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내가 소속되어 있던 학부생 학회에선 어떤 주제로 토론을 하면 마지막에 가선 다들 주장하길 포기하곤 이 문제는 결국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해야 해결할 수 있다는 황당무계한 결론을 내던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전 지구적 위기가 찾아와서 공통의 적이 생긴 사람들이 협력하지 않는 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자조적인 농담 같은 것이었다. 

결론 내리길 포기하고 에라 모르겠다며 친구들과 술잔이나 기울이러 가던 그때부터 꽤 시간이 지난 지금, 전 지구적 위기가 실제로 인류를 덮치고 있다. 그것은 외계인 침략 같은 황당무계한 것이 아닌 '코로나바이러스'라는 현실적인 모습을 하고 우리를 찾아왔다.

그 시절 나와 친구들은 전 지구적 위기가 인류에게 찾아오면 사람들이 연대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애석하게도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 이후 세계는 반대의 방향으로 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19가 덮친 세계엔 협력과 연대보다 차별과 혐오의 상흔이 더 깊게 새겨지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전 세계적으로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더 심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서구에서는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자행되고, 그 아시아에 속한 중국에서는 다시 아프리카 출신자에 대한 인종차별이 행해지는 연쇄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많은 언론에서 다뤘다. 

이러한 일은 한국과도 무관하지 않다. 코로나19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한 지난 몇 개월 동안 코로나19에 대한 공포를 빌미로 한 차별과 혐오는 그 대상을 점점 넓히고 있다. 발병 초기 중국인에게 집중되던 혐오는 확진자 수 폭증으로 인해 신천지예수교도 신도 및 기독교인, 심지어는 대구·경북 시민에게까지 뻗어갔다. 최근엔 이태원 집단감염으로 인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도 극에 달했다. 

이런 점에서 초기 코로나19 확산 때부터 이번 이태원 집단감염 사태에서 언론이 보여준 행태는 매우 실망적이었다. 차별과 혐오를 막아야 할 언론이 오히려 그것을 부추기는 것에 모자라 생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19를 빌미로 확산하는 차별과 혐오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다만 이런 비판이 방역을 위해서 특정 집단에 대해 차별과 혐오를 해선 안 된다는 논조로 치중되는 것은 조금 우려된다. 물론 백번 옳은 말이고,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필요한 근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쳐선 안 된다. 그것만으로 그친다면 오히려 혐오는 왜곡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차별과 혐오를 하지 않는 것이 시혜라는 잘못된 신호를 사람들에게 줄 수 있다. 차별당하지 않을 권리는 방역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방역 때문만이 아니라 원래부터 해선 안 되는 짓이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한 공포를 빌미로 자행되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 당당히 아니라고,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라고 더 큰 목소리를 외쳐야 한다.

코로나19는 단기간 내에 종식될 수 없고 이번 집단감염 같은 일이 앞으로도 몇 번이고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대로 가면 그때마다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확대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코로나19 자체에 대한 위험과 동시에 언제든지 자신이 차별의 대상이 될 위험까지 동시에 떠안게 되었다. 공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 침묵한다면 다음 피해자는 내가 될 것이다. 

 

여동하 간사

삽화: 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