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나라의 기술 혁신, 그리고 폴리네시아 채텀 제도

박희재 교수(기계항공공학부)
박희재 교수(기계항공공학부)

*편집자 주: ‘기술 혁신과 생태계2’ 기고에서 이어집니다.


혁신적인 은 제련 기술, 도자기 기술 등은 조선에서 개발됐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 땅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이는 당시 조선의 지배층이 실용과는 거리가 먼 성리학적 이념 논쟁으로 소모적이고 붕당적인 정치 행태를 거듭하는 새에, 이 기술들이 가져다 줄 상업적인 가치를 거의 인지하지 못하고 엄청난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조선은 이후 18, 19세기 동안 쇄국 정책을 포기하지 못하고 국제적 고립을 겪다가 결국 국권을 잃는다. 그 피해와 고통을 고스란히 감당했던 이들은 이 땅의 백성들이었다. 반면 일본은 당시 동아시아 국제 교역망 속에 편입돼 있으면서 이 기술들의 상업적인 가치를 인지하고 실용적인 기술 생태계를 구축했다. 조선에서 가져온 혁신 기술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데 성공하면서 일본은 근대화된 산업 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채 이웃 나라의 혁신과 변화에 둔감했던 국가가 멸망한 사례는 참으로 많다. 그중 오랜 기간 동안 천혜의 자연조건 속에서 혁신의 필요성을 모르고 살다가 혁신 기술로 무장한 이웃 부족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대응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비참하게 사라진 폴리네시아 채텀 제도 모리오리족의 슬픈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뉴질랜드에서 동쪽으로 약 800km 떨어져 지리적으로 고립돼 있었던 채텀 제도는 풍부한 농산물, 수산물 등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천혜의 섬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약 2,000명의 모리오리족은 수 세기에 걸쳐 대대로 평화롭게 이 섬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1835년 11월 19일, 이로부터 약 800km 떨어진 뉴질랜드 북섬에 살고 있었던 마오리족 가운데 500명이, 12월 5일에는 400명이 배를 타고 채텀 제도에 도착했다. 당시의 혁신 무기였던 총, 도끼, 곤봉 등으로 무장한 마오리족은 이제 이 섬은 우리 마오리족의 것이며 이 섬에 살고 있었던 모리오리족은 자신들의 노예임을 선언하고는 모리오리족의 마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습격을 당한 모리오리족은 대표자 회의를 열어 공격해 온 마오리족이 필시 그들에게 부족한 물자를 구하기 위해 왔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는 맞서 싸우는 대신 평화와 우정을 제안하고 자신들의 물자를 나눠 주기로 한다. 그러나 그 제안이 전달되기도 전에 마오리족이 공격을 개시해 모리오리족은 대부분이 잔혹하게 살해되고, 당시 식인 풍습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에 의해 시체까지도 요리되고 만다. 간신히 살아남아 노예가 된 일부조차도 그 후 몇 년에 걸쳐서 마구 죽임을 당해, 모리오리족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역사 속으로 비참하게 사라져 버렸다.

원래 마오리족과 모리오리족은 뉴질랜드 북섬에 살면서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계속해서 살았던 마오리족은 신석기 농업 혁명을 거치면서 기술 혁신을 지속적으로 수용했다. 또한 이들은 주변 부족, 백인과 교류하고 때로는 전쟁을 벌이며 지속적인 발전과 혁신을 이뤄 기술, 도구, 화약 무기 등을 발달시키며 높은 전투 역량을 유지했다. 반면 모리오리족은 약 1,000년 전에 뉴질랜드 북섬에서 채텀 제도로 이주해 온 뒤에는 모든 것이 풍족한 채텀 제도의 천혜의 자연조건에 만족해 고립된 채로 살면서 채집과 어업에 필요한 단순한 도구와 간단한 무기들만을 가지게 됐다. 그러던 1835년 어느 날 근처 바다에서 바다표범을 사냥하던 오스트레일리아의 배 한 척이 뉴질랜드로 가는 길에 채텀 제도에 들렀다가 다음과 같은 소식을 뉴질랜드에 전했다. “그 섬은 물고기와 조개가 풍부하고, 호수에는 뱀장어가 가득하고 땅에서는 카라카 열매가 많이 난다. 사람들은 매우 많지만 싸울 줄도 모르고 무기도 없다.” 이 소문을 접한 마오리족은 드디어 같은 해 11월 19일과 12월 5일에 채텀 제도로 배를 타고 도착해서 모리오리족을 무자비하게 습격한 것이다. 

주변 사회와 단절돼 있어 기술 혁신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엄청난 시련을 맞게 된다. 참으로 슬프고도 안타깝지만, 종국에는 모리오리족처럼 비참한 소멸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적으로 고립됨이 없이 이웃 국가와 사회의 변화와 혁신에 민감해야 하며, 기술 혁신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하고, 그리고 이를 위한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집단과 사회의 가장 중요한 생존 전략이라는 점을 우리는 반드시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은 2019년 10월 26일 네이버 열린연단에서 필자가 강연한 원고 ‘기술혁신의 수용’에서 인용 및 요약해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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