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학교에 부임하고 몇 년 뒤, 2015년에 메르스를 겪었다. 내가 속한 공중 보건 분야의 긴급 상황이자 위기였기에 참으로 많은 것을 새겼다. ‘그때 닥친 그 위험’에 대한 우리의 판단과 감정, 경험이 어떤지를 지속해서 보여주는 자료 없이 사후 백서만으론, 진정한 ‘학습과 변화’를 끌어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점이 그중 하나다. 

지난 1월 20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에 의한 국내 감염 첫 확진이 보고된 이후 70여 일이 흐른 지금까지, 모두 세 차례 ‘국민위험인식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시점은 1·2·3월 말로, 각각 위기 경보가 ‘주의’→‘경계’, ‘경계’→‘심각’으로 격상되고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선언한 이후였다. 

수많은 보건학의 갈래 중에서 내가 공부했고 지금도 다루는 열쇳말이 ‘집단이나 조직’ 그리고 ‘소통’인지라, 또 공중 보건 위기 상황 문헌에서 늘 강조하는 것이 인구집단과 지역사회의 위기 대응 수준인지라, 이들을 통합하여 조사 내용을 설계했다. 풀어본다면, 첫째, 합리적인 위험성 판단, 둘째, 위험 예방 행위가 효과를 가져오리라는 믿음에 해당하는 효능감, 셋째, 바이러스와 감염에 관한 정보를 얻고 이해하고 활용하는 역량인 리터러시, 넷째, 낯설고 두려운 신종 전염병 대응에서 특별히 중요한 신뢰 자본, 끝으로 방역당국, 전문가 집단, 언론, 시민사회 간 효과적인 위기 소통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우리가 맞서야 하는 것은 바이러스만이 아니다. 과잉, 과장, 허위 정보에 취약하지 않고 파괴적인 정서에 취약하지 않으려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 그렇기에 역학(epidemiology) 방역만이 아니라 사회 심리 방역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려 ‘사회 심리 방역의 5요소’라고 편의적으로 이름도 붙였다. 

조사로 얻은 건 숫자지만 그 수치 안에 의미가 담겨 있었다. 감염 상황은 조금씩 안정세인데 삶은 정지 방향으로 계속 이동 중이다. 코로나19로 사람 간 만남이 이전의 40% 수준으로 줄고, 70일째 이어지는 ‘언택트’ 생활로 특히 생계와 정신 건강이 나빠졌다. 열 중 넷이 무기력과 위축감, 경계심을 호소했으며, 신천지 사태가 준 ‘충격’에서는 벗어났지만 연로하고 아팠던, 우리가 시설에 맡긴 가족의 죽음이 늘어나 슬픔이 커졌다. 

1차 때는 위험 인식이 높게 형성된 그 자체를 우려했다. 여전히 주관적인 위험은 크지만 한편 이것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진행된 예방 행동의 유지 동력이었다. 문제는 이런 ‘결사적인 실천’을 거스르는 집단을 향해 매우 부정적인 감정이 촉발됐다는 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속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위반자 패널티’였다. 신뢰가 고갈된 1번 요인은 ‘개인·집단의 무책임’이었고, ‘내 지역 사람들은 자가격리 등 불편을 감수할 것’이란 지역 효능감도 2차보다 하락했다.

조사가 거듭되며 ‘확진 시 돌아올 비난과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조사 결과가 중요하다. 사실 감염이 개인의 책임이라는 인식은 크지 않다. 감염은 개인 잘못이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내가 감염되면 주변에선 나를 탓하고 비난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커지는 것이다. 김영민 교수님께서 저술한 책 제목을 빌어 반문해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이 처벌과 비난만일까.

다행히 응답에서 실마리가 보인다. 하나는 시민교육 강화다. 국민은 감염병을 단순히 가르치기보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로 대화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다음은 ‘사전·예방적’ 의사결정이다. 미(美)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 파우치 박사가 “타임라인을 만들려 들지 마라. 그건 바이러스가 하는 것이다(You don’t make the timeline. The virus does.)”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정한 어느 것도 확정적이지 않다는 태도 아래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며 안전을 최우선에 두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1차 때는 메르스 대비, 2차에선 나와 내 지역 대비, 3차는 다른 나라 대비 코로나19 위기 대응 수준을 물었는데, 그 결과 시민사회, 의료계, 민간 영역을 모두 포함하는 ‘대한민국’의 위기대응 점수가 제일 높았던 것도 주목할 만하다. 바이러스가 일으킨 연쇄·복합적인 신종 재난 대응에서 ‘협력’의 가치를 보여준 결과이기에.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조사할지는 모르겠다. 하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언젠가 우리가 서로 만나도 되고 오갈 수 있을 때 그때 함께 이번에 쌓은 숫자들이 전달하는 의미를 더욱 정교하고 깊게 이해하고 해석하여 잘 쓰고 싶다. 교훈을 찾고 문제를 반복하지 않도록 학습하는 것은 위기 관리의 끝이 아니라 사실상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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