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 코로나 이후의 공연예술계 이야기

지난 14일(목) 국립국악원이 주최한 긴급 토론회 ‘포스트 코로나 공연예술: 조망과 모색’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한 문화계의 급변을 짚었다. 이날 토론회에는 허윤정 교수(국악과), 장지영 칼럼니스트, 최해리 무용인류학자를 포함한 총 7명의 문화계 주요 인사들이 참여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불안정해진 공연예술계가 맞이한 변화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공연예술계의 미래를 논했다. 임재원 국립국악원장은 “한 번의 토론회로 현황에 맞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라며 “지속적으로 토론의 장을 마련해 문화예술계의 현황을 점검하고 앞으로의 발전방향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섯 달 만에 코로나로 뒤바뀐 공연예술계

작년 12월 이후, 코로나19가 심화되면서 공연예술계는 온라인으로 공연을 유통하고 있다. 집에서도 손쉽게 공연을 볼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공연장을 대체하면서 공연예술 감상 방식이 변했다. 국립국악원의 공연 〈금요공감〉과 세종문화회관의 콘서트 〈힘콘〉이 대표적이다. 해외에서는 이전에 유료로 제공했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온라인 공연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디지털 콘서트홀’을 일시적으로 무료로 공개했다. 윤중강 국악평론가는 “근대 시민사회의 산물인 극장이 사라져가는 것”이라고 달라진 문화예술계를 풀이했다. 극장에서는 관객이 수동적으로 공연을 관람하는 감상자의 지위에 머무른다. 반면 스트리밍 공연에서는 공연평을 댓글로 남기는 주체적 관객도 등장해 관객과 공연자 간 상호작용이 활발해졌다. 윤 평론가는 “극장에서는 옆자리에 앉은 관객과 소통할 수 없었지만, 온라인 공연에서는 댓글로 다른 관객의 생각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점차 자발적으로 예술활동에 동참하는 사람도 늘었다. 중국이나 프랑스에서는 집 안에서도 춤을 추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지칭하는 ‘홈루덴스’(Home+Ludens)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주성혜 교수는 “코로나 사태로 자발적인 예술 참여의 움직임이 생겼다”라며 “국내에서 주입식으로 교육되던 예술이 대중화되면서 스스로 예술을 찾아서 배우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한편 각 시도별 문화재단은 코로나19로 침체된 문화예술계를 활성화하고자 ‘긴급예술가 지원정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지원책에는 문화계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고, 일회적인 지원방안만 담겨 있었다. 이와 대조되게 독일 정부는 올해 3월 29일 “이 시대에 예술가들의 노력이 절실하다”라며 27조 원 규모의 예술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예술가들을 코로나19 사태로 침체된 국내외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는 주체로 받아들인 것이다. 최해리 무용인류학자는 “지원이 적절히 이뤄지려면 공연예술계가 어려움을 겪는 근본적 이유를 찾아야 한다”라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공연예술은 어떤 의미였는지를 먼저 고민해봐야한다”라고 말했다. 과거 우리나라는 기후 변화, 질병 등 인류에게 닥친 다양한 문제를 문화예술로 극복해냈다. 윤중강 평론가는 “콜레라가 유행했던 1902년, 공연예술인들이 ‘협률사’라는 공연 형식을 만들어 순회공연을 하며 전염병을 이겨냈다”라며 “더 이전에는 사회적 재난에 공동체의 힘으로 대응하기 위해 ‘처용무’ ‘손님굿’과 같이 민중적인 공연 장르가 탄생했다”라고 설명했다.

공연예술계의 미래, 온라인 유통

공연 영상 콘텐츠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유통된다. 첫 번째는 영화표 가격으로 영화관에서 녹화된 공연을 제공하는 ‘시네마 라이브 이벤트’ 방식이다. MET 라이브와 NT 라이브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예술이 전당이 최초로 MET 라이브와 NT 라이브 모델을 활용해 공연 영상 콘텐츠를 유통했고, 뒤이어 영화사 숨에서 같은 방식으로 연극 〈혜경궁 홍씨〉를 녹화해 공개했다. 다른 하나는 스트리밍으로 공연을 생중계해주고 VOD를 통해 촬영된 영상을 올리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네이버 TV가 주요한 스트리밍 플랫폼이다. 시네마 라이브 이벤트 방식은 오페라나 연극과 같이 긴 시간의 공연을 극장에서 몰입해서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코로나19와 같이 극장에 방문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활용될 수 없는 방식이다. 이에 반해, 스트리밍 방식은 개인적인 공간에서도 영상을 소비할 수 있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공연예술의 대안으로 촉망받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기존에 극장에서 진행됐던 공연예술의 단점을 보완했다. 극장 공연은 대부분 비용이 많이 들고, 시공간의 제약이 커 문화 소외 계층이 발생하기 쉽다. 장지영 칼럼니스트는 “해외에서는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같이 공연을 다시 보거나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스템이 이미 마련돼 있었다”라며 “우리나라에서도 위기 상황에 닥쳐 공연 스트리밍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마련하기보다 그간 촬영한 영상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일례로 영국의 스트리밍 사이트 ‘디지털 씨어터’는 영국에 위치한 여러 공연장이 가입돼 있다. 촬영된 공연 영상이 ‘디지털 씨어터’에 모이고, 사람들은 회비를 내고 사이트에서 공연을 관람한다.

스트리밍 공연은 ‘카메라의 시선’에서 제작된 영상이기 때문에 극장에서 지정된 자리에 앉아 보는 공연보다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주성혜 교수는 “여러 대의 카메라를 통해 촬영된 공연에선 객석에서 보이지 않았던 무대의 소품과 디자인까지도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카메라의 줌인과 줌아웃 기능에 익숙해진 관객은 능동적으로 공연을 관람하기 힘들다. 주 교수는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직접적인 문화예술 향유 경험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송현민 칼럼니스트는 원일 예술감독의 시나위 영상에 대해 “연주자의 미세한 표정과 자세까지 볼 수 있었지만 작은 소리를 연상하긴 어려웠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영국의 로열 오페라 극장에는 카메라로 공연을 정확하게 촬영하기 위해 ‘비주얼 디렉터’라는 직업이 존재한다. 이들은 다양한 카메라를 다루는 법을 전문적으로 숙지한 후 영상 작업을 한다. 송현민 칼럼니스트는 “공연장의 형태가 다양해진 만큼 스트리밍과 관련된 새로운 직업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의 공연예술계, 디스토피아일까

국내 공연예술계는 온라인 공연을 위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무대를 적절히 카메라로 촬영하는 기술이 부족하다. 허윤정 교수는 “자연에 가까운 전통 악기의 소리를 디지털로 변환하는 기술력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원일 예술감독은 “미세한 소리는 영상에 담을 수 없었다”라며 “공연 음악을 이해하지 못해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카메라를 움직이기도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스트리밍 공연이 활성화되면서 공연장, 배우, 촬영 기술자 사이의 수익 배분에도 문제가 생겼다. 장지영 칼럼니스트는 “처음엔 공연장이 스트리밍 공연의 수익을 전부 가졌다”라며 “공연으로 큰 수익을 남기고 배우 노동조합이 목소리를 내면서 다른 이들에게도 수익이 돌아갔다”라고 전했다. 

특히 스트리밍 서비스는 예술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킨다. 지난달 26일 독일의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스트리밍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리사이틀은 다른 국내 피아니스트의 스트리밍 공연과 약 세 배 정도의 조회수 차이를 보였다. 장지영 칼럼니스트는 “유명인이 출현하는 공연만 스트리밍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어 비주류 예술가들이 예술계에서 배제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국립국악원을 비롯한 국가의 지원을 받는 공연 단체와 민간 공연 단체 간 수익차도 커지고 있다. 허윤정 교수는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민간 업체가 경쟁에서 밀려 ‘승자독식’ 구조가 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한편 코로나19 사태는 한국의 공연예술계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원일 예술감독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라졌고, 한국 공연예술과 전통의 정체성을 고민한 시간이 주어졌다”라고 평했다. 또한 원 예술감독은 청년 예술가들의 문화계 참여도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전자기기 하나만으로도 컨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시대”라며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킬 만한 시도를 하는 사람이 더 성공할 수 있다”라고 미래를 내다봤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공연예술계는 약 다섯 달에 걸쳐 빠르게 변화했다. 이번 토론회는 공연예술의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변화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앞으로의 공연예술계가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도록 꾸준히 공연예술계를 진단하며 문화의 힘으로 사회적 재난에 대처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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