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리슨투더시티
사진제공: 리슨투더시티

 

청계천을 따라 을지로3가 한쪽을 걷다 보면 좀처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을 것 같은 작고 허름한 건물이 나온다. 이른바 ‘힙지로 핫플레이스’로 불리는 이 건물은 밤에는 칵테일 바로 운영되다가 낮이 되면 ‘리슨투더시티’ 활동가들의 사무실로 변모한다. 지난 5일(목), 이곳에서 리슨투더시티의 박은선 디렉터(39)와 장현욱 멤버(36)를 만났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자’는 취지로 생겨난 리슨투더시티는 2009년부터 도시 문제 해결에 힘써온 예술 창작 집단이다. 평소 도시 문제에 관심은 있었으나 다양한 분야에 흩어져 활동했던 이들은 용산참사*를 계기로 한곳에 모여 리슨투더시티를 결성했다. 박은선 씨는 “누구든 재개발 사업에 반대하면 '폭도'로 몰리고, 무력으로 철거민을 제압하는 사회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라며 “용산 참사 당시 뉴타운 재개발 사업에 반대했던 철거민들이 화재로 사망하는 걸 보면서 리슨투더시티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리슨투더시티는 책을 발간하거나 전시회와 영화제를 개최하는 등 예술 활동에 도시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입법을 추진하거나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소수자를 법의 울타리 안으로 들여오려는 시민단체와 달리, 리슨투더시티는 ‘문화’를 매개로 도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박은선 씨는 “예컨대 대출을 제한하고 양도세를 높이더라도 집을 재산으로 여기는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부동산 투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라며 “사람들의 인식 토대가 되는 문화를 바꿔야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리슨투더시티는 도시공학자, 법학 전공자, 시각 디자이너, 영화 제작자 등 각기 다른 배경의 사람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저마다 특기를 살려 리슨투더시티가 도시 문제를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박은선 씨는 “잘 팔리지 않는 책을 출판하다 보니 자체적으로 출판사를 세우고 출판 업무를 분담한다”라며 "책의 삽화는 순수 미술 전공자가 담당한다면, 책의 조판 및 디자인은 시각 디자이너가 맡는다"라고 협업 경험을 이야기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장현욱 씨는 “활동가마다 일해온 방식이 달라 갈등을 겪을 때도 있다”라며 “그럴 때마다 ‘알려지지 않은 것의 목소리를 알린다’라는 공통된 목표에 따라 서로의 의견을 조율한다”라고 설명했다.

 

도시 소수자의 목소리를 듣고자
리슨투더시티는 예술을 ‘언어를 생산하고 문제의 장소를 창작하는 일’로 정의한다. 전통적인 도시 설계 과정에서 소외된 도시 소수자를 가시화하기 위해서는 비가시화된 이들의 언어를 생산해야 한다. 박은선 씨는 ‘어떤 언어로 도시 소수자 문제를 풀이하느냐에 따라 활동의 결과물이 달라진다”라며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된 내성천을 일컬어 ‘내성천은 모래강이다’라는 문구를 만들면 평소 사람들이 무관심했던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이들은 ‘산업 생태계’라는 단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산업 생태계’라는 용어를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자연 생태계처럼 산업생태계도 재개발로 파괴되고 나면 복원이 어렵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박 씨는 “언어를 통해 공간이 가진 가치와 그것이 파괴됐을 때의 문제를 보여주려 한다”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기존의 도시 계획을 거부하는 리슨투더시티는 도시 속 비가시화된 존재를 고려해 도시를 설계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인된 역사’의 이면에 존재하는 사람들, 즉 역사에 쓰이지 않은 사람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본거지를 잃은 철거민들, 한평생 좁은 공간에서 지내는 공장식 축산 산업에 희생된 동물들도 모두 리슨투더시티가 바라보는 소수자다. 박은선 씨는 “전통적인 도시 계획은 새가 지면을 바라보듯 도시와 거리를 둔 채 도시를 바라볼 뿐, 도시에서 생활하는 개인에게 도시가 어떤 공간인지는 고려하지 않는다”라고 기존의 도시 계획을 지적했다.

리슨투더시티는 ‘도시 문제’라는 큰 틀 속에서 여러 사회 문제를 조망하기도 한다. 장현욱 씨는 “도시는 재개발 문제, 장애인 인권, 동물권 등의 문제가 얽혀 여러 층위로 이뤄진 공간”이라며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이동권 보장을 위해 투쟁하면서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는데, 이는 결국 노인들의 이동을 도와 노인 복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라고 이야기했다.

 

재난은 소수자에게 더 가혹하다
장애인을 비롯한 도시 소수자는 재난에 유독 취약하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에서 장애인들은 이중고를 겪어야만 했다. 장애인들은 대부분 밀폐된 공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전염병에 집단으로 감염되기 쉬울뿐더러, 재난으로 활동 보조자의 도움이 끊기면 홀로 생활해야 하는 생활고가 닥친다. 아울러 박은선 씨는 “사회적 약자는 ‘재난 약자’가 되기 쉽다”라며 “사회에 내재한 불평등과 혐오는 재난 상황에서 더 극적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리슨투더시티는 재난이 특히 소수자에게 가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려왔다. 이들은 2017년에 포항 지진을 겪었던 장애인을 인터뷰해 2018년도에 다큐멘터리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를 제작했다. 박은선 씨는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있어 관련 지식을 토대로 프로젝트를 구상했다”라고 계기를 밝혔다. 다큐멘터리에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못해 고립된 장애인이나 대피로를 찾지 못한 휠체어를 탄 장애인, 안내방송을 들을 수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조차 몰랐던 청각 장애인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 다큐멘터리는 2018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상영된 데 이어 ‘장애인 인권영화제’와 ‘서울 인권영화제’에 초청받으며 재난 약자의 실상을 알렸다. 박은선 씨는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차별부터 없애야 한다”라며 “평상시 도시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성이 보장돼야 재난 상황에서도 각종 재난 대책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2019년 리슨투더시티는 인터뷰집 『재난도시』를 발간했다. 이전 프로젝트와 달리 『재난도시』에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재난 상황에서 약자가 될 수 있는 이들 모두의 이야기가 담겨있으며, 재난 대책이 비교적 체계적인 일본의 사례도 포함돼 있다. 제작된 인터뷰집은 장애인을 비롯한 일반 시민은 물론 몇몇 연구자나 공무원에게도 전달됐다. 박은선 씨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매체로 인터뷰 책자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라며 “고성 산불로 피해를 본 노인, 일본 대지진을 겪은 장애인, 비영리단체(NPO) 활동가 등을 취재했다”라고 설명했다.

사뭇 무거운 주제를 얘기하면서도 리슨투더시티 멤버들의 표정은 밝고 활기가 넘쳤다. 이들은 계속해서 앞으로의 활동을 모색 중이다. ‘도시영화제’를 열어 철거민 등과 연대를 꾀하기도 하고,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와 함께 세운상가 일대 도심 산업 보전에 앞장서기도 한다. 박은선 디렉터는 “당장 내일 무엇을 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놓고 활동하지는 않는다”라면서도 “‘도시 속 비가시화된 존재를 가시화한다’라는 목표 아래 할 수 있는 것을 해 나갈 예정”이라 계획을 밝혔다.

*용산 참사: 2009년 1월 20일 용산의 남일당 건물에서 경찰이 재개발에 반대하며 농성 중이던 철거민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 이 사건으로 6명이 죽고 22명이 다쳤다.

사진: 송유하 기자 yooha614@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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