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수)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국민 앞에 섰다. 그는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준수하지 못했다”라고 자인하며 사과했다. 사과의 내용은 △경영 승계에 더는 불법과 편법을 이용하지 않을 것 △노동3권을 준수해 무노조 경영을 포기할 것 △4세에게 경영을 물려주지 않을 것 등이었다. 

대국민 사과는 검찰 조사가 이 부회장의 턱 밑까지 다다른 시점에서 진행됐다.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이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장부를 조작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비율을 조정했으며, 이는 이 부회장이 그룹에 대한 통제력을 키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는 혐의다. 삼성 그룹 미래전략실 등 핵심조직의 여러 임직원이 조사를 받았고 분식회계의 증거를 인멸하려 한 죄목으로 유죄 선고가 내려지며, 이재용 부회장의 소환 및 사법 처리가 임박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뤄진 대국민 사과는 그 진정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 감형을 위한 면피성 사과라는 지적, 대(對) 국민이 아니라 대(對) 검찰 혹은 재판부 사과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더구나 사과는 혐의에 대한 해명이나 사죄가 아닌 향후 법을 지키겠다는 추상적인 약속으로만 채워졌다. 지키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 약속만 나열한 대국민 사과는 오랫동안 반복돼 온 재벌 그룹들의 형식적 사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구체적인 시행 방안은 빈칸으로 남았다.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호언했으나, 승계 과정에서 생겨난 수많은 피해자의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당장 삼성의 지배 구조가 편법에 가깝다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현재 삼성 그룹 지배 고리의 핵심은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으로, 이(李)가가 확실히 지배권을 가지는 두 기업을 통해 삼성전자를 비롯한 그룹 내 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금산분리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지만, 현행법상 주식을 평가하는 기준이 시가가 아닌 취득원가라는 점을 이용해 유지되는 편법이다. 원칙을 어기고 편법 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지배 구조를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 없이는 경영권 승계에 대한 어떤 말도 공허할 뿐이다.

다른 약속도 마찬가지다. 노동3권이라는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지 않겠다는 것은 새삼스레 선언하고 약속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과오를 진정으로 뉘우쳤다면 ‘어기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라 오랜 기간 노동조합을 탄압한 잘못에 대한 깊은 반성과 보상의 노력을 보여야 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와해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최측근이 법정구속된 문제, 지금도 노조활동으로 인한 부당해고에 항의하며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와의 문제 등을 어떻게 해결할지 설명하지 않는 반성은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2008년 이건희 회장의 사과 및 사퇴가 떠오른다. 당시 이건희 회장이 에버랜드를 이용, 자녀에게 불법적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려 한 일이 문제가 됐다. 그룹 총수가 대국민 사과를 통해 여러 약속을 했지만 대부분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전과는 달리 정말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라는 약속에 진심을 실었다면,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많은 대기업, 재벌가들이 사회적 비난이 쏟아질 때 잠깐 고개를 숙이고 그 순간을 모면한 후 근본적인 변화나 해결책은 모른 척해왔다. 하지만 보여주기식 사과로 위기를 모면하는 방식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삼성도 알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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