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홍석철 교수가 본 재난기본소득 논쟁

홍석철 교수(경제학부)
홍석철 교수(경제학부)

‘기본소득’ 명명, 불필요한 논란 촉발

취지 좋지만 지원 기준 산정 부적절해

경기 부양에는 부족한 규모

재난 지원에 초점 맞춰야


일부 지자체에서 시작된 재난지원금 지원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정부도 이달 초에 건강보험료 기준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긴급재난생계지원금 지급 방침을 밝혔다. 재난지원금 지원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한 국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돕겠다는 것이 기본 취지지만, 더 나아가 소비 지출을 늘려 국가 경제와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경기 부양의 목적도 갖는다. 취지와 목적을 보면 코로나19 난국 극복을 위해 필요한 정책임은 분명하다.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국민 다수는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다. 하지만 지원 대상과 방식에 대해서는 논란이 적지 않다. 정부와 지자체의 재난지원금 계획은 무엇이 문제일까?

우선 지원 명칭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 재난지원금 논의는 한 달 전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 지급 계획이 공개되면서 본격화됐다. 지금도 경기도는 ‘재난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명칭이다. 최근 유럽 등에서 추진됐고 국내에서도 논의된 ‘기본소득’은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현금 급여의 개념이다.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은 한 번만 지급하는 것이고, 사용 제한이 없는 현금 지급이 아니다. 경남, 전북 전주 등에서도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역시 ‘기본소득’에 맞는 지원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와 대부분 지자체에서 사용하는 긴급재난생계지원금 또는 재난긴급생계비라는 명칭이 적절하다. 

법적 근거나 소요 재원을 보더라도 재난기본소득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대통령령인 ‘자연재난 구호 및 복구 비용 부담기준 등에 관한 규정’은 사회재난 발생 시 정부가 생계 안정을 위한 구호비 지원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자체의 경우에도 이번 정책은 재난 구호 지원에 대한 각종 규정에 근거하여 추진되고 있다. 또한 소요 재원을 보면, 서울시는 재난관리기금에서 지원금 전액을 충당하고, 경기도도 재난관리기금, 재해구호기금, 지역개발기금에서 충당할 계획이다. 코로나19의 재난 상황에서 명칭이 그리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재난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은 자칫 잘못된 오해를 초래하여 불필요한 논란을 가중할 수 있다. 재난지원금은 과거에도 여러 번 지급된 바 있다. 지난해에도 강원도 동해안 대형 산불 발생 이후 정부는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피해 주민에 대해서는 생계 구호를 위한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코로나19는 국가적 재난이고 모든 국민이 피해자이니, 이번 정책은 우리가 처음 접해보는 대규모 재난지원금 정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마 국민의 가장 큰 관심은 내가 지원을 받을 수 있냐는 것이다. 정책의 효율성 관점에서 본다면 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 피해로 생계의 어려움에 처한 국민을 선별하여 지원해야 한다. 강원도 산불 재난처럼 피해지역이나 피해 주민이 명확한 경우에는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전국이 재난 지역인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불가한 일이다. 피해자를 특정하기도 쉽지 않다. 코로나19 확진자와 그 가족은 물론이고 얼어붙은 소비로 피해를 본 영세 상인, 직장을 잃은 실직자,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 실천한 시민, 그리고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기업도 모두 피해자다. 이 중에서 누가 더 큰 코로나19의 피해를 겪고 있는지 입증하는 것은 불가한 일이다. 이런 것을 따지다 보면 긴급 지원의 적기를 놓치게 될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계획은 논란을 더 키웠다. 건강보험료 기준 소득 하위 70%라는 기준이 어디서 나왔는지 의문이다. 소득 하위 70% 정도면 생계 어려움이 크다는 것인가? 71%와 69%는 유의한 차이가 있을까? 모든 국민이 코로나19의 재난에 노출됐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경제적 어려움과 생활의 불편함을 겪고 있다. 지급 기준을 소득 기준으로 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 오히려 지급 기준을 둘러싼 논란을 만들어 어려운 시기에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코로나19 재난 지원을 결정한 국가 중 선별 지원을 택한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은 피해 기준으로 선별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피해 기준을 명확히 하기 어렵다면, 명칭은 틀렸지만 보편적 지원 계획을 밝힌 경기도의 지급 방식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만약 재정 부담 때문에 소득 하위 70% 기준을 만든 것이라면 일각에서 제안하는 것처럼 보편적으로 지원한 후 연말 정산을 통해 조정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에서 정리한 각 지역 재난지원금 현황을 보면, 지급방식은 현금 지급이 아니며 ‘현금성’ 지원이 대부분이다. 기존의 재난지원금은 직접적인 재산 피해에 대한 현금 지원이 주된 방식이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만약 생계 지원만을 목적으로 했다면 현금 지급도 가능했겠지만, 이번 지원은 심각한 어려움에 처한 소상공인과 영세 상인을 돕기 위한 목적이 크다. 재난지원금을 현금으로 지급했는데 소상공인과 영세 상인과는 무관한 지출 비중이 크다면 낭패다. 재난지원금의 주목적이 일반적인 경기 부양이라 해도 현금 지급의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미국은 소비 진작을 통한 경기 부양을 위해 1인당 300달러 이상의 조세 환급을 시행했는데, 2009년 조사 연구에 따르면 조세환급 수혜자 중 소비를 증가시킨 비율은 20%에 불과하고 28%는 저축을 52%는 빚을 갚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그만큼 현금 지원은 본래의 목적대로 사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필자가 지난 3월 재난기본소득이라는 개념으로 현금 지원 논의가 시작됐을 때 반대 의견을 냈던 것도 현금 지원의 효율성이 낮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이후 추진 과정에서 정부와 대부분 지자체에서는 현금성 지원 방식을 택했다. 현금성 지원은 현금은 아니지만 제한된 범위 내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지역 화폐, 지역 상품권, 선불카드 등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특히 백화점, 대형마트 등에서의 사용을 제한하여 영세상인들에게 더 혜택이 가도록 하고, 유흥비 지출과 같은 정책 취지에서 어긋나는 소비도 제한하고 있다. 또한 지급된 지원금을 일정 기한 내에 소진하지 않으면 환수하기도 하는데 기한 내 지출을 유도하여 정책 효과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는 잘 준비된 정책으로 보이지만 미흡한 점도 많다. 우선 일부 재난지원금은 온라인 결제를 막아 놓았다. 해당 지자체 상인에게 혜택을 더 주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상황이 해소되지 않아 온라인 주문 수요가 크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금성 지원은 수혜자가 정작 요긴한 곳에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을 갖는다. 현재 대부분 재난지원금은 통신료, 공과금 결제를 허용하지 않는데 취약계층에게는 이런 필수적인 지출 역시 중요할 수 있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대형마트 등에서의 사용을 제한한 것이 적절한 선택인지 의문이 든다. 이 제한은 영세상인들을 돕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오히려 소비 진작을 저해하여 경기 부양 효과를 반감할 수 있다. 사용처의 제한은 지역 상품권, 지역 화폐 등을 액면가보다 싸게 내다 팔아 현금화하는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정책 당국의 면밀한 검토와 보완이 필요한 것들이다.

재난 지원과 경기 부양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셈법은 복잡하다. 경기 부양 목적을 크게 내세웠기 때문에 그 효과가 미비하다면 재정 낭비에 대한 비판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경기 부양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이웃 나라들의 경험은 우리에게 유익한 교훈을 준다. 2008년 미국의 조세환급 정책의 평가 연구에서는 한계소비성향*을 대략 0.3으로 추계했다. 전체 지원금의 30% 정도만 소비로 이어져 애초 계획보다 소비 진작 효과가 작았다고 평가한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지원방식과 유사한 사례는 2009년 대만의 소비 바우처 지급 정책이었다. 이에 관한 평가 연구에서는 소비 바우처 지급의 한계소비성향을 0.243으로 추정했다. 현금 지급이 아닌 경우에도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

지금까지 발표된 정부와 지자체 재난지원금의 총 소요 예산은 13조 2천억 원 규모이다. 모든 수혜자가 지원금 모두를 소비한다면 국가의 가계 최종소비지출은 지원금과 동일한 크기로 증가할 것이다. 2018년 우리나라의 가계 최종소비지출은 약 825조 원 규모이다. 이번 재난지원금의 규모는 가계최종소비지출의 1.6%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에 한계소비성향을 고려하면 그 비중은 1% 미만이다. 정부가 추계한 일시적 정부 이전 지출*이 소비를 진작하여 GDP를 증가시키는 비율인 승수효과*는 약 0.16이다. 이를 재난지원금 총액에 적용하면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GDP가 약 2조 1천억 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크기는 지난해 우리나라 총 GDP의 0.1% 수준이다. 영세 상인을 돕고 지역 경제에 다소 도움을 주겠지만 경기 부양에는 턱없이 부족한 규모이다. 

결국 이번 재난지원금은 경기 부양 목적보다는 재난 지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재난 지원에 정책 목표를 명확히 두었다면 지금과 같이 논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쉬움이 있지만,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은 국회 추경안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새로 구성된 국회가 진정 국민을 생각한다면 조속히 집행되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5월 중순 전후 지급을 예상하는데 긴급재난지원의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늦다. 그리고 정부와 지자체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만으로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다. 지급한 지원금의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제대로 조사하고 분석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미래에 닥칠 비슷한 국가 재난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적절한 재난 지원의 규모, 대상, 방식, 집행 절차에 대한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한계소비성향: 추가로 얻게 되는 소득 중 저축되지 않고 소비되는 금액의 비율

*이전 지출: 생산 활동과 무관하게 아무런 대가 없이 지급하는 소득의 이전

*승수효과: 어떤 경제 요인의 변화가 다른 경제 요인의 변화를 유발해 파급적 효과를 낳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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