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다. 국내 경제·사회·문화 분야 대부분의 역량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현상을 비꼬아 나타내는 단어다. 수도권에 인프라가 잘 갖춰진 것은 여러 국가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현상이지만 한국은 서울이 ‘공화국’에 비유될 만큼 수도권과 지방 간의 단절과 격차가 뚜렷하다. 수치로 보이는 소득이나 평균 연령, 인구 등을 넘어 문화나공동체를 접하고 마주하는 경험이 완전히 다르다. 이에 『대학신문』은 서울에서 출발해 영동선 묵호역~도계역,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경상남도 남해군을 지나는 여정을 따라 서울과 지방의 상이한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대치동 학원가에 수많은 학원 간판들이 줄지어 있다. 거리는 하원하는 학생들과 자녀를 데리러 온 학부모 차량으로 가득하다.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대치동 학원가에 수많은 학원 간판들이 줄지어 있다. 거리는 하원하는 학생들과 자녀를 데리러 온 학부모 차량으로 가득하다.

 

서초구에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다. 상가에는 다양한 음식점과 서점 등이 입점해 있고, 그 위로는 10여 층의 주거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서초구에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다. 상가에는 다양한 음식점과 서점 등이 입점해 있고, 그 위로는 10여 층의 주거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강남구의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있는 별마당 도서관의 전경이다. 13m의 책장에 7만여 권의 책들이 전시돼 있으며, 책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강남구의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있는 별마당 도서관의 전경이다. 13m의 책장에 7만여 권의 책들이 전시돼 있으며, 책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는 가운데, 마포구 ‘홍대 걷고싶은거리’에는 외출을 즐기는 인파가 가득하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는 가운데, 마포구 ‘홍대 걷고싶은거리’에는 외출을 즐기는 인파가 가득하다.

 

영동선을 타고 지나온 묵호역~도계역 인근 지역은 석탄 산업의 빛바랜 영광과 폐광 이후의 공허함이 뒤섞여 있었다. 1989년 석탄 산업 구조조정 정책인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대부분의 탄광이 문을 닫았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지역을 떠나면서 탄광촌의 경제는 침체됐다. 이후 폐광 지역에서 삼십 년 가까이 이어진 불황은 지역 곳곳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영동선 기차를 타기 전 동해시에 위치한 묵호역 근처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역사를 나섰다. 두세 개 발견한 카페는 모두 문을 닫았고 PC방 건물에도 임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뿐 아니라 입주한 점포가 없어 아예 비어있는 건물이 많았다. 주상복합 형태의 종합상가도 더는 운영하지 않아, 굳게 닫힌 철창 사이로 불 꺼진 간판과 잔뜩 때가 탄 가구가 보였다. 길에서 만난 고등학생 김기완 씨(17)에게 언제부터 종합상가가 문을 닫았는지 묻자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어요. 오래된 것 같은데. 주상복합 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없고요”라고 답했다.

역사로 돌아와 삼척시의 도계역으로 향하는 영동선 기차에 탑승했다. 도계역으로 향하는 한 시간의 여정 동안 정차하지 않고 지나친 역이 있었는데, 탑승자가 적어 역무원이 배치되지 않은 무배치간이역(무인역)이었다. 폐광 이후 기차가 정차하지 않으면서 관리되지 않은 역사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현재의 무인역 중 과거 탑승객이 많아 증축됐던 역도 있다는 사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영동선 주변 지역에서 일어난 변화를 실감하게 했다.

도계역에 도착한 뒤 택시를 타고 폐교된 ‘도계초 동덕분교’(동덕분교)와 폐광 전 사택 터로 이동했다. 택시 기사는 동덕분교 앞에 도착하자 택시에서 내려서 “탄광이 잘될 때는 도계초에 학생들 진짜 많이 다녔어. 폐광되고 사람들이 빠져나가 분교로 바뀌었다가 2007년에 없어졌지”라고 설명했다. 동덕분교를 빠져나온 뒤 사택 터를 찾아 골목골목을 누비는 동안 기사는 석탄 산업이 번성하던 시절을 회고하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옛날에는 여기가 다 사택이었어. 사람들이 퇴근한 다음에 돌 쌓고 판자 올리고 해서 사택촌이 만들어진 거야. 지금은 도계읍 인구가 만 이천밖에 안 되지만 그때는 여기 인구도 오 만을 넘었어. 근데 사택이 다 비어버리니까 아예 허물어서 밭농사를 짓거나 사택을 몇 개 터서 개인 집으로 만들어 쓰고 그러지. 그래서 빈집이 그대로 남아있는 건 별로 없어.”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기사의 목소리에서 변해버린 고향에 대한 향수가 묻어나왔다.

강원도 동해시 묵호역 인근, 더 이상 이용되지 않는 주상복합의 모습이다. 종합상가의 간판은 붙어있지만, 입구는 모두 철문으로 닫혀 있다.
강원도 동해시 묵호역 인근, 더 이상 이용되지 않는 주상복합의 모습이다. 종합상가의 간판은 붙어있지만, 입구는 모두 철문으로 닫혀 있다.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위치한 영동선 미로역의 모습이다. 2008년에 무인역으로 지정된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겼다.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위치한 영동선 미로역의 모습이다. 2008년에 무인역으로 지정된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겼다.

 

현재는 폐교된 동덕분교의 교문이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다.
현재는 폐교된 동덕분교의 교문이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다.

 

한때는 탄광 근로자를 위한 사택이 있던 부지다. 사람이 살지 않는 사택들을 허물고 인근 거주민들이 텃밭으로 이용하고 있다.
한때는 탄광 근로자를 위한 사택이 있던 부지다. 사람이 살지 않는 사택들을 허물고 인근 거주민들이 텃밭으로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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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에 위치한 안천 버스 정류소에 다다랐을 때 목적지인 보한마을까지 가는 마을버스가 두 시간 후에야 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주민 수가 적어 대중교통을 꼼꼼히 배치할 수 없는 탓이다. 보한마을 하수처리장 공사를 하러 온 이광주 씨(62)는 “여긴 어딜 가든 차 타고 다니지”라고 불편을 전했다. 결국 근처 슈퍼마켓 사장님께 사정을 설명해 마을버스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행복콜버스’를 탔다. 행복콜버스는 면 지역 주민들의 교통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진안군청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으로, 해당 지역 주민이면 5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이용 예약이 밀려 있어 행복콜버스를 타기 위해 3~40분 정도 기다려야 했고 이마저도 저녁 6시가 넘으면 이용할 수 없었다.

행복콜버스를 타고 이동해 보한마을 입구에 내렸다. 보한마을은 1990년대 용담댐 건설로 수몰된 네 개 마을의 실향민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근방에서 가장 크고 교류가 왕성한 동네였지만, 현재는 2~30분 동안 마을을 돌아다녀도 사람을 마주치기 힘들었다. 주민들의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사람들의 활동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한편 드물게 담벼락 너머로나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기자를 빤히 바라보며 수군거리기도 했는데, 마을 크기도 작고 젊은 사람이 거의 없어서 외지인을 바로 알아차리는 것 같았다.

마을을 한 바퀴 돌던 중 명패가 떼어져 있고 한동안 수도 가스 검침표가 갱신되지 않은 집을 발견했다.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나고 혼자 사시던 어르신이 돌아가시면서 방치되는 집이 생겨난 것이다. 이런 사정은 다른 마을도 마찬가지여서 안천면에서 걷다 보면 종종 오래된 빈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천초·중·고등학교는 전국 최초로 초·중·고가 하나의 학교로 통합돼 운영돼 왔다. 안천면에 사는 모든 학생들은 통학 버스를 타고 이 학교에 다니는데도 전교생 수는 6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학교 근처 버스 정류소에서 우연히 안천중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만났다. 학생은 매일 통학 버스로 등교해 수업을 듣는다고 말했다. 방과 후에는 어디서 공부하는지 묻자 “주민자치센터 공부방에서 영어랑 수학을 가르쳐주는데 거기 많이 다녀요”라고 대답했다.

학생과 헤어진 뒤 지역민을 위해 설립된 소규모 도서관인 ‘작은도서관’을 찾아 길을 나섰다. 지도에 따르면 안천에는 ‘안천마을문고’라는 이름의 작은도서관이 존재했다. 지도를 따라 목적지에 도착해도 도서관 건물을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주민자치센터에 들어가 안천마을문고의 위치를 물어봤다. 직원들은 처음 듣는 이름이라며 어리둥절해 하다 이내 한 분이 “아, 혹시 그걸 말하는 건가?” 하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주민자치센터 2층에 아이들이 읽을 법한 책들을 모아 마련해 놓은 작은 공간이 안천마을문고였던 것이다. 직원은 먼지가 소복이 쌓인 공간을 보여주며 “지금은 운영을 안 해요. 안천초·중·고 학생들이 와서 책 읽을 수 있게 만들어놨는데 거기 학생 수가 줄어드니까 여기도 문을 닫았어요”라고 설명했다. 한동안 찾는 이 없이 잠겨있던 도서관에는 저물어가는 햇빛이 가만히 내려앉아 있었다.

 

진안군 주민들이 이용하는 행복콜버스다.
진안군 주민들이 이용하는 행복콜버스다.
보한마을 인근에 있는 버려진 주택의 모습이다. 녹슨 철문과 가마솥, 뜯어진 벽지와 허물어진 담벼락은 그간 집이 얼마나 오래 방치됐는지 보여준다.
보한마을 인근에 있는 버려진 주택의 모습이다. 녹슨 철문과 가마솥, 뜯어진 벽지와 허물어진 담벼락은 그간 집이 얼마나 오래 방치됐는지 보여준다.

 

안천면 주민자치센터에 위치한 안천마을문고의 현재 모습이다. 학생들을 위한 교육용 만화책, 위인전이 책장 가득 있지만, 현재는 방문객이 없어 창고로 이용되고 있다.
안천면 주민자치센터에 위치한 안천마을문고의 현재 모습이다. 학생들을 위한 교육용 만화책, 위인전이 책장 가득 있지만, 현재는 방문객이 없어 창고로 이용되고 있다.

 

밭과 공터로 둘러싸인 안천초·중·고등학교의 모습이다. 학생들이 이용하는 통학 버스가 학교 앞에 주차돼 있다.
밭과 공터로 둘러싸인 안천초·중·고등학교의 모습이다. 학생들이 이용하는 통학 버스가 학교 앞에 주차돼 있다.

 

경상남도 남해군은 지난 10년 동안 청년 인구가 85% 감소하면서 급속한 고령화를 경험했다. 청년층이 유출되면서 지역의 활력이 떨어지고 문화가 단절되는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고, 남해군청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청년과를 설치하고 ‘청년창업거리’ ‘청년작가 자발적 유배 프로젝트’ ‘청년씨앗통장’ 등의 정책을 기획·진행하고 있다. 이런 시도들로 남해군은 작년부터 경상남도에서 ‘청년친화도시’로 불리게 됐지만, 그 결과 남해에 정말 청년들이 돌아올지는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

남해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린 뒤 ‘보물섬 시네마’라는 이름의 ‘작은영화관’을 찾아갔다. 작은영화관은 지역민의 영화 문화 향유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에서 건립한 소규모의 영화관이다. 2014년에 보물섬 시네마가 생기기 전까지 남해군 주민들은 영화관을 가려면 한 시간 가까이 자동차를 타고 진주나 사천까지 가야 했다. 보물섬 시네마는 총 다섯 작품을 상영 중이었는데 영화관에 도착한 오후 세 시의 티켓 부스 화면에는 총 세 편의 영화만 떠 있었다. 상영 시간표가 티켓 부스 화면을 가득 메우는 서울의 영화관들과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영화관에서 짐을 옮기는 직원에게 평소에 관람객이 얼마나 오는지 묻자 “비수기인지 성수기인지에 따라 다른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영화관에 사람이 찰 정도로 많지는 않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보물섬 시네마를 나온 뒤 방문한 ‘회나무 아랫길’은 남해군청이 청년 점포 여섯 개를 모아 조성한 남해의 ‘청년창업거리’다. 회나무 아랫길을 따라 담벼락과 바닥에 남색으로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고 인스타그램을 주로 이용하는 청년들을 겨냥한 듯 골목과 가게들은 아기자기하게 꾸며졌다. 회나무 아랫길에서 한 디저트 가게를 운영 중인 임유진 사장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장님은 “나이와 남해 거주 여부 등을 따져서 입주를 결정해요. 지금 6호점이 공사 중인데 그곳이 회나무 아랫길에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점포예요”라고 말했다. 회나무 아랫길은 청년창업거리라기에는 총 여섯 개의 청년 점포만이 서로 띄엄띄엄 자리했고, 청년 점포에 대한 군청의 지원도 인테리어 디자인과 시공 비용으로 한정됐다. 관광객이 다시금 찾게 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모든 일정이 끝난 뒤 남해 청년 단체 ‘해변의 카카카’ 회원 하성민 씨(31)에게 남해에서의 생활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해변의 카카카는 서울에서 생활하던 친구들이 함께 남해에 내려와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청년 네트워크로 현재는 여섯 명의 청년이 소속돼 있다. 그들은 지난해 지방 소멸을 주제로 한 인터뷰, 수필, 소설 등을 기고 받아 『우리가 소멸하는 방법』이라는 지역 잡지를 만들었고, 초등학교에서 지방 소멸을 테마로 한 ‘남해 무인도 영화제’를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하성민 씨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에게 지방으로 내려오는 것은 일종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 느껴질 수 있어요”라며 청년들을 남해로 부르려면 시골의 삶을 경험해 볼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도시에 거주하는 청년들이 남해에 방문해 지역의 생활을 일정 기간 체험하고, 선택할 수 있게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아직은 이곳에 청년들이 유입되고 있지는 않아요. 남해는 이제 막 청년 관련 정책을 시작하는 중이라서 앞으로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보물섬 시네마의 오후 시간대 영화 상영표다. 하나뿐인 상영관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횟수는 하루에 6회뿐이다.

 

남해군 청년창업거리인 ‘회나무 아랫길’의 전경이다. 현재 6개의 점포가 거리에 띄엄띄엄 배치돼 있다.
남해군 청년창업거리인 ‘회나무 아랫길’의 전경이다. 현재 6개의 점포가 거리에 띄엄띄엄 배치돼 있다.

 

 

해변의 카카카에서 주최한 제1회 남해 ‘무인도영화제’의 포스터다. (사진제공: 해변의 카카카)
해변의 카카카에서 주최한 제1회 남해 ‘무인도영화제’의 포스터다. (사진제공: 해변의 카카카)

여행을 마무리하고 도착한 서울역에서 휘황찬란한 야경과 소음에 잠시 동안 눈앞이 어지러워졌다. 서울역은 한밤중에도 대낮처럼 밝고 시끄러워서, 날이 저물면 마을에 어둠이 내려앉던 지난 며칠이 꿈결처럼 느껴졌다. 같은 나라에 살고 있어도 지역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삶을 경험할 수 있었던 지난 여정은, 우리가 정말 서울이라는 이름의 ‘공화국’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고민을 안겨줬다.

레이아웃: 신동준 기자 sdj3862@snu.ac.kr

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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