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버려지는 미술품은 어디로 가나

대부분의 미대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고심한 작품을 과제전에서 선보인다. 그러나 과제전이 끝난 후, 대다수의 작품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채 버려지곤 한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작가로서의 경력을 쌓은 후에야 이들은 대중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을 판단할 수 있게 됨에도, 그러한 판단 없이 대부분의 작품이 버려지는 것이다. 박제성 교수(조소과)는 “스스로 보관할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구분할 수 있을 때까지 모든 작품을 보관하거나 기록해야 한다”라며 “특히 대학 시절에 제작한 작품은 다양한 실험과 치열한 고민 끝에 탄생한 작품이기에 중요하다”라고 이야기했다. 학생들 역시 작품을 스스로 버리고 싶은 것은 아닐진대, 그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대 사람들의 이야기

▷정하은 씨(조소과·15)의 이야기

“대학 시절 마지막으로 제작한 졸업 전시회 출품작조차 철거해 버렸습니다. 조형물의 높이가 높았기 때문에 보관할 만한 공간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은 자주 있습니다. 몇 달에 걸쳐 작업한 작품에 애정이 생기더라도, 공간이 부족한 탓에 아쉬운 마음으로 작품을 해체합니다. 해체 도중 작품의 일부분만 떼서 보관하기도 합니다. 작품을 실물로 보관할 수 없기에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포트폴리오로 구성합니다. 실물로 작품을 보관하면 작품의 부족한 부분이 잘 보이겠지만, 보관 공간이 없다 보니 작품을 기록하면서 아쉬움을 달랩니다.”

▷안병남 씨(서양화과·15)의 이야기

“서양화과 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많은 작품을 만듭니다. 작품 하나하나마다 새 틀을 쓸 수는 없기에 대부분의 캔버스 작품에서 천만 제거하고, 틀은 재활용합니다. 물론 마음에 드는 몇몇 작품은 전시 후에도 집에 보관합니다. 저는 학생인지라 작업실이 따로 없어서 베란다에 작업을 차곡차곡 쌓아 둡니다. 이제는 점차 집에도 작품을 둘 공간이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미대 학생들 대부분이 작품의 실물을 보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생들은 대개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관하는 방법을 택하지만, 작품을 파기하는 데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전시 이후 작품은 어디로 가는가

봄철 아름다운 벚꽃길로 유명한 미대의 뒷길을 걷다 보면 석조 작업장에서 돌을 다듬는 소리가 들린다. 돌과 나무를 조각하고 있는 학생이 보인다. 완성되지 않은 대리석 조각 옆에는 지난 학기에 미대 복도에서 전시됐던 석조 작품이 옮겨 와있다. 작품으로 가득한 미대 뒷길을 따라 가보자. 

▷석조 작업장: 석조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조각한 대리석이나 오석 작품이 쌓여 있다. 어디선가 그라인더로 돌을 갈아내고 정으로 깎아내는 소리가 들린다. 석조 작품의 거친 표면에 광을 내기 위해서는 학생들은 한 학기 내내 사포로 요철을 긁어내야 한다. 일그러진 얼굴, 동물, 캐릭터 등 여러 모양으로 조각된 돌은 비와 바람을 맞으면서 변색됐다. 무겁고 자리를 차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정성 들인 석조 작업을 학교에 버리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각 동산: 조소과 2학년이 되면 학생들은 폴리우레탄으로 인체 전신을 주조하는 작업을 한다. 주조된 작품은 집에 들고 가기 어려운 크기다. 학생들이 전시장과 가까운 곳에 있는 동산에 작품을 버리면서 조각 동산이 탄생했다. 동산에 난 좁은 길에는 여러 작품이 나무에 기대어져 있거나, 바닥에 누워있다. 강호연 강사(조소과)는 “약 10년 전부터 조각 동산이 있었다”라면서 “보통 5년에 한 번씩 동산에 놓인 작품을 정리한다”라고 말했다.

▷미대 건물 곳곳 구석진 공간들: 회화과 학생들이 작업한 평면 캔버스는 계단 밑 좁은 공간에 쌓여서 보관된다. 학년이 올라가며 작업 규모가 커지기에 학생들은 작품을 실물로 보관하기보다 사진으로 기록한다. 작품이 커지면서 제작비보다 보관비가 더 들기 때문이다. 버려진 캔버스의 틀은 새 작품에 재활용된다. 

버려지는 미술품 살려내기

학생들은 전시 책자를 만들어 버려지는 작품을 기록하기도 한다. 지난 9일(목)에 판매가 시작된 책 『어마무시한 책 제목』이 대표적이다. 『어마무시한 책 제목』은 서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의 미대 재학생 11명이 모여 구성한 ‘어마무시한 사람들’ 팀이 과제전 이후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책이다. 김혜린 씨(조소과·18)는 “전시장을 찾아가기 힘든 요즘, 작품을 편히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를 책자 형태로 재구성했다”라면서 “책 자체가 하나의 전시장”이라고 책을 소개했다. 이어 “과제전이 끝나고 더이상 전시가 불가했던 작품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완성된 작품을 스튜디오에서 촬영해 포트폴리오를 제작하기도 한다. 이진아 씨(이화여대 섬유예술학과·19)는 “교수님들은 학생들에게 전시 전에 작품을 포트폴리오 기록으로 남길 것을 당부한다”라며 “실제 학생들이 작품에 대한 기록을 잘 남긴지를 평가받기도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사진만으로 전시 분위기를 구현할 수는 없다. 미대 하규원 학생회장(조소과·17)은 “스튜디오에서는 작품의 일부만을 촬영하고, 사진으로는 전시장의 분위기를 표현할 수 없다”라면서 “하지만 학생들이 작품에 애정을 갖고 구체적으로 작품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몇몇 학생들은 학교 밖 전시공간을 대여해 방학마다 비공식 전시를 열기도 한다. 지난 2월 21일부터 사흘간 연남갤러리에서 진행된 전시 〈숨은〉이 한 예다. 이 전시는 과제전 이후 남은 작업을 발전시키자는 취지로 개최됐다. 7명의 미대 재학생은 각자 학기 중에 만들었던 작품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이 외에도 이번 겨울에 과제작을 전시하는 〈낑낑전〉 〈mummification〉을 비롯한 소규모 전시가 열렸다. 전시 <숨은>을 개최한 장서영 씨(조소과·19)는 비공식 전시를 “다음 학기에 더 좋은 작업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연습하는 과정”으로 소개했다. 이외에도 학생들의 작품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학교 자체에서도 외부 대여 기관 등과 적극적으로 협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작품 보관에 더 넓은 공간을 사용하도록 보관 창고를 마련하는 등 실질적인 도움이 있어야 한다.

강호연 강사는 “작가가 되고 나서 대학 시절 만들었던 작품을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라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미대 학생들이 정성으로 그리고 조각한 작품이 전시될 수 있길, 추후 작품 활동에 밑거름이 될 대학 시절의 작품을 잘 간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기대해본다.

사진: 이연후 기자 opalho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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