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근태 작가의 예술 이야기

30년 동안 장애인을 그려온 화가가 있다. 모두가 장애인을 외면할 때 그는 낯선 외양 속에 가려진 그들의 순수한 마음을 봤고, 이를 캔버스에 아름답게 그려냈다. 장애에 대한 편견에 맞서자는 그의 메시지는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국내 화가 최초로 뉴욕 UN 본부에 초청받아 개인 전시회를 열고, 프랑스 파리 OECD 본부 등에서 작품을 전시하며 활발하게 활동 중인 ‘인권 예술가’ 김근태의 이야기다. 김 작가에게 삶의 질곡에서 피어난 그의 예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눈과 귀가 불편한 김근태 작가를 대리해 그의 부인 최호순 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장애인을 그리게 된 계기와 30년 동안 그들을 그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A. 1992년에 전남 목포 고하도에 있는 장애인 복지관 ‘공생재활원’에서 150명의 지적 장애 아동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나는 대학 시절 참여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트라우마로 인해 방황하며 작가로서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장애 아동을 보자마자 나의 사명은 장애 아동을 그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애인들의 모습이 내 모습 같기도 하고, 5·18의 참상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공생재활원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먹고 자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비록 장애인의 외형에 관심을 두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점차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그림을 그리는 원동력이 됐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순수한 에너지를 그릴 때면 마음이 편해졌고 트라우마가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Q. 장애인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하며, 그림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A. 활동 초기에는 장애인들의 뒤틀린 몸과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렸고 어두운 색을 많이 사용했다. 이후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의 밝고 아름다운 내면 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노랑, 초록, 빨강 등 밝은 원색으로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아이들의 순수함을 묘사하려 했다. 최근 작을 본 관람객은 편안함과 행복함을 느낀다고 하더라.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장애인들의 순수함에서 위로를 얻고 많은 것을 배웠으면 한다.

(사진 제공: 김근태)
(사진 제공: 김근태)

 

Q. 장애 아동을 그린 대표 연작 <들꽃처럼 별들처럼>을 시기 순으로 살펴보면 화풍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이전에는 여러 색으로 인물 형태를 분명히 그렸지만, 최근 작 7기 <빛 속으로>는 노란색이 주로 사용된 추상화다. 

A. 육체적 건강 상태가 작품에 반영됐다. 사고로 눈 한쪽이 실명돼 줄곧 다른 쪽 눈에 의존해 생활해왔다. 그런데 최근 무리하게 작업을 한 탓에 나머지 한쪽 눈도 잘 보이지 않게 됐다. 구체적인 사물의 형태가 보이지 않으니 눈이 아닌 마음으로 대상을 보며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빛 속으로>는 마치 의사가 상처를 도려내고 약을 발라 치료하는 것처럼 유화를 긁어내고 다시 덧칠하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노란색에는 아픔을 치유하는 빛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았다. 내가 지적 장애 아이들을 통해 치유됐듯, 아이들의 아픔도 그림으로, 또 노란빛으로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품을 완성했다. 

Q. 두 눈과 한쪽 귀가 불편한 장애인으로서의 경험이 다른 장애인을 그리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

A. 시각과 청력을 잃은 경험은 작품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장애 아동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눈과 귀가 멀면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터널에 갇힌 느낌이 든다. 지루하고 답답해서 한자리에 있을 수 없는데, 장애 아동이돌아다니는 이유도 이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그들의 상황을 직접 겪으며 아이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눈과 귀를 통해 방해받지 않으니 작업할 때 몰입이 잘되고 정신이 또렷해졌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

Q. UN, 패럴림픽 등에서 자신의 작품과 세계 장애 아동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고 발달 장애 작가 동화책을 출판하는 등 장애 화가를 지원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A. 제네바 UN 사무국에서 개인전을 기획할 때 장애 아동 화가와 함께 전시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기관의 도움을 받아 각지의 재능 있는 장애 아동 화가를 선발했다. 다섯 대륙의 아홉 개국에서 장애 아동의 그림을 모아 UN, 유네스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와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서 전시했다. 전시에 초대된 아이들과 부모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장애 아동이 전업 화가로 성장할 수 있게 돕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과 올해 5월에 제자로 두고 있는 발달 장애 작가가 처음으로 그림책을 출판한다. 앞으로도 북 콘서트, 전시, 공모전 등을 개최해 장애 화가를 지원할 예정이다.

Q.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

A. 세계 최초로 미술 패럴림픽을 개최하고 싶다. 재능 있는 장애 화가가 그린 좋은 그림이 많지만, 이를 전시할 기회가 부족하다. 장애인에게는 기본적인 생활뿐만 아니라 그들이 꿈과 재능을 펼칠 기회도 중요하다. 또한 더 많은 사람이 장애인 예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로 작업을 넓혀갈 것이다.

김근태 작가는 5월 13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5·18 민주화 운동 40주년 기념 전시 〈오월, 별이 된 들꽃〉을 앞두고 있다. 그는 이 전시에서 토우, 한지 조형, 영상이라는 새로운 작업물을 선보인다. 그의 예술이 더 많은 장애 아동에게 희망을 선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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