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서(사회복지학과·20)
김은서(사회복지학과·20)

코로나 사태로 인해 공식적인 야외 활동을 하지 않은 지 어언 4개월이 지난 것 같다. 서울대 합격 발표가 나고 한동안 숨도 못 쉴 만큼 꺽꺽 울었던 것 같은데 기쁨을 누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전염병이라니, 3년 동안 졸업만 바라왔는데 졸업식도 취소라니. 갑자기 큰 상실감이 물밀듯 몰려왔다. 이전에도 전염병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몇 번 실천했지만, 왠지 이번만큼은 쉽게 사그라들 기세가 아닌 것 같았다. 

조금은 솔직하게, 졸업 이후 그간 느꼈던 감정을 표현해보고 반성도 해보면서 20살 인생의 등을 밝혀보고자 한다.

고등학교 때는 집, 학교, 도서관이 내 활동 무대 전부였다.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장소가 제한적이다 보니 아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정해진 것들에 노력을 쏟고 집중할 수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달려왔던 것 같다. 사실 운도 조금 따라줘서 세상이 내 편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대학이라는 더 큰 무대로 이동하니 세상이 녹록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사회적 거리 두기로 선배들의 도움을 받기 힘든 상황에서 집에 있는 컴퓨터 하나로 대학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이 겁났던 탓도 있는 것 같다. 3월이 돼도 개강했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지진 않았고, 집중도 안 되는 것 같아 자책도 많이 했었다. 짧은 기간 안에 계속 자괴감을 느낀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과제를 내는 족족 점수는 바닥을 치고 전공에 다가가기도 두려운 이 심정을 어디 토로할 데도 없어 속으로 많이 삼키고 괴로워했다. 게다가 신입생이 되기 전 황금 같은 방학을 종일 집에서 낭비했던 탓일까,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이 문뜩 들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를 지배해 갔다. 주위에서는 대학 생활 어떠냐고 많이들 물어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별달리 없었다. 그저 “할 만해요”로 일관 대응할 뿐. 

코로나 블루, 코로나19와 우울감의 합성어라고 한다. 아직도 집에서 자책하고 있던 나에게 왠지 딱 맞는 신조어처럼 다가왔다. 그래, 내가 이렇게 우울해진 건 코로나 때문일 거야. 외부 상황이 날 이렇게 만든 거라고. 환경 탓으로 돌리면 그나마 기분이 나아질까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미적지근한 나의 태도. 고등학교 때 최선을 다해 달리던 그 소녀는 대체 어디로 숨어버린 것인가. 인생의 퍼즐 조각을 모두 잃어버릴까 겁나기 시작했던 순간이었다. 위기의식을 느끼던 와중에 학교생활에 조금씩 집중하다 보니 삶의 조각을 하나씩 다시 끼워 맞출 수 있었다.

대학 글쓰기 강의 과제로 영화를 한 편 감상하면서 오래간만에 마음이 움직여 눈물을 흘려보기도 하고, 신입생 세미나에서 우리 학생들이 시야를 넓히고 세계 무대로 진출했으면 좋겠다는 교수님 말씀에 용기를 얻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단계씩, 느리지만 차분히 배움의 즐거움에 눈을 뜨게 됐고 숨어버렸던 열정 소녀는 다시 힘내보자며 앞장서 줬다. 그렇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소함에서도 배움을 찾고 내 가치를 알아봐 주던 나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처음은 미진하다. 하지만 미진함에 부끄러움을 느껴 도망치는 것은 더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힘들고 괴로운 상황일수록 그 속에서 충분히 빛내고 있는 자신감 가득 찬 ‘나’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창피함으로 가득 차던 20살의 칠판을 깨달음으로 지워나가는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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