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학(지리학과 석사과정)
이건학(지리학과 석사과정)

지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남들에게 ‘공간’을 설명할 때 크게 통계학적 방법론과 사진이라는 도구를 자주 사용한다.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객체들에 대한 통계적 정보와 분석 결과를 통해 해당 공간을 설명할 수도 있고, 아니면 간단하게 그 공간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통계와 사진을 공부하면 할수록 이 두 방법론은 썩 신뢰할 만하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나는 학부생일 때부터 통계학적 방법론을 사용해서 지리적 현상을 관찰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관련 책들도 찾아서 읽고, 교수님들께 질문도 많이 하고, 부끄럽지만 논문을 읽을 때 위키를 옆에 끼고 방법론 파트를 읽곤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이렇게 통계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통계학적 분석 결과에 근거를 둔 주장들을 믿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통계학이라는 방법론에 대한 비전문가들의 시각이 너무 맹목적이라는 데 있다. 숫자와 그래프로 결과를 제시하면 많은 경우 사람들이 비판 없이 수용하고, 대부분 그 숫자와 그래프를 얻기 위해 진행한 분석 방법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논문에서도 지면상의 관계로 많은 경우 결과만 제시할 뿐 과정을 자세하게 서술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연구자가 얼마든지 교묘하게 결과를 조작할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나는 통계학 관련 경험이 쌓일수록 이 위험성을 점차 더 많이 감지하게 됐다. 실제로 요즘 내가 수강하고 있는 한 세미나 수업에서 다루는 논문들을 읽다 보면 한 편 건너 한 편 정도 꼴로 통계학적 오류가 발견된다. 이는 연구자가 해당 방법론에 대한 깊은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잘 아는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고 티가 안 나는 잘못된 방법으로 방법론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통계학을 공부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통계학적 양심’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통계학적 양심은 말 그대로 통계학적 분석을 통해 무언가를 주장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자신의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뜻의 내가 만든 용어다. 남들이 알아차리기 힘든 어떤 교묘한 방법으로 결과를 왜곡해 연구자가 원하는 방향의 결론을 도출하는 것도 비양심적이고, 자신이 사용하고자 하는 통계적 방법론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무작정 사용하는 것도 비양심적이다. 

통계적 방법론은 주장하는 사람이 주의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라면, 사진은 소비하는 사람이 주의해서 소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약간 다르다. 예를 들어 셀카를 과하게 ‘포샵’하는 행위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사진에는 ‘원본’의 개념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즉 모든 사진은 어느 정도 ‘포샵’을 거친 상태라는 것이다.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사람들 중 일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진 파일 형식인 jpeg로 사진을 저장하는 대신 소위 raw 파일로 통칭되는 사진 파일 확장자를 선호한다. 이 raw 파일은 말 그대로 카메라가 렌즈를 통해 빛을 인식한 날것 그대로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raw 파일을 열어보면 뭔가 모르게 분위기가 예쁘지 않고 색감 역시 다소 실망스럽다. 하지만 카메라의 이미지센서가 보는 세상은 바로 raw 파일이다.

물론 카메라 회사도 이러한 raw 파일의 특징을 알기 때문에 카메라가 사진을 찍자마자 raw 파일을 자체적으로 ‘포샵’하도록 설정해놓았고, 그 결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jpeg 파일이 탄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카메라가 주는 기본 jpeg 파일은 이미 보정된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셀카 어플이나 보정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이 직접 ‘포샵’한 사진만 보정된 사진이라고 생각하니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약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raw 파일이 아닌 이상 세상에 있는 모든 사진 파일은 이미 ‘포샵’된 사진이다.

그래서 사진을 생산할 때 보정은 거짓말이 아닌 작가의 의도가 묻어있는 표현의 영역으로 봐야 한다. 어차피 사진의 원본(raw 파일)을 사용하기는 좀 그렇고, 그러면 보정을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데 어차피 할 거 작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보정하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보정한 사진을 실제 세상과 동일한 것으로 소비자가 인식하면 곤란하다. 작가가 최대한 실제 세상과 유사하게 사진을 보정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포샵’이 그렇듯이 현실과 다른 방향으로 보정이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소비하는 사람은 보정된 사진이 실제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포샵’이 필수적인 사진 세상에서 작가의 시선을 무작정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머릿속에서 재보정하는 능력이 있을 때 진정으로 사진을 즐겁게 소비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평소 내가 이 글처럼 사진과 통계는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니지만, 이런 식으로 살다 보면 세상에 믿을 건 하나도 없고 삶은 피곤해진다. 물론 주변 사람들 역시 나를 보면서 너무 따진다고 불평을 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을 연구하는 학자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공부하면서도 인스타 사진을 보면서도 사실을 찾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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