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상 교수(화학생물공학부)
김연상 교수(화학생물공학부)

노자의 『도덕경』에는 물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 뛰어나지만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이 표현은 물의 특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은 인간 몸의 구성 성분일 뿐만 아니라 자연 생태계 순환을 구성하는 자연 현상의 기본적인 요소다. 물은 유체로서 외력에 따라 이동하며 화학적으로 다른 물질들을 쉽게 용해시킬 수 있다. 이런 물의 기본적 특성에 관련된 연구는 과거부터 이어져 왔다. 산업 혁명이 물의 상변화를 이용한 증기 기관에서 시작됐듯이, 주로 거시적 관점의 물의 변화 및 운동에 의한 흐름, 증발, 동결 현상, 그리고 이를 이용한 산업적 응용 등 커다란 규모의 특성을 연구하는 주제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현대 과학에서는 물질의 미시 세계에 대한 탐구와 함께 나노·분자 수준에서 물의 특성을 바라보려는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물의 특성에 대한 미시적 관점에서의 기초 과학적 이해는 순수한 물리화학적 접근을 넘어서 ‘단백질 및 생체 물질-물 분자’ 상호 작용 등의 생물학적 영역부터 초발수성 처리 등의 산업적 영역까지 다양한 학문·산업 영역에서 응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나노 소재 및 나노 단위의 물질을 제작·분석하는 기술이 현저히 발달함에 따라 나노 소재 및 소자와 물 분자 간 특이적 상호 작용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물과 다양한 소재 간의 상호 작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노 규모의 고체-액체 계면 조절을 통해 에너지, 환경, 생화학 등에서 다양한 과학적, 공학적 응용 결과들이 도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과들 중 괄목할 만한 사례로 자연적인 물 흐름 및 순환의 기계적 에너지를 고체 표면과의 접촉을 통해 전기 에너지로 직접 수확한 연구, 해당 원리를 응용한 자가발전 형태의 액상의 중금속 이온 및 생체 분자 탐지 기술 등이 보고됐다. 해당 연구는 액상의 이온과 분자들이 나노 규모에서 고체 표면과 상호 작용을 하는 방식을 분석해, 미시적 관점에서 액상의 이온과 고체 표면 간의 계면 현상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성과를 보여줬다. 또한 고전적인 물의 흐름에 의한 기계적 발전에서 벗어나, 물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응용한 간단한 방식으로 다양한 자연상의 물 운동에서 전기를 직접 생산하는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줬으며, 범용적인 나노 규모의 고체-액체 계면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물리화학적 관찰 플랫폼으로서 응용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밖에도 자연 모사의 한 형태로서 식물의 증산 작용이나 지질학적 유동 전위 현상 등 물의 자연상의 물리적 거동을 응용한 에너지 전환 및 수확 기술(Energy Harvesting Technology)에 대해서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해당 결과들은 전통적인 학문 영역을 벗어나 다학제적인 연구 주제로서 물의 특성에 대한 미시적 이해를 높이고 있다. 

물과 다양한 소재 간의 미시적 관점의 상호 작용에 관련된 연구 영역들은 기초 및 응용과학의 영역 이외에도 나노 메디컬 의료 소재, 나노 바이오 생활 소재, 에너지 수확 소자(Energy Harvester) 등을 개발하는 산업적 영역에서도 틈새시장으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나노 및 분자 규모의 기초 과학 기술 성취와 함께 급속도로 발전해 가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학문 영역의 경계를 벗어나 다양한 학문 영역과 접점을 이루고 있으며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연구 영역을 발굴하는 등 주목할 만한 미래 기술로서의 가능성도 제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노 규모에서 액상 특히 물의 분자 거동을 조절하고 제어하는 관련 기술에 대한 필요성과 수요가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따라서 관련된 기초 및 응용과학 분야의 역량을 다지는 것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 고대 국가 하(夏)나라(기원전 2070년~기원전 1600년)의 우(禹)왕은 대규모 치수(治水) 사업의 성공을 통해 중국 역사의 시조로 등장하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미시적 세계의 물과 관련된 연구는 미래 기술을 확보하는 21세기 신 치수 사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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