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과 심상용 교수
조소과 심상용 교수

미술가의 작업, 또는 미술가에게 작업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논쟁의 불씨를 그 안에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물리적인 육체노동의 의미가 중요한 어떤 것인가? 수십만 개의 색조를 구현하는 전자 팔레트의 등장에도, 대학은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안료를 섞고 개는 훈련에 커리큘럼을 할애해야 하는가? 조각은 여전히 대리석을 쪼고 나무를 깎는 노동과 정이나 끌 같은 아날로그 도구들의 협업을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당신이나 내가 그것에 대해 어떤 견해를 지니고 있는가를 넘어,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의 지평이 형성돼 온 보다 근원적인 지점을 건드리고 싶어 한다. 

이 쟁점은 사실 한 세기도 더 전인 지난 세기 초에 던져졌고, 비교적 최근까지 거의 혐의 없이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해 온 것으로, 마르셀 뒤샹이 그것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던 당사자였다. 뒤샹은 예술이 수공업적 노동으로 폄하되고, 예술가가 육체노동자로 분류되는 것을 몹시 못마땅해 했다. 귀족이나 부르주아지들은 그림과 조각을 값싸게 구매하고 정신적으로 탐닉했지만 그것을 그리고 만든 화가와 조각가들은 신분상의 불명예에 가난까지 떠안아야 했기 때문이다. 체스에 능했던 뒤샹은 그의 수학적 재능을 발휘해 노동의 개입 없이 전적으로 개념만으로 성취되고 종료되는 미술을 생각했고, 그 결과가 ‘레디메이드’(Ready made) 미학이요 〈샘〉이라는 제목의 유명한 변기였다. 

불만의 측면으로만 보자면 뒤샹이 처음은 아니었다. 회화가 수공적 기술(artes mechanicae)로 분류된다는 사실에 대한 반발은 일찍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때부터 제기됐다. 자신의 회화가 ‘정신적인 것’(cosa mentale)임을 확신했던 다빈치도 회화가 ‘자유학예’(artes liberales)의 일원으로 편입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반박하곤 했다. 물론 뒤샹처럼 회화를 그만두지는 않았더라도 말이다. 이후로도 시각 예술을 육체노동이라는 게토로부터 구제해내는 것과 관련된 노력이 끊임없이 지속됐다. 20세기 스토아와 토마시즘(Thomism) 철학의 대변자이자 예언자적 지성을 설파했던 자크 마리탱은 예술을 전적으로 정신의 곁에 머무는 것으로 규정했고, 에티엔 질송도 정신에 적대적이지 않은 손의 결백을 거듭 옹호했다. 미술사가이자 리용 대학의 교수였으며 리용 미술관의 관장이기도 했던 앙리 포시옹은 정신과 손의 관계를 주종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무지의 소치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예술의 정신성에 대한 논쟁들은 뒤샹의 레이메이드 미학이 그랬던 것처럼, 예술적 사건인 만큼이나 사회학적 사건이기도 했던 셈이다. 

뒤샹이 20세기 최고의 전위 미술가라는 것은 크게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고, 서양 미술이 지난 세기 내내 그의 개념주의적 노선의 뒤를 졸졸 뒤따랐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노선의 뇌관에 해당하는, 정신과 신체, 개념과 노동을 이분법적으로 갈라놓는 것의 결과가 매우 불길한 것이라는 사실이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 노선으로 정신이 손을 만들고, 손이 정신을 만드는 변증적 상호성이 느슨해지고, 창조의 몸짓과 관념적 사변이 서로를 적대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 손은 실업자 신세가 되고, 역설적이게도 정신조차 퇴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진정한 미술가라면 모름지기 솜씨를 갖고 있는 법”이라고 포시옹이 말했지만, 그 솜씨는 퇴행을 거듭했고, 솜씨를 가지고 내면에 고여 있는 형태의 잠재태와 벌였던 미술가의 긴장감 넘쳤던 싸움도 이내 시시한 것이 되고 말았다. 뒤샹의 전위적, 개념적 혁명은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고통 받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신체다. 이 바이러스는 사변이 아니라 기관지에 달라붙고, 개념이 아니라 폐를 공격한다. 그로 인한 죽음 또한 신체적 사건이다. 유발 하라리가 밝히듯, 신체적 고통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들, 예컨대 국가나 기업 같은 것에 지나치게 미혹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실천하는 지성이었던 시몬 베이유도 굶주림 같은 신체적 고통만큼 정신적인 것은 없다고 했다. 참되고 진실한 노동인 육체노동을 폄훼해 온 역사와 서구 몰락의 시간표가 서로 겹친다고도 했다. 

세계와 정신은 모두 상상 이상으로 그리고 매우 구체적인 동시에 신비스럽게 신체와 결부돼 있다. 그래서 포시옹의 다음과 같은 말을 미술가에게만 국한시키지 않으면서 들을 수 있게 된다.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은 결코 미술가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손이 졸고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