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박지민 기자
사회부 박지민 기자

지난해 여름 아침이었던가. 기숙사에서 수업을 들으러 교실로 향하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지갑이 없는 것이 아닌가. 시간이 아슬아슬해 다시 가져올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점심은 먹어야지’ 하며 헐레벌떡 기숙사로 몸을 돌렸다. 기숙사에 살아본 이들은 알겠지만, 각 건물 입구에는 손 혈관을 인식해 열리는 대문이 있다. 이 과정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라서 뒤에 오는 사생이 있으면 문을 열고 기다려주는 관행이 있다. 평소 같으면 뒤를 확인했겠지만, 한시가 급한 터라 문을 열고 방으로 몸을 옮겼다. 계단을 오르다 뒤에서 문을 다시 열고 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찰나, 그의 입 모양에서 ‘싸가지 없네’라는 말을 읽어버렸다. ‘뭐라고요?’라고 되물으려다 정신없는 상황이라 얼른 방에 들어가 지갑을 챙겨 나왔다. 

그냥 잊고 지나갈 수 있는 일이지만, 종일 아침에 있었던 일을 곱씹었다. 내가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잘못했나? 급해서 그랬던 건데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었나? 혼자 생각하며 불쾌한 기분이 자기 전 양치할 때까지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평소에 내가 말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봤다.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던 자신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이 내 무신경한 언행으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를 생각하니 아침의 경험은 하나의 교훈이 돼 있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 작은 말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진부한 격언을 몸소 체험한 것이다. 분노보다는 가르침이 머리와 가슴에 남았다.

이번 기사를 취재하며 그날의 경험이 몹시 와닿았다. 언론의 신뢰가 이토록 떨어진 것은 자신의 말이 가지는 영향의 크기를 과소평가한 것이 아닐까? 세상에는 너무 많은 말들이 떠다닌다. 특히 언론의 말을 듣는 사람은 아주 많다. 아주 조금의 잘못, 아주 조금의 무신경, 아주 조금의 거짓이 사회 전체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가져온다. 기자 개개인의 작은 실책이 사회에 심각한 폐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매체도 마찬가지다. 소셜 미디어에서 유통되는 정보들은 검증되지 않은 채 퍼져나간다. 당연히 자신의 말에 대한 반성은 없다. 그렇게 작은 거짓들의 영향이 쌓이고 쌓여 큰 거짓말이 된다. 큰 거짓말은 모두를 흔들어 판단의 기준을 흐려버린다. 

기사에 나오는 언론의 자구책들은 자신이 갖는 영향력의 크기를 아프게 체감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부과되는 비판이 부당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 말이다. 하지만 스스로 밟아온 길을 되돌아본다면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나도 그랬으니 말이다. 이런 성찰을 통해 언론이 성장할 것이라 기대하고 싶다. 나도 그랬으니 말이다. 내 말에 대해 완벽히 떳떳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학보사 기자로서 내 언어에 대해 기대하고 실망하는 것을 반복한다. 하지만 매번 말 때문에 분노하더라도, 성찰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언론도 꾸준히 성찰하면서 성장해 나간다면 신뢰받는 언론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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