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알바’, 새내기라면 한번쯤 꿈꿔 봤을 것이다. 조금만 일해도 무지막지한 수입에 잔소리 하는 사람도, 몸 쓸 일도 없다니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특히 과외와 학원 아르바이트, 일일 캠퍼스 투어는 꿀 알바로 유명해 많은 서울대생이 도전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고충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대학신문』에서는 이들 아르바이트의 현주소를 찾아 ‘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사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과외

⃟시간 약속 어겨 놓고 나 몰라라=어머니의 소개로 수학 과외를 시작한 백원식 씨(산업공학과·18). 오랜만에 맡은 과외라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3개월 만에 그만두고 말았다. 사실 과외 첫날부터 수상했다. 학원에 갔다 왔다는 이유로 학생이 수업 시간에 30분이나 늦은 것이다. 한창 바쁠 고등학교 1학년이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백 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지만, 학생이 시간 약속을 어기는 일은 계속됐다. 10분씩 지각하는 것은 기본이고, ‘학원이 늦게 끝났다’라거나 ‘밥 먹느라 늦었다’라는 핑계를 대며 한 시간이나 늦기도 했다. 학부모가 수업 당일에 수업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을 달려 학생의 집 앞에 도착했는데, 학부모로부터 학생이 아프니 수업을 한 시간만 늦추자는 연락이 온 것이다. 근처 카페에서 학부모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학부모는 한참 후에야 아이가 많이 아프니 내일 다시 오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언제 부를지 몰라 밥도 안 먹고 연락을 기다렸지만 백원식 씨에게 남은 것은 허탈한 마음뿐이었다. 

학부모는 백 씨에게 이 같은 일에 대해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늦은 만큼 수업을 더 해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백 씨는 학부모의 이런 태도가 제일 가슴 아팠다고 고백했다. 그는 “학부모는 돈을 많이 주니 수업 시간을 마음대로 바꿔도 과외 교사가 이해해야 한다는 태도로 나왔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과외도 취업난=과외의 높은 시급과 희소성은 학생들이 과외를 쉽게 그만둘 수 없는 이유다. 시급이 높아야 만 원에 불과한 다른 알바와 달리, 과외는 시간당 적어도 2만 원은 벌 수 있다. 백 씨는 “돈을 많이 받으니 이 정도 요구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과외 자리의 희소성은 학생들을 묶는 또 다른 족쇄다. 과외 중개 사이트가 여럿 생겼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지인의 소개가 아니면 과외를 시작하기 힘들고, 특히 문과 계열 대학생은 수요가 적어 과외를 구하기 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번 잡은 과외 자리는 학생들에게 놓칠 수 없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강남에서 중학생 과외를 하는 지민주 씨(사회학과·17)는 “과외를 그만둬도 다른 과외를 바로 구하기 어려워 최대한 학부모에게 잘 보여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불안한 구두 계약=과외 시장에는 시급·시간을 구두로 계약하는 것이 당연한 관행으로 퍼져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정한 근무 조건은 어떤 법적 효력도 없어 과외비 지급 같은 민감한 사안을 학부모의 선의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이에 학생들은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학부모에게 과외비를 선불로 받는 것을 선택한다. 김준수 씨(소비자아동학부·18)는 “급여와 시간을 확실히 정했는데도 학부모는 상습적으로 과외비를 체불했다”라며 “주변에 과외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과외비부터 받으라고 신신당부한다”라고 말했다. 유민석 씨(인류학과·17)는 “과외는 내가 원할 때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다”라는 말로 과외의 불안정성을 요약했다.

⃟나의 노동을 보호해달라=과외 교사는 현행법상 개인 사업자(자영업자)로, 근무 환경을 고용주가 아닌 본인이 결정할 수 있다고 간주돼 노동법의 보호 대상에서 배제돼 왔다. 번역가, 플랫폼 노동자도 같은 이유로 개인 사업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들 직종에 종사하는 대다수 사람들이 상대방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들어 사실상 근로자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최근 늘고 있다. 이에 법원도 이들을 노동법의 보호 대상으로 판단하는 등 노동법이 보호하는 범위는 확장되는 추세다. 

과외는 이 같은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 과외 교사가 노동법의 보호 대상인지에 대한 의견부터 분분하다. 이지혜 노무사는 “과외를 단순한 민법상 계약관계로 보기에는 학부모는 임금을 주는 ‘어른’이고 상대방은 대학생이라 서로 동등한 위치가 아니라는 특수성이 있다”라면서 “과외를 제도권으로 포함시켜 최소한의 감시를 수행할 안전망을 설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보다 신중히 과외에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권현지 교수(사회학과)는 “모든 학생이 과외를 하며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것”이라며 “추가적인 실태 조사를 통해 현실을 파악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과외 교사를 근로자로 인정하면 세금징수의 대상이 된다는 것도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무용지물 근로계약서, 학원 알바

⃟유명무실 근로계약서=신리나 씨(아시아언어문명학부·15)는 학원의 막무가내식 지시에 고충을 겪은 경험이 있다. 학원의 어처구니없는 ‘갑질’은 신 씨가 출근한 날부터 시작됐다. 원장이 수업 준비를 하라며 수업 시작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나오라고 요구한 것이다. 불합리하다고 느낀 신 씨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원장의 태도는 돌변했다. “학원 원장 간 네트워크가 있는데 거기에 너를 고발하겠다”라거나 “무단 퇴사 때문에 학원에 생기는 손해는 네가 책임져야 한다”라고 말하는 등 갖은 협박과 회유가 이어졌다. 학생이 지각해서 수업을 늦게 시작하더라도 “학생이 수업을 덜 받아 학부모가 문제를 제기하면 너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라며 추가 수업을 해 줄 것을 요구했다. 물론 추가 근무 수당은 한푼도 지급되지 않았다. 신 씨는 “근로계약서의 근무 시간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라고 털어놓았다.

⃟써도 문제 근로계약서=근로계약서의 숨겨진 조항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도 있다. 소현석 씨(경영학과·15)는 6개월간 근무하면 120만 원을 추가로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강남의 한 학원에서 6개월을 근무했다. 학원 일은 생각보다 고됐지만, 120만 원의 인센티브는 그가 일하는 동력이 됐다. 하지만 정작 6개월이 지난 뒤 학원은 약속했던 120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입사할 때 작성했던 계약서를 다시 자세히 읽어보니 ‘후임을 직접 데려오지 않으면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근로계약서를 쓰는 내내 학원 원장이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아 세부 조항을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법마저 외면한 학원 아르바이트생들=아르바이트 현장에서 근로계약서는 제대로 작성되지 않는 실정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15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만 19세에서 만 24세의 시급제 근로자 중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이들은 전체의 37.6%에 불과했으며, 근로계약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도 65.4%나 됐다. 심지어 학원업은 이 같은 불법 행위를 감시·처벌할 근로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의 신정웅 위원장은 “학원 업종은 산재 현장도 아니고 급여 규모도 작다 보니 아무래도 근로 감독관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 관리가 소홀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현행 노동법도 학원 아르바이트생에게 불리하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부당 해고 신청이 불가능해, 소규모 학원은 아르바이트생이 문제를 제기했다가 부당하게 해고돼도 복직을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근무 중 협박과 폭언을 들어도 명확한 증거 없이 고소하면 기각되기 쉽다. 신정웅 위원장은 “증거주의를 채택하는 국내 법정은 증명이나 녹취가 없으면 피해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라며 “현실적으로 고소인이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드물기에 이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들을 돕기 위해서는=법적 절차에 따르는 비용이 크다 보니 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을 일찌감치 포기하는 대학생이 많다. 소 씨는 “실제로 원장을 고소하기에는 비용과 노력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 놓인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무료로 소송을 대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엄격한 지원 기준과 복잡한 절차, 홍보 부족으로 실효성은 없다는 평가가 많다. 신정웅 위원장은 이를 두고 “현장의 근로자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가 현실성 있게 재정비돼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학원 업계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신 위원장은 “근로 감독관이 학원 현장을 주기적으로 감독해 불법 행위를 상시 제재하고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권현지 교수 또한 “한국의 학원업 규모가 큰 만큼, 업계 내 고용 현실을 전반적으로 규제하는 체계를 개발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알고 보니 노예? 캠퍼스 투어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김진수 씨(경제학과·17)는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캠퍼스 투어 멘토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일일 멘토에 지원했다. 일당이 3~5만 원에 이르는 데다가 당일에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꿀 알바’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익숙한 캠퍼스를 학생들에게 안내하기만 하면 되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달랐다. 진로 상담과 공부법 강의, 꿈 탐색 등 업체가 준비한 프로그램을 혼자 진행해야 했고, 그가 맡은 학생도 30명이나 됐다. 김진수 씨는 “모집 공고에는 단순히 가이드만 한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에 속았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사전 교육이 있다는 말에 30분 일찍 집합 장소에 도착했으나 이에 대한 비용도 지급받지 못했다. 김 씨는 “돈도 제대로 못 받고 일까지 고돼 힘들었다”라며 “다시는 캠퍼스 투어 알바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단기 알바라도 대우는 해줘야=현행법상 업무 교육 목적의 시간이라도 임금은 지급돼야 한다. 이지혜 노무사는 “사전 교육이라도 교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불법”이라고 설명했다. 업체 측은 이에 대해 “전체 일급 3만 5천 원과 순수 투어 시간을 기준으로 계산한 시급 만 2천 원을 함께 공지해 오해가 생겼다”라며 일급에는 교육비가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모집 공고를 수정하겠다고 했으나 공고는 이후에도 수정되지 않았다. 업체가 모호한 표현으로 학생을 모으려 한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캠퍼스 투어 업체도 많다. 작년에 캠퍼스 투어를 하다가 업체 관계자에게 갑질을 당했다는 한 학생은 “피해를 보상받을 방법을 찾아 봤지만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아 피해 보상이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라며 “이 업체를 통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 번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업체는 단기 아르바이트는 관행적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현행법상 사업주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최대 500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지혜 노무사는 “고용주는 일용직이라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업무 내용·근로 시간 등을 명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타대생을 서울대생으로 둔갑시켜 견학 온 학생을 속인 사례도 있었다. 캠퍼스투어 아르바이트에 참여했던 한 학생은 “서울대생 지원자가 부족하거나 갑자기 그만두면 타대생을 고용하기도 했다”라면서 “학교 지리를 잘 아는 다른 서울대생과 함께 움직이게 해 견학 온 학생들에게 이들이 서울대생처럼 보이게 했다”라고 말했다.

캠퍼스 투어 아르바이트 문제에 학교가 나설 필요성도 제기된다. 권현지 교수는 “학교가 이들 업체의 캠퍼스 투어를 묵인했기에, 학생들이 업체에게 피해를 입었다면 이들에게 어떤 규제를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학생지원과 학생지원센터 관계자도 “돈을 받고 학생을 고용하는 업체에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대학생을 고용하는 아르바이트 근로 현장에 문제의식을 가지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피해가 있더라도 그 규모가 크지 않을뿐더러 학업이 주업인 대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심각성이 크게 인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은 그 규모에 상관없이 똑같이 신성하게 여겨져야 하고, 보호받아야 한다. 내 친구와 선배, 후배가 더 이상 을이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삽화: 김채영 기자 kcygag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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