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천하제일탈공작소’가 말하는 탈춤의 미래

탈극 〈오셀로와 이아고〉에서 주인공 오셀로가 아내인 데스데모나를 죽이려 하고 있다. 바닥에 잔뜩 뿌려진 소금과 다양한 표정의 탈이 매달린 나무 한 그루는 극의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쓰인다. (사진 제공: 천하제일탈공작소)
탈극 〈오셀로와 이아고〉에서 주인공 오셀로가 아내인 데스데모나를 죽이려 하고 있다. 바닥에 잔뜩 뿌려진 소금과 다양한 표정의 탈이 매달린 나무 한 그루는 극의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쓰인다. (사진 제공: 천하제일탈공작소)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탈춤 전공자 세 명이 모여 2006년에 결성한 문화예술단체 ‘천하제일탈공작소’는 전통 예술인 탈춤을 현대에도 널리 알리고 후대에까지 전승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들은 200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장에서 진행된 연극 <천하제일탈>을 시작으로 지난 15년간 국립국악원 및 남산골한옥마을 등에서 탈춤을 선보였으며, 현재는 대학로 예술극장을 중심으로 탈춤의 대중화 및 현대화와 관련된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4일(토),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천하제일탈공작소 허창열·이주원 공동 대표, 신재훈 연출가, 박인선 탈꾼, 박용휘 PD를 만났다.

살아 숨 쉬는 탈춤을 위해 한곳에 모이다

천하제일탈공작소의 다섯 멤버들은 ‘국가무형문화재 보존회’를 주축으로 탈춤이 전승되는 방식에 한계를 느끼고 탈춤의 새로운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지방마다 존재하는 국가무형문화재 보존회는 탈춤의 지역성을 보존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에, 탈춤을 변형하지 않고 지역적 특색이 반영된 옛 모습 그대로 상연한다. 박인선 탈꾼은 “보존회에는 시대가 변하더라도 전통 탈춤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원칙이 있다”라며 “이 때문에 보존회는 새로운 탈극 작품을 창작하지 못하고 극의 배경 음악으로 국악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한계를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를 극복하고자 천하제일탈공작소는 보존회와 달리 전통 탈춤을 재해석하거나 기존의 문학 작품을 탈극으로 각색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해가고 있다.

천하제일탈공작소는 전통 탈춤을 변형하는 와중에도, 작품 속 ‘공동체’ 정신을 구현해 보임으로써 ‘신명’나는 무대를 만드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탈춤은 공동체 정신을 반영한 예술이다. 현실에서 쉽게 화합하지 못하는 계층도 놀이 한 판을 통해 일체감을 느끼게끔 하는 것이다. 허창열 대표는 “탈춤에는 여성, 장애인, 피지배층 등 소수자가 등장인물로 자주 나온다”라며 “극 안에서 성별, 장애 여부, 계급 간 경계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이들은 동등하게 하나의 무대를 완성하고, 때로는 권력 관계가 역전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탈극에서는 탈꾼과 관객이 한 무대 위에서 어우러져 집단적인 신명을 발산한다. 관객도 무대를 향해 탈꾼처럼 추임새를 넣고 무대에 등장해 탈꾼과 함께 춤을 춘다. 허 대표는 “탈춤에서는 공연자와 관객 간의 경계가 허물어진다”라며 “공연자와 관람객이 만나면서 발생하는 시너지를 기대한다”라고 부연했다.

천하제일탈공작소는 탈과 배경 음악에도 신경을 쓰며 극을 기획한다. 탈은 탈극 무대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고, 배경 음악은 극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박인선 탈꾼은 “원래 탈춤에서는 일회용 탈을 사용하기 때문에 탈의 디자인이 중요하지 않았다”라며 “그러나 오늘날 한 편의 탈극은 여러 번 상연되고 탈춤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가 커졌기에 탈을 정교하게 디자인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국악을 배경 음악으로 사용하는 전통 탈춤과 달리 이들은 현대 음악을 차용해 극의 배경 음악을 제작한다. 전통 탈춤에서는 사용되지 않던 일렉트릭 사운드나 보컬이 배경 음악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현대의 관객에게 다가서는 탈춤

천하제일탈공작소는 탈춤이 고리타분한 유물이 아닌 새로운 현대 예술 장르로서 받아들여지도록 ‘고전’을 탈극으로 각색한다. 지난 2017년에는 셰익스피어의 극 『오셀로』에서, 2019년에는 염상섭의 소설 『삼대』에서 줄거리를 빌려오고, 이에 춤사위를 결합해 한편의 탈극을 만들었다. 신재훈 연출가는 “탈춤이 현 세대 관객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고전을 각색한 것”이라며 “고전은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한국의 권위적인 사회의 모습과 유사한 『삼대』로부터 관객은 공감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은 두 작품을 탈춤으로 각색하면서 원작의 비극적 스토리를 그대로 유지하되, 탈춤의 해학성을 더했다. 『오셀로』처럼 장엄함이 주를 이루는 셰익스피어의 원작과는 달리, 탈극은 비극에서도 익살스럽게 표현될 수 있는 부분을 과장해 해학성을 드러낸다. 허창열 대표는 “『오셀로』와 『삼대』처럼 줄거리가 방대하고 결말이 절망적인 비극도 해학적으로 승화해보려 노력했다”라고 설명했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오셀로』에서는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날카로운 칼’로 찌르자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자신도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런데 천하제일탈공작소가 각색한 탈극 <오셀로와 이아고>에서는 오셀로가 ‘부채’로 데스데모나를 죽이고, 그녀의 얼굴이 ‘빨간 립스틱’으로 범벅된다. 부채와 립스틱 같은 일상적 소재를 활용해 작품 결말의 비극성을 완화하고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천하제일탈공작소는 보존회 위주의 전통 탈춤에서는 허락되지 않았던 애드리브를 무대 위에서 뽐낸다. 대본에 나오지 않은 대사도 원래 작품의 일부인 것처럼 연기하고, 정해진 대본을 읽는 것에서 벗어나 탈꾼이 춤을 선보일 수 있는 ‘더늠’이라는 춤사위도 생겨났다. 허창열 대표는 “더늠은 본래 판소리에서 명창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특하게 부르는 것을 말한다”라며 “현대 탈춤에는 전통 탈춤에 더해, 탈꾼이 각자의 기량을 뽐내는 기회가 생겨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체되지 않은 탈춤이 되려면

천하제일탈공작소는 작품에 내재한 차별을 없애가며 탈춤이 현 세대 관객의 공감을 살 수 있도록 바꿔나간다. 기존 탈극에 등장했던 여성,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는 모두 한정적인 역할만을 수행하는 수동적 인물이다. 일례로 <병신춤>은 타락한 양반의 모습을 장애인에 빗대어 웃음거리로 만든다. 특히 여성 인물은 작품의 서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임신과 출산이 끝나고 나면 서사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작품 속 차별적인 인물상을 조금씩 수정해간다. 박인선 탈꾼은 “전통 탈춤에서는 소수자 캐릭터가 맡아왔던 역할이 과소평가돼 왔다”라며 “소수자의 역할에도 중요성을 부과해, 작품의 줄거리 밖에 존재하던 소수자를 서사의 중심으로 들여온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들은 배리어프리 공연을 기획함으로써 극의 접근성을 높인다. 지난 3일(금), 천하제일탈공작소는 탈극 〈오셀로와 이아고〉를 유튜브로 생중계하면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해설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이 제공된 공연을 선보였다. 허창열 대표는 “그간 탈춤이 〈문둥이춤〉 〈병신춤〉 등을 통해 장애인을 그려온 만큼 현대에도 장애인을 고려한 배리어프리 공연을 제작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라며 “이번 공연은 전통 연희* 중에서 배리어프리 공연을 진행하는 첫 사례였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지역적 특색을 살린 탈춤도 구상 중이다. 전통 탈춤은 본래 지역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 황해남도 강령 반도의 탈춤에는 파도를 닮은 춤이, 안동 탈춤에는 농사짓는 듯한 춤이 많은 식이다. 박인선 탈꾼은 “현대 예술에는 지역적 특색이 묻어나지 않기 때문에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린 탈극은 관객에게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박인선 탈꾼은 “전통이란 전해지고 통한다는 뜻이다”라며 “전통 예술도 반드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필요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천하제일공작소는 탈춤의 대중화·현대화에 앞장설 것이다.

*전통 연희: 탈춤, 꼭두각시놀음, 판소리, 남사당놀이 등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공연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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