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정당 ‘시대전환’, 시대를 전환할 수 있을까?
스타트업 정당 ‘시대전환’, 시대를 전환할 수 있을까?
  • 김용훈 편집장
  • 승인 2020.05.17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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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만난 사람들 | ‘시대전환’ 조정훈 당선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건물 하나가 있다. 행인은 아무 감흥 없이 무심코 지나갈 만한 평범한 건물이다. 건물에는 층층마다 크고 작은 사무실이 모여 있고, 그중 한 곳의 문 앞에는 ‘시대전환’이라 이름이 붙어 있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현판도 못 보고 지나칠 바로 그곳이 정당 ‘시대전환’의 당사다. 당사만큼이나 정당의 이력도 독특하다. 창당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비례연합정당이라는 생소한 길로 국회에 입성했으며, 지향하는 방법론 또한 ‘플랫폼 정당’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을 내세웠다.

지난 15일(금) 당사부터 지향점까지 하나 같이 낯설고 새로운 시대전환을 찾아가 조정훈 당선인을 만났다. 조 당선인은 더불어시민당 소속으로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해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시대전환이 더불어시민당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며 합의했듯, 당선인은 계획대로 당적을 옮겨 시대전환으로 복귀했다. 개원을 목전에 둔 그에게 스타트업 정당 ‘시대전환’의 큰 그림을 묻고, 그 그림 속 청년은 어떤 위치에 그려 넣을 것인지 계획을 들었다.

Q. 창당 4개월 만에 원내 정당이 됐다. 이례적인 성과다.

한 석이나마 의석을 가져 원내 정당으로 등록한 점은 의미가 있다. 헌법상 국회의원 개개인이 하나의 입법기관이기에 300명 모두가 법안을 발의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꽤 큰 권한이다. 원외에서 지적하고 논평을 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직접 법안을 발의하고 목소리를 키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시대전환이 잘해서 얻은 성과라기보다는 시대전환이 던진 메시지가 국민들에게 신선하게 닿은 덕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만 이례적인 성과라기보다 아쉬운 성과라 받아들인다. 시대전환의 이름으로 준비한 더 많은 후보들이 입법 활동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더구나 작년 통과된 준연동형비례대표제는 양당에서는 듣지 못할 다양한 목소리를 소수 정당이 내길 기대한 것이고 국민들은 그에 공감해 선거제 개혁을 지지한 것일 텐데, 결과적으로 꼭 그렇게 되지는 않은 듯하다. 

Q. 시대전환은 기성 정당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시대전환의 강령은 ‘두려움이 없는 시대’다. 넘어지지 않는 시대가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계와 사회가 지금껏 반복적으로 이어온 오래된 담론을 넘어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사실 시대전환이 시대를 전환시키는 것이 아니다. 시대는 이미 전환되고 있다. 다만 그 변화를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기에, 누군가가 그것을 ‘캐치업’하고 의제와 방법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최초로 재난기본소득을 이슈로 던졌고, 이는 실현됐다. 국가가 어떤 구분도 없이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한 첫 사례일 것이다. 소득과 연령 등 어떠한 기준도 없이 그저 국적이 한국이라는 이유로 지급 대상이 됐다. 이것이 굉장히 크고 많은 담론을 이끌어낸다. 국민들은 ‘기본 소득이 무엇이지? 이것이 필요할까? 도입할 수는 있을까? 부작용은 없나?’ 등등 다양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런 담론을 꾸준히 조성해 나가겠다.

Q. 시대전환이 그 역할을 수행하는 데 강점을 갖는가.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입장이 강점일 것이다. “이건 이쪽 당 주장이잖아, 저건 저쪽 당 주장 아니야?” 말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문제를 풀면 되는 것 아닌가. 정치의 목표는 얽힌 문제를 푸는 것이고, 곧 하수구를 뚫는 것이다. 요즘 하수구가 제대로 막혔다. 성장 방법론, 최저임금, 기본소득, 더 나아가서는 남북관계까지 이슈 하나하나마다 굳게 얽혀서 진척이 없다. 이런 하수구를 뚫어내는 데는 어떤 목소리와 방법도 괜찮다. 선악보다도 실용의 관점을 택할 것이다. 

덧붙이자면 결국 의제 설정에서는 ‘일머리’가 중요하다. 누군가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좋은 의도로 엄청난 일을 하는데도, 왜 알아주는 사람이 없지?’ 생각한다. 하지만 기업은 그렇지 않다. 비관적으로 시작한다. ‘이딴 상품을 어떻게 팔지?’ 묻는 것이다. 정책도 그렇게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좋은 정책을 국민들이 어련히 알아주겠지’가 아니라 ‘이 정책으로 국민을 어떻게 설득하지?’가 돼야 한다. 정치를 하는 이들은 의도와 대의가 모든 걸 설명하리라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런 실용적인 접근과 ‘일머리’로 탄탄한 정당이 되고자 한다. 

Q. ‘플랫폼 정당’의 형태도 그러한 실용의 일환인가.

플랫폼은 틀을 뜻한다. 과거에는 해외 유학 다녀온 몇 명, 사회의 원로 몇 명이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면 그것을 받아 적었다. 그게 법이 되고 제도가 됐다. 하지만 이제는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지금은 집단 지성의 시대고 융합의 시대다. 한 영역에 천착해서만은 문제를 풀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영역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조합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다양한 목소리를 한 곳에 모아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틀이고 플랫폼이며 우리가 지향하는 형태다. 노동 문제를 풀 때 노동조합총연맹만 불러서 해결이 되겠는가. 교육자도 참여하고, 각계의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해야 복잡다기한 문제가 풀린다. 지금의 양대 정당은 할 수 없는 일을 하려는 것이다.

아울러 21세기는 그런 플랫폼을 구현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을 가지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공론에 효율적이고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며, 참여하는 이들에게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보상할 수 있다.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Q. 실용을 강조하는 지향은 개인적 경험과 관련이 있는가.

오랫동안 세계은행에서 일했다. 협상도 많이 해봤고, 제3의 중재자이자 자문관으로 적지 않은 나라에서 경제 정책을 실제로 추진·실천·평가해봤다. 그 과정에서 느낀 바가 있다. 대부분 종이, 그러니까 계획으로는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실제 추진했을 때의 결과는 기대보다 훨씬 떨어진다. 현장감이 없고, 상황에 맞춰 변화하는 적응력이 부족해서 그렇다. 이런 경험에서 실행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극단적으로 말해 허술한 계획과 탄탄한 실행력, 탄탄한 계획과 허술한 실행력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무조건 전자를 택하겠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조직에서 기획 역할을 맡아야 똑똑한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행력이다. 시대전환은 그런 실행력과 현장감 있는 사람을 불러 모을 플랫폼이 될 것이다.

Q. 현실의 삶을 개선해준다는 약속은 팍팍한 현실을 사는 청년들에게 매력적으로 들린다.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청년이 느끼는 어려움과 불편함을 듣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길 바라는지 듣고 싶다. 우리가 아무리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 해도 청년들을 대신할 수는 없다. 나는 청년이 아니기에 청년을 이해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사실 청년 스스로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전에는 의중을 알기 어렵다. 결국은 청년이 청년의 문제를 스스로 정의해야 한다. 다만 문제를 정의한다고 곧바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사회의 구조상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는 법과 제도, 거칠게 말하면 힘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 선배 때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정치를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예전 같으면 정치는 다른 것들을 제치고 제일 중요한 사안이자 업무였을 텐데, 요즘은 그저 여러 직업 중 하나가 아닌가. “난 문화, 너는 경제, 쟤는 정치. 각자 잘해보자.” 이런 분위기가 익숙해졌다. 그러니 여러분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것이지,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정치를 하는 것은 속된 말로 ‘가성비’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니 우리에게 청년은 클라이언트다.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듣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힘을 더해주겠다.

Q. 청년의 삶을 개선하는 데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 보는가.

청년의 최대 관심사는 일자리가 아닌가 싶다. 청년이 선호하는 일자리는 아마 공공 부문 내지는 대기업의 정규직일 것이다. 청년의 일부는 실제 바라는 일자리를 얻겠지만, 모두가 그러지는 못한다. 

일자리의 미래가 바뀌어 가고 있다. 이제는 정규직·비정규직의 틀은 쇠퇴하고 플랫폼 노동이 대세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혹은 플랫폼 노동이든 노동의 형태는 오롯이 개인의 선택이 돼야 한다. 내가 일하던 세계은행에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하고 더 많은 임금을 받았다. 고용이 불안정한 데 프리미엄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돼야 한다. 누구는 임금이 적더라도 안정된 직장을 바랄 수 있는 것이고, 누군가는 안정된 직장보다 높은 임금을 바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정규직이 아닌 일자리를 낮춰 본다. 그러니 청년들에게 압박감이 심하다. 삶의 유형이 한정돼 있으니 내가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버린다. 학점을 잘 받아야 한다는 강박감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이걸 깨고자 한다. 노동의 형태가 사회적 신분, 계층에 직결되지 않는 사회가 되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자 한다.

Q. 청년 정치의 필요가 잦게 언급된다. 시대전환은 어떤 입장인가.

다른 정당들은 청년 정치를 배려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배려’라는 단어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미국에서 소외 인종을 배려한다는 것은 흑인이 사회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맥락을 함축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정당들이 공천에서 청년을 배려하고, 의사결정에서 배려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청년이 배제되는 현실을 드러낸다. 그런데 시대전환의 언어에는 배려고 뭐고 없다. 애당초 청년이 만드는 정당이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를 스스로 배려하겠겠나. 오히려 20대 밑의 18세 학생들이나 연장자를 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대전환은 단기간 내에 원내 진입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그 성과가 선거제 변화에 따른 일시적 사건으로 기록될지, 아니면 시대를 바꿀 거대한 흐름의 일부분이 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 판가름은 그들의 새로운 접근법이 얼마나 충실하게 구현될지에 달릴 테다. 개원 직전 마주한 시대전환의 포부가 21대 국회 끝자락에서 어떤 결과물로 개화할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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