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 김초엽 소설가를 만나다

영화 <스타워즈>나 <인터스텔라>와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SF 계열 작품들은 광활한 우주세계와 과학 기술의 경이로움을 예찬하는 동시에 가족애, 행복, 자유처럼 인간 보편에 대한 교훈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2019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김초엽 작가의 시선은 이런 주류 담론에서 몇 발짝 벗어나 있다. 그의 작품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장애인, 이주민, 여성, 비백인 등에 대한 차별과 소외의 문제를 거론하는 ‘현실적인’ SF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가 그려내는 세계는 인간의 현실을 초월한 우주가 아니라, 인간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일상의 연장선에서 펼쳐진 우주다. 지난 11일(월) 서울 혜화동의 한 카페에서 그와 함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정상적인 것’에서 멀어진 사람들

김초엽 작가의 작품은 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사회적 문제의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김 작가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과학이 언제나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과학 지식이 우리에게 완전한 진리를 전해주리라는 믿음에서 벗어나, 그것이 연구되는 사회적 맥락도 살펴 지식의 완전성을 교차 검증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필요한 까닭은 과학을 절대적인 진리로 이상화하는 경향성이 “사회가 정의한 정상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열등하다고 여기는 양상”으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2018) 중

김초엽 작가는 작품을 통해 “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기술적, 물리적인 설계 내부”의 어느 곳에서나 특정 개인을 소외시키고 차별하는 관습이 반복됨을 지적한다. 그의 작품에서 중심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은 세계의 도덕, 윤리, 규율 등의 진리를 가르치는 과학 시스템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시스템에 소속돼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일부의 사람들이 있다. 김 작가의 소설은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에 등장하는 다수의 인물들은 세계가 규정한 정상적인 인간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억압받고 배척당한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2019)의 델피는 성격적 결함을 초래하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지만, 정상적인 개조 수술을 받지 못해 ‘비개조인’의 구역에 격리당한다. 지구로 순례를 온 올리브 역시 자신의 얼굴에 있는 커다란 흉터 때문에 지구의 사람들에게 동정과 경멸의 시선을 받는다. 「인지 공간」(2020)의 이브는 ‘일반인’에 준하는 신체적인 성장을 충분히 이루지 못했다는 이유로 세계의 지식을 총망라하는 ‘격자 구조물’에 접근할 자격을 얻지 못한다.

이런 선천적인 조건뿐만 아니라 각 시기에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경제적, 생산적 가치를 실현할 수 없는 존재들 역시 억압과 소외의 대상이 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안나는 한때 국가가 힘을 쏟고 있던 냉동수면 기술의 연구를 주도하던 과학자였다. 하지만 웜홀 통로가 발견됨에 따라 국가는 안나가 책임자로 있었던 연구의 경제적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연구 지원금과 연구 인력을 줄이는 조치를 취한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가족이 살고 있는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향하는 우주선 역시 효용성 하락의 이유로 더 이상 출항하지 않게 됨에 따라, 안나는 연구자로서의 삶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가족들이 있는 슬렌포니아 행성에도 평생 방문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김초엽 작가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과 사람 간의 의사소통이 더욱 편리해지긴 했지만, 그 편리성이 곧 소통 자체도 활발해졌음을 암시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한다. 문명이 지금보다 훨씬 고차원적으로 발전하더라도 정상성에 대한 규정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이 규정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소통에서 배제하는 현상이 반복될 것이라는 의미다. 그는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술의 발전에서 비롯되는 혜택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지 숙고하고, 그 이면에 소외되는 존재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밝혔다.

 

주류 SF의 시각에서 벗어나기

김초엽 작가는 “기존의 인식적 틀과 세계관을 다른 장르보다 훨씬 자유롭게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이 SF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사고 실험은 인간의 본질을 구성한다고 여겨지는 특성들을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공생 가설」(2019)의 뇌과학 연구소 직원들은 뇌파를 이용해 갓난아기의 생각을 읽어내며 아기들이 ‘인간성’이라 불리는 윤리와 도덕을 외계 행성의 생물들로부터 배웠다는 것을 알아챈다. 우리의 인간성이 외계 생물로부터 비롯한다는 설정은 인간적인 가치가 오직 인간만의 것이라 여겼던 기존의 인식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린다. 그는 “사고의 전환을 통해 오늘날 인간이 직면한 윤리적 문제들을 보다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라고 답했다. 이런 가운데 김 작가의 소설에서는 인류 보편에 대한 교훈을 다룬 여타의 SF 작품들과 달리, 일상에서 쉽게 목도할 수 있는 사회적인, 개인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서사의 주를 이룰 수 있게 된다.

재경의 답변은 사람들이 인류 최초의 터널 비행사에게 기대하는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람들은 재경의 도전이 인류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 그런 거시적인 관점의 답을 기대했다. 재경은 새로운 몸에 대한 기대만 들떠 늘어놓았다.

-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2019) 중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서 우주비행사로 선발된 재경은 유약한 신체를 가진 동양인 기혼 여성이라는 사실만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는다. 작품은 재경을 둘러싼 사회의 편견과 비난을 다루는 동시에, 끝내 우주에 가지 않고 바다 속으로 사라진 재경의 행적을 회고한다. 우주비행사를 주요 인물로 내세운 SF 작품들이 대체로 인류가 우주에서 벌이는 모험을 작품의 주된 소재로 설정하는 반면, 김 작가의 작품은 지극히 일상적인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처럼 한국 문학에서 SF를 통해 소외되는 사람들의 세계를 그려내는 작가는 흔치 않다. 장애인, 여성, 비백인 등 김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의 위치에 놓이곤 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그려낸다. 이들의 이야기는 기존의 SF 소설이 보여줬던 ‘인류 문명의 위대함’이나 ‘우주 세계로의 진출 및 정복’처럼 극적인 서사가 아니다. 그들은 그와 같은 문명의 발전 뒤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김 작가의 주인공들은 “지식과 인간성에 대한 맹목적인 규정과 찬사로 인해 다양한 관점의 가치를 존중받지 못한” 이들이다. 각자의 사회적 위치와 시선이 존중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들의 이야기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돼 왔던 것이다.

이렇듯 개인의 삶에 내재한 일상적인 차별 및 소외에 대한 이야기와 SF의 만남은 사뭇 생소하게 느껴지곤 한다. 김초엽 작가는 이 생소함이 “수십 년 전에 쓰인 SF 소설의 잔재”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한국 문학계에서 SF는 우주 전쟁이나 식민지 개척처럼 고전적인 클리셰를 다루는 장르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김 작가는 “주류적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SF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모습을 마음껏 상상하도록 돕고” 세계를 이해할 인식 체계를 확장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편의 휴머니즘을 탈피한 공존과 상생

갈등을 덮기 위해 사람들은 때때로 공존과 상생이라는 가치를 편향적인 방향으로 해석하곤 한다. 김초엽 작가는 “공존을 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느 한쪽의 입장만을 고려한 일방적인 주장일 때가 많다”라면서 우리에게는 “사회의 주류 인간상에 동화되는 것을 공존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라고 지적한다. 「인지 공간」의 사람들은 격자 구조물에 접근할 수 없는 이브를 위해 특수한 사다리를 만들어주지만, 이브는 단지 낮은 층수에 있는 지식에만 다가갈 수 있을 뿐이었다. 「관내분실」(2017)에서 지민의 동료는 곧 출산과 육아 휴가를 앞둔 지민의 사정을 배려한다며 그녀에게 새로운 일을 맡기지 않는다. 김 작가는 이렇듯 “우리 사회의 휴머니즘은 표준적인 인간상을 설정하고 그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지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존재들은 휴머니즘에 의한 구제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희진은 루이가 가까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눈앞에는 회색의 축축한 피부를 가진 여전히 낯선 존재가 서 있다. 마음을 다해 사랑하기에는 너무 빨리 죽어버리는, 인간의 감각으로는 온전히 느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완전한 타자.

하지만 희진은 이해하고 싶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고 싶었다. 루이의 연속성을, 분절되지 않은 루이의 존재를.

- 「스펙트럼」(2018) 중

김초엽 작가의 주인공들은 지금의 사회와 완전히 다른 물리적 구조를 갖는 세계에서도 여전히 누군가를 배제하는 행위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그럼에도 타자와의 공존을 이루기 위한 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세계의 구조가 바뀌더라도 정상과 비정상을 규정하고 타인을 차별하는 행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말했지만, “그럼에도 개인적 차원에서 타자와의 관계는 호전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스펙트럼」에서 과학자 희진과 외계 생물인 루이들은 동일한 언어로 대화할 수 없음에도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상생한다. 루이들은 조건 없이 희진을 계속해서 보살피고 희진은 그들의 색채 언어를 배우고자 노력함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서로를 이해하고자 한다. 「공생 가설」에서 갓난아이들은 뇌를 매개로 삼아 류드밀라 행성의 외계 생명들과 교감하며 그 행성을 자신의 근원으로 여기고, 성인이 된 후에도 류드밀라 마르코프의 행성 그림을 보며 무의식 중에 그들을 그리워한다.

이때 소설은 ‘완전하지 못한 유토피아’의 모습을 제시한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 ‘마을’은 신분, 환경, 외형에 따른 차별도, 전쟁처럼 공동체의 존속을 위협하는 갈등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다. 그렇지만 마을의 주인공은 그런 평화와 행복의 ‘근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마을의 불완전함을 예감한다. 김초엽 작가는 이것이 “유토피아라는 개념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라고 짚었다. 마을에서 지구로 온 순례자들이 인위적인 행복에 대해 품었던 의문은, 차별과 배제의 문제에 시달리는 지구인을 외면하지 않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지구에는 자신들이 누렸던 맹목적인 행복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것에서 ‘인간다움’과 연민을 느꼈던 것이다. 김 작가는 지구에 남기로 결정한 순례자들을 통해 설사 불가능하더라도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공존과 상생임을 간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김초엽 작가는 “자의적인 휴머니즘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녹여내는 것이 내 글쓰기 목표”라고 말하며, 인간성의 표준을 임의로 정당화하는 우리 사회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하나의 이상으로 동화되지 않고도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SF 소설을 통해 고민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드러냈다. 그의 소설은 과학의 상상력을 빌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면서도 기존의 우리들이 겪고 있는 아픔의 궤적을 보존함으로써 온기를 담는다.

 

김초엽 작가는 “작품의 의미를 만드는 주체는 독자”라며 자신의 역할은 “이야기 자체를 생명력 있게 그려내는 것”이라 밝혔다. 그는 SF의 매력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식 체계의 한계를 확장시키는 것에 있다고 언급하면서, “나의 소설을 통해 기존의 인식 체계와 세계관을 넘어, 독자들이 자신의 우주를 여행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그의 소설은 사회 구조를 전복시키는 것처럼 극적인 방법을 택해 아픔을 극복하기보다, 개인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보듬는 ‘이타적인’ 이야기다.

 

사진: 원가영 기자 irenber@snu.ac.kr, 삽화: 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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