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 | 재난 거버넌스, 분열과 협력의 기로에 서다

작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의 최초 사례가 보고된 이후 전 세계가 전염병의 공포에 휩싸인 지 벌써 네 달이 넘었다. 각국에서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비롯한 다양한 방역 정책으로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확진자 증가세가 꺾이지 않는 가운데, 코로나 사태를 해결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지난 네 달 가까운 시간은 전 세계 거버넌스가 그동안 코로나19 사태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평가할 만한 충분한 기회를 제공했다.

SNUCRN(서울대코로나연구네트워크)는 지난달 서울대와 KOICA(한국국제협력단)가 코로나19 공동 연구에 합의하면서 출범했다. SNUCRN은 코로나19가 야기한 전 세계적 혼란과 다양한 사회 영역에 걸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인문사회학적 국제 규범을 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난 10일(금)에는 SNUCRN 2차 회의 ‘코로나19 시대, 재난 거버넌스의 형성과 전망: 국제비교연구를 위하여’가 유튜브로 실시간 중계됐다. 이날 강연회에 참석한 14명의 연사들은 코로나 사태에서 떠오른 기존 거버넌스의 여러 구조적 문제들을 지적하고 나아가 코로나19가 인류에게 남긴 과제와 세계적 전망을 분석했다.

 

코로나 쇼크, 전 세계를 마비시키다

코로나19의 확산은 단기간 내에 엄청난 대중적 공포심을 몰고 왔다. 이성훈 교수(경희대 미래문명원)는 “지금까지 한국은 IMF 사태와 사스(SARS) 발병과 같은 다양한 위기 상황을 겪었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전보다 더한 사회적 불안과 공포를 조성했다”라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범사회적 파급력과 불확실성이라는 코로나19의 특수성을 살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기초 감염 재생산 지수 R0는 전염병이 사람 간 전파되는 정도를 수치화한 것으로, R0가 1보다 크면 통계상 전염병이 감염자 1명에서 다른 사람 1명 이상에게 전파된다는 의미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R0 추정치는 1.4~2.5로, R0가 0.7인 대부분의 바이러스보다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 또한 무증상 감염이 빈번해 감염자와 비감염자의 구분이 불분명해졌고,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감염자로 인식하고 경계심을 갖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는 전염병을 담당하는 공공 보건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사회·문화 등 한 사회의 모든 인간 생활 분야와 나아가 전 세계 정부, 기업, 시민 사회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특수성이 특히 경제와 인권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 15일 IMF(국제통화기금)는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2008년 국제 금융 위기 직후보다도 낮은 -3.0%로,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2%로 예측했다. 코로나19의 경제적 타격과 그 원인으로 주병기 교수(경제학부)는 수요, 공급, 금융의 3중 위기를 언급했다. 3중 위기는 방역과 격리 조치로 인한 수요 위기, 세계적 공급망이 불투명해져 나타나는 공급 위기, 그리고 기업의 유동적인 대처 곤란으로 인한 국제 금융 시장의 위기를 뜻한다. 이런 위기 속 경제 불안정은 국가 내외의 경제 양극화를 유발해 노동 시장과 의료 시스템 등 복지 체계의 양극화마저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는 구성원의 사회 통합과 연대성의 상실로 이어진다. 더불어 KOICA 송진호 이사는 “전 세계 개발도상국의 소득 손실이 약 2,200억 달러에 달하는 등 개발도상국이 선진국보다 훨씬 큰 규모의 물질적, 비물질적 경제 피해를 입었다”라고 설명했다.

인종 간의 혐오와 차별 문제도 인권 문제의 맥락에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연사들은 특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출신 사람을 향한 혐오와 폭력 빈도가 눈에 띄게 증가한 것에 주목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도 중국인 차별의 목소리가 높았던 시기가 있다. 김재형 선임연구원(아시아연구소)은 한때 온라인에서 급속히 퍼졌던 중국인 입국 금지 주장을 분석하며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한국 공중 보건 시스템에 중국인들이 무임승차한다는 인식이 존재했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인종 혐오를 막기 위해 WHO(국제보건기구)는 지난 2015년, 질병명에 특정 지역이나 생명체의 이름을 붙이지 않도록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달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명명한 트윗을 비롯해 전 세계는 여전히 인종주의 정서와 혐오 범죄로 뜨겁다. 김 선임연구원은 각지에서 보고된 혐오 범죄의 사례들이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이 인종주의와 결합해 나타난 결과”라며 전염병 시대의 혐오와 차별에 대한 인권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존 거버넌스의 위기 대처 실패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보건 당국의 지휘 체계의 임무는 막중하다. 이들은 의료 서비스와 방역 대책이 어떻게 바이러스에 대처하고 작동하는지 주시해야 한다. 동시에 국내외 거버넌스는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소통해 국민을 안심시키는 등 위험 완화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발생 초기 기존 거버넌스는 협력적 대응 체제 마련에 미온적이었고 심지어 사태를 축소시키기도 했다. 실제로 중국은 코로나19 초기 발병 당시 보균자를 통제한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강제 격리하는 등 개인의 사생활과 권리를 침해했고, 언론을 통제해 바이러스에 관한 정보가 초기에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게 했다. 그 결과 코로나19는 특정 사회나 국가가 아닌 전 지구적 위세를 떨쳐, 현재 WHO와 UN 등의 글로벌 거버넌스와 각 국가 정부, G7, G20 등의 로컬 거버넌스의 위기 대처 정책이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음을 방증했다.

김태균 교수(국제대학원)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실패 원인을 그들이 운용하는 자본의 구조적 특성에서 찾았다. 김 교수는 “WHO의 종속적인 재정 구조가 글로벌 거버넌스의 독립성을 저해했다”라고 지적했다. WHO가 직접적으로 사용 가능한 예산인 ‘코어 펀딩’(Core Funding)은 5.2%에 그치지만 지원금 납부국의 의사에 따라 집행해야 하는 ‘넌 코어 펀딩’(Non-Core Funding)은 94.8%에 달한다. 이처럼 긴급 상황에 바로 투입 가능한 가용 예산의 범위가 좁기 때문에, WHO와 같은 글로벌 거버넌스는 다양한 국가의 이해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정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김 교수는 “오히려 국제 NGO나 글로벌 펀드가 글로벌 거버넌스보다 가용 예산이 많아 대처 능력이 훨씬 뛰어날지도 모른다”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김태균 교수는 각 국가의 방역 대책을 총괄하는 로컬 거버넌스가 보수적 민족주의로 회귀하는 경향을 거버넌스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과거 금융 위기나 에볼라 확산과 같은 전 지구적 위기에서 자본이 풍부했던 선진국은 타국과 협력하는 입장을 취하며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인류 전체의 미래와 안전보다는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국경을 봉쇄하고 여유 자본을 챙겼다. 협력과 원조보다는 대립과 국가주의를 선택한 것이다. 김 교수는 “글로벌 책무성의 부재가 코로나19 사태의 혼란을 가중했고, 결국 로컬 거버넌스의 연대를 붕괴시켰다”라고 분석했다. 이런 국제적 중앙 통제 체제의 공백은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것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국제 관계의 우호성과 자국민들의 신뢰마저 훼손시킬 가능성이 높다. 김재형 선임연구원은 1906년 샌프란시스코 흑사병 사례에서 “백인 사회의 중국인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한 로컬 거버넌스의 책임 회피는 사회 내 갈등 격화와 흑사병 통제 실패, 그리고 외교적 냉전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오늘날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반복되며 사회적 연대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우리가 가야 하는 길

전 세계는 앞으로 백신이 나올 때까지 최소 1년 이상 버티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다. 바이러스 변이로 올해 말 2차 팬데믹이 재개되면 더 심각한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는 예측도 제기됐다. 빌 게이츠 재단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만이 아니라 향후 유사한 팬데믹 사태가 주기적으로 반복될 것이라 경고했다. 인류는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며 생존을 위해 사회적 가치를 재편해 시스템을 재정립해야 한다. 이는 국경 봉쇄나 무역 중단과 같은 분열의 길이 아닌 글로벌 연대와 다양한 위기 대응 주체 양성의 길을 택하는 것으로 실현된다.

코로나19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글로벌 거버넌스가 현재의 자금 운용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여지는 사실상 매우 적다. 하지만 글로벌 거버넌스를 보완할 수 있는 시민 참여형 단체와 같은 다양한 민간 집단이 활성화되면 글로벌 거버넌스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이성훈 교수는 “현재 진행형인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시민 사회의 자발적 대응 모델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가 시민 참여형 단체들의 ‘애드보커시’(Advocacy) 활동에 주목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지역과 국가를 넘어 벌이는 국제적 권리 옹호 활동인 애드보커시는 지금까지 글로벌 거버넌스가 할 수 없었던 각종 구호 활동과 협력 네트워크의 구축을 보완해 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달 실물 경제 부문에서 활동하는 시민 참여형 상공회의소인 ‘C20’는 코로나19 사태로 타격받은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를 주장하는 애드보커시를 펼치기도 했다. 이를 비롯해 국경 없는 의사회와 같은 시민 참여형 단체의 공동 구호 활동이 글로벌 거버넌스와 협력해 나감으로써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김태균 교수는 기존 로컬 거버넌스 문제 해결을 위해 팬데믹에 대응하는 새로운 신뢰 기반 재난 프레임워크의 구축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다자 협력의 규칙을 제정하고 빈곤국이나 공공 보건 취약국을 먼저 지원할 수 있는 대내외적 협력 체계를 갖추자는 의미다. 이런 개혁과 더불어 팬데믹을 대비할 경제적 비용 또한 확보돼야 한다. 김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하는 비용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함께 확충하고, 한시적으로 경제 제재도 해제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재난 프레임워크의 도입과 경제적 비용 충당은 기존 로컬 거버넌스들의 국제적 협력과 책무성 확보에 도움을 줄 것이라 기대된다. 송진호 KOICA 이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개막을 위한 로컬 거버넌스의 글로벌 연대 의식 형성을 촉구하면서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 로컬 거버넌스의 대내외적 협력과 신뢰의 정신이 필요하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인류는 지금 현세대의 가장 큰 세계적 위기에 직면했다. 향후 몇 주 동안 국민과 정부가 내리는 결정은 앞으로의 세계를 크게 좌지우지할 것이다. 즉, 세계는 이제 코로나19 전과 후로 나뉠 것이라는 말이다. 그 때문에 코로나19 극복 후 새로운 사회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경 KOICA 이사장은 개회사 중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났기에 그 해답도 세계가 다 함께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팬데믹이라는 문제를 한 국가나 사회의 문제로만 간주하지 말고, 기존 거버넌스를 비롯한 다양한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공조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여전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거버넌스에 많은 과제가 남아 있음을 보여줬다. 보편성과 평등주의에 기초한 세계적 협력과 원조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이유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