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 성명문 논란, 보다 생산적인 논의로 옮겨가야
‘n번방 사건’ 성명문 논란, 보다 생산적인 논의로 옮겨가야
  • 대학신문
  • 승인 2020.04.0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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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이 검거되면서 텔레그램 n번방 성폭력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있다. 사건의 악랄함과 잔혹함을 목격한 시민들은 가해자를 단호하게 처벌하고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법적 조치를 강구하길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학내에서도 ‘2020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연석회의)가 n번방 사건의 조속한 해결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성명문을 지난달 24일 게시해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연석회의의 성명문을 계기로 학내에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농생대 연석회의(농생대)는 지난달 26일 연석회의의 성명문에 편향적인 의견이 포함돼 있다며 성명문 수정 제안서를 내고, 공감하는 학생의 연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다시 일각에서 농생대의 수정 제안서는 구조적 폐습을 은폐하는 데 일조할 뿐이라며, 제안서를 철회하고 사과하라는 요구를 제기했다. 농생대의 수정 제안과 맞은편의 사과 요구는 모두 지난달 30일 열린 연석회의 운영위원회(연운위)에 안건으로 상정됐다. 연운위는 두 안건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보이며 나름의 대안을 의결했지만, 학내의 의견 대립이 온전히 봉합되었다고는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터넷 『대학신문』 2020년 4월 5일 자)

n번방 사건을 향한 공분은 한때로 그치지 않고 비슷한 범죄의 재발을 틀어막는 기회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해당 사건을 낳은 근본적인 원인부터 당장 시급한 법적 조치까지 다양한 방면으로 건설적인 논의가 뻗어 나가야 한다.

n번방 사건과 같은 일이 벌어지는 배경에는 분명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한 불법촬영물을 공유하고 사고파는 작태가 관행적으로 행해져 왔으며, 디지털 성폭력 가해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결정함으로써 잘못을 사실상 묵인해오기도 했다. 이러한 관행과 법, 제도가 오랫동안 뿌리를 내려왔기에 n번방 사건까지 치달았을 것이니, 성차별적 사회 구조가 n번방 사건과 무관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해당 사건의 가해자를 엄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일만큼이나,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해 유사한 성범죄까지 그 뿌리를 뽑는 일이 중요하다. ’26만’ 등의 사소한 논쟁거리를 따져가며 소모적인 논쟁을 이어가기보다, 성폭력 근절을 위한 근본적이고 제도적인 논제를 공론장에 띄워야 할 이유다.

물론 연석회의의 성명문이 미흡했을 수도, 학생 전반이 합의하기 어려운 문장이 존재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해당 문장이 어째서 타당하지 않은지, 어떤 지점을 고려하고 보강해야 하는지를 논의하면 될 일이다. 그 과정에서 수정은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대립하는 학내의 의견 사이에서 합의를 찾을 기회가 찾아왔을 것이다. 성명문 뒤에 “특정 사상”과 “정치적 입장”이 숨어 있다고 공언하며, “타인의 고통을 이용”할 뿐인 성명문을 인정할 수 없다고 오히려 갈등을 조장할 일이 아니었다.

학내 여론은 단순한 개인 의견의 합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n번방 사건을 보는 관점에 대한 논의 또한 개인의 호불호를 수렴하는 것으로 갈음해선 안 된다. 누군가는 당면 사건을 강조하기 위해 나무를 말할 수도, 또 다른 이는 구조적 변인을 파악하기 위해 숲을 논할 수도 있다. 그 각각의 수를 일일이 세어가며 수적 우열을 가리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비아냥과 맹목적인 비난은 접어두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자세로 의견을 교환해야 할 때다. 그때 학생회의 역할이 중하다. 학생회는 학생 개개인의 선호와 판단을 여과 없이 전달하는 단체가 아니다. 공론장에 민감한 의제를 던지고 논의를 주재하며 대립하는 의견을 합의로 이끄는, 본질적인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학내의 소모적인 갈등이 멈추고, 비인간적인 범죄를 향한 공분이 생산적인 논의를 거쳐 부디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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