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현 교수(건축학과)
박소현 교수(건축학과)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시간이 흐르며 도시의 공간도 인간도 모두 변한다. 고정된 것은 없다. 도시에서 그리고 인생에서 오래된 것과 새 것은 각 시대 특유의 가치에 기반해 끊임없이 서로 갈등하고, 충돌하고, 타협하고, 다시 또 새롭게 도전한다. 오래됨과 새로움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복합적이며 동시에 이율배반적인 도시 특성은 오늘로 이어지는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지난 수십 년간 압축 성장의 급격한 도시 건설 시대를 지나오며 크고 새로운 것을 짓기 위해 작고 오래된 것들을 무수히 허물어 왔다. 새 것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오래된 것을 정신없이 부수어 내다 보니, 어느 순간 오래된 것의 스펙트럼은 통상의 역사성 가치보다도 오히려 색다름의 희소성 가치가 더 부각되는 일종의 소멸 임계점에까지 다다랐다. 이즈음 도시의 시간과 장소에 대한 매우 다른 태도도 도처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눈부시게 새로운 것에 대해 여전히 열광하면서, 동시에 멸종해 가는 오래되고 특이한 것에 대해서도 열광하며, 도시 공간을 매우 다양하게 향유하는 시간을 맞는다. 이를 극명히 표출하는 대표 장소에 을지로3가 현상도 포함된다. 

을지로3가는 새 것도 오래된 것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장소 학습을 해 보라는 경고 신호를 벌써부터 보내고 있었는데, 도시 보존을 공부한다는 나는 사실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서울 도심부 지역에 대해 나의 선배 세대는 새 것을 높이 세우는 대규모 재개발을 계획해 오래된 것의 전면 철거를 이미 1970년대 후반에 예정시켜 많은 부분 실행이 됐으나, 을지로3가를 경계로 멈추어선 채 세월이 또 흘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이제 개발의 시대는 가고 재생의 시대가 온다는 도시 담론을 내세웠던 나의 동 세대는 2010년대 중반에 급기야 ‘수복형 정비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이전과 다른 유형의 공공 개입을 시도했다. 겨우 남아있는 오래된 것을 더 이상 없애지 않기 위해, 옛길과 같은 도시 조직의 흔적은 최소한 남긴다는 절충의 관념을 모호하게 제도에 얹었다. 이는 개발 계획보다 뭔가 나아진 것 같지만, 정작 을지로3가의 장소 기반 산업 생태계를 담아 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 보기가 어렵다. 

선배 세대와 우리 세대의 계획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을지로3가와 주변 지역 현장에서 한정적으로만 시도됐을 뿐 대부분 실현되지 않았다. 그 사이 자본, 주체, 절차, 시행 등의 복잡한 도시 작동 구조가 의도치 않은 현 상태를 어정쩡하게 유지시키는 가운데, 후배 세대는 색다른 행위를 제도권 계획 영역 밖에서 직접 실행했다. 예로, 을지로3가에 오래도록 존재해 온 지물포 안뜰에, 도기상 2층에, 철물점 한편에 간판도 없는 식당, 카페, 공방을 차려 지역 구석구석을 순식간에 ‘힙’한 장소로 만들어 소비, 향유하고 있었다. 이 놀라운 움직임은 이후 어디로 향하게 될까? 형태 기반의 고전적 장소 설계 접근에 익숙해져 온 선배 세대나 우리 세대는 지금의 을지로3가 현상을 잘 보듬을 수 있는 창의적인 도시 보존·재생 대안을 제대로 모색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기에 치열한 논의를 거쳐 새로이 또 이어져야 하는 숙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도시에서 그리고 인생에서 새 것이 모두 좋은 것도 아니지만, 오래된 것이 항상 절대 선의 가치를 대변하는 것도 사실은 아니다. 도시의 역사와 시간에 대해 대체적으로 근엄하고 무겁게만 여겨 온 선배 세대나 우리 세대보다, ‘레트로’라는 감성일지언정 오래된 물건이며 장소를 거리낌 없이 편하고 즐겁고 유연하게 자기들 방식으로 만들어 즐겁게 소비하는 후배 세대가 대책 없이 부럽고 고맙다. 한편, 여전히 우리의 도시 공간 현상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이나 답을 찾지 못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어쩌면 제대로 해 봤어야 할 질문을 아직 충분히 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으니,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여러 질문을 함께 던져보자 요청해 본다.

 

*박소현 교수는 현재 국책 기관인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소장으로 근무 중이고, 2021년 봄에 대학으로 복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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