 마주 본다는 것은 둘 사이에 소통이 가능해졌음을 의미하고 이를 통해 페르소나와 그림자가 차츰 균형을 이룰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이루었고 지금도 자신들의 기록을 깨며 역사를 만들고 있는 방탄소년단 슈가의 ‘사실은 무섭고 두려워서 도망가고 싶다’는 고백은 낯설게 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위로가 된다. 가끔은 ‘너도 할 수 있어’ 혹은 ‘다 잘 될 거야’라는 무책임한 말보다 ‘사실은 나도 두려워’라는 말이 더 위로되는 법이다. 방탄소년단의 수많은 성공 요인 중 핵심적인 요소로 꼽히는 것이 진정성 있는 메시지이다. ‘Interlude: Shadow’에서 슈가는 월드 스타의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어둡고 나약한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이를 포용함으로써 다시 한번 대중에게 위로를 전했다. 냉소적이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그의 고백은 세대와 인종 그리고 문화를 넘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방탄소년단뿐만 아니라 그들의 음악을 향유하는 모든 이들이 각자의 영혼의 지도 끝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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