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취재부 차장
강동완 취재부 차장

작년 이맘때, 지금은 오가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학교 캠퍼스에서 오랜 친구를 만났다. 인문대와 사범대 건물 사이에 있는 목련 나무 밑 벤치에 앉아서 나는 그에게 말을 건넸다. 남들은 벚꽃을 사랑한다지만 나는 목련을 더 좋아한다고, 떼를 지어 피는 벚꽃보다는 혼자서도 고고하게 봄을 지켜 내는 목련이 맘에 든다고 말이다. 그런 나를 두고 친구는 목련꽃이 꼭 사람 인생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자세한 설명을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잠깐 예쁘다가 이내 떨어져 이파리가 누렇게 뜨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느낀 듯했다. 조금은 감상적이고도 진부한 생각이다.

날이 풀리는 계절과는 다르게 뜻밖의 바이러스로 일상이 많이 달라진 요즘이다. 사람들과는 달리 봄을 알리는 자연은 전에 없이 활기차다. 한적한 거리를 보면서 자연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람이 없으니 꽃이며 잎이며 이때다 싶어 모조리 튀어나와 사람들을 놀리고 있을 수도 있다. 혹은 이전과 다른 풍경에 당혹스러워하며 사람들에게 요새 무슨 일이 생겼는지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꾸미기를 좋아하는 꽃들이라면 아름다움을 뽐내고 싶어도 봐줄 사람이 없어 마음을 졸이고 있지는 않을까. 조금이나마 그 시름을 덜어주고자 요새는 꽃을 주워다가 물병에 꽂아 두는 일을 취미 삼고 있다. 길가에 떨어져 있는 꽃들을 그냥 내버려 두면 쓰레기가 되지만, 하나둘 모아 놓고 보면 나름 멋이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작은 분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며칠 전에는 손바닥만 한 목련 가지를 데려다 놓았는데, 노력이 무색하게 손쓸 새도 없이 하루 만에 다 죽어 버렸다. 목련의 메시지를 추측하자면, 그동안 자연을 실컷 괴롭혔으니 올해만큼은 그만 내버려 두라고 말하는 듯했다. 별일 아니라고 넘기려 했지만 가장 좋아하는 무언가와 이렇게 빨리 헤어지기는 처음이라 내심 섭섭한 구석이 없지 않았다.

바이러스 사태가 하루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전 세계 의료진들의 고생이야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는 한시름 놓았다고 하더라도 이웃 나라들의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혼란 속에서도 모두가 각자의 삶의 자리를 지킬 수 있기를,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내기를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할 뿐이다. 

그런데 바이러스와는 별개로 최근 화제로 떠오른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 여기에는 각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바쁘게 살아온 사람들이야 불편하겠지만, 서로 거리를 두면서 의외의 행운도 함께 찾아왔다. 단편적인 사례 몇 개만 들어보자.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어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운하는 수십 년 만에 맑은 물을 되찾았다고 한다. 공장 가동이 멈추면서 대기오염이 급속히 감소했다는 연구도 있다. 차량 운행이 줄자 교통사고 건수도 줄면서 해외 보험사들이 자동차 보험료를 고객들에게 돌려줄 정도라는 소식도 나온다.

이런 사례들을 그저 단순히 흘러가는 이야깃거리로 넘겨버려도 될까. 작년 그 친구가 목련을 두고 했던 말을 이제 와 돌이켜본다. 우리가 애써 지켜내려 했던 모든 삶의 조각들이 땅에 떨어진 꽃잎처럼 덧없게 다가온다. 그동안 우리는 왜 그렇게도 분주하게 돌아다녀야만 했을까. 시간에 쫓기고 사람들에 치이며 살아가던 일상, 우리가 그토록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이제는 전부 우습게 느껴진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찾아오듯이 바이러스도 조만간 진정되리라고 믿고 기도한다. 하지만 빡빡하고 팽팽했던 일상마저 그대로 되찾을 필요는 없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은 더 거리를 두고 다가올 미래를 진지하게 대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제는 제법 여유를 되찾아 한껏 봄을 누릴 때도 되지 않았을까. 바이러스가 끝난 이후로 달라질 새로운 삶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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