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농성의 일상은 “이게 마지막이야”
고공농성의 일상은 “이게 마지막이야”
  • 신다솜 수습기자
  • 승인 2020.05.17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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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

 부당한 정리해고에 항의하기 위해 426일간 땅을 밟지 않고 살아간 사람들이 있다. 파인텍 굴뚝농성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굴뚝농성을 기억하고 노동자들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가 지난해 초연된 후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연우소극장에서 지난 7일(목)부터 오는 31일까지 재공연된다. 극은 굴뚝농성을 모티브로 하지만, 굴뚝농성 현장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굴뚝농성의 당사자인 남편 대신 아내 정화와 그를 둘러싼 학습지 교사 선영, 아르바이트생 보람에 주목해 일상에서 고공농성 중인 평범한 노동자들을 그려낸다. 

사진 캡션: 정화는 점장에게 임금 체불 내역서를 점장에게 전해달라며 매일 찾아오는 보람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사진 제공: 연우무대)
정화는 점장에게 임금 체불 내역서를 점장에게 전해달라며 매일 찾아오는 보람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사진 제공: 연우무대)

구석진 지하에 있는 무대는 노동자들의 삶과 닮았다. 작은 컨테이너 같은 소극장은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가까워 무대 분위기가 그대로 관객석에 전달된다. 무대 위 24시간 편의점의 밝고 서늘한 불빛 아래 반듯이 정리된 편의점 음식이 관객을 응시한다. 외부인 출입금지, CCTV 촬영중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 등 편의점 창문에 붙은 안내문들이 삭막함과 갑갑함을 더한다.

남편 대신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정화는 편의점에서 점장의 눈치를 보며 일한다. 그는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지만 자식들의 학습지비를 석 달간 내지 못한다. 학습지 교사인 선영에게 미안한 마음에 학습지비를 빨리 갚으려 노력하던 정화는 어느 순간부터, 선영의 호의에 기대어 학습지비 내는 기한을 늦추려 한다.

“주머니에 만 원은 있을 거 아니에요. 저 이제 매일 올게요. 매일 만 원씩만 주세요.”

선영은 매일 만 원씩이라도 달라며 정화를 찾아온다. 정화가 학습지비를 주지 않아 회사에서 해고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선영의 배려심을 이용하는 정화를 탓할 수 없다. 편의점 점장이 임금을 주겠다던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에 정화는 자신의 작은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사회가 노동권이라는 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개인의 작은 약속은 맥없이 깨진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안 변하는 것도 있어. 돕는 거는 말 그대로 돕는 거야.”

임금을 받지 못한 채 편의점에서 부당해고된 보람은 정화에게 임금 체불 내역서를 점장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정화는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걱정해 이를 거절하며 보람에게 투쟁 대신 다른 일을 찾아 나서라고 충고한다. 같은 노동자인 정화조차도 보람의 사정을 타인의 몫으로 치부하는 모습에서, 관객은 노동이 타자화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해하게 된다. 노동자들의 연대는 언제든 ‘더 중요한 내 일’이 생기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만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사정은 저 철탑과 크레인과 굴뚝 위에 존재하는 일로 외면받는다.

그러나 극은 무대의 공기를 절묘하게 이용해 노동자와 관객이 다를 바 없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연극 내내 들리는 배우들의 발소리, 직원을 부르는 편의점의 ‘띵동’ 소리, 계속해서 노동자를 옥죄는 전화벨 소리는 극장의 공기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관객은 배우와 함께 첨탑 위로 자꾸만 올라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쩔 수 없이 모두는 큰 약속에 매여 있는 ‘노동자’다.

본사에 부당한 임금 체불을 알리고서야 임금을 받은 보람은 편의점에 들어가 문을 잠근다. 그리고 ‘근로기준법은 지켜라!!’라는 글자가 적힌 포스트잇과 임금 체불 내역서를 편의점 창문에 붙이며 시위한다. 정화는 일하기 위해 편의점으로 들어가야 하고, 편의점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도 가졌지만 보람의 투쟁 현장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편의점 노동자라는 지위는 정화를 안에 들어갈 수도, 밖에 나앉지도 못하게 한다. 정화는 사용자의 편에 서서 노동자의 열악한 지위를 이용할 수도, 끼니를 겨우 건사하는 노동자로서 노동자의 편에서 투쟁할 수도 없다. 그와 연대하듯 학습지 교사 선영과 정화 남편의 굴뚝농성 동료였던 명호는 편의점 문 앞의 벽에 기대어 앉는다. 

“안에 들어간 이유요? 점장님이 이쪽으로 오셔야겠어요. 거기서는 절대로 알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의 연대는 어쩌면 허무하다. 또 반복되고 깨어질 큰 ‘약속’들과 그로 인해 깨질 사소한 ‘약속’들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점장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정화는 또 다른 노동자인 관객을 무대 위로 올린다. 안으로 들어갈 수도 밖에 있을 수도 없으니 그저 경계에서 계속 헤매어 달라고 말이다. 경계에서 헤매는 사람이 늘어날 때 노동 문제는 모두의 ‘약속’이 돼, 사람들은 고공에서 내려와 땅을 밟고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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