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 『뉴턴의 아틀리에』, 과학과 예술의 교차와 융합을 꿈꾸다

분야를 막론하고 학계에서 ‘융합’이라는 키워드가 급부상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중에서도 과학과 예술을 융합하려는 시도들은 미디어 아트나 가상현실 등의 창의적인 결과물을 산출해 냈다. 그럼에도 매우 상이한 연구 방식을 지닌 두 분야의 만남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는 여전히 둘을 이과의 영역, 예체능의 영역으로 표현하는 등 ‘과학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을 구분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리학자 김상욱과 그래픽 디자이너 유지원이 공동으로 집필한 『뉴턴의 아틀리에』는 그런 단정적인 태도의 변화를 유도한다. 

‘뉴턴의 아틀리에’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과학자인 ‘뉴턴’과 작가들이 작품을 창작하는 작업 공간인 ‘아틀리에’를 결합해 만든 제목이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과학의 세계와 예술의 세계를 복합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두 저자는 감각, 소통, 가치, 언어, 도구 등 인간의 인식 체계와 관점을 구성하는 키워드들에 색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물리학자 김상욱은 미술작품의 예시를 통해 ‘예술적으로’ 과학 분야의 키워드를, 디자이너 유지원은 ‘과학적으로’ 예술 분야의 키워드를 해설한다. 각각 예술과 과학이라는, 자신이 전문적으로 알고 있지 않은 학문을 키워드 설명의 중심 맥락에 둠으로써 두 저자는 둘의 경계를 ‘온화하게’ 허물고자 노력한다. 

예컨대 이들은 물리 세계의 기본 단위인 ‘점’이라는 키워드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자연과학의 ‘점’과 모더니즘 회화의 ‘점’은 동일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가? 물리학의 자연법칙과 조르주 쇠라의 미술작품 사이에는 어떤 접점이 존재하는가.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저자 김상욱은 먼저 ‘과학자의 시선으로’ 물음에 접근한다. 그에 따르면 자연법칙을 연구하는 몇몇 학자들은 세상을 점으로 설명하려 한다. 유클리드의 『원론』은 모든 도형이 부분이 없는 점으로 구성된다고 말하고, 데카르트는 나아가 점을 좌표로 기술해 기하학과 대수학을 연결한다. 그리고 뉴턴은 세계의 모든 운동을 “점이 이동하며 만들어 내는 공간상의 도형”이라 기하학적으로 인식하고 수식을 도출한다. 물체의 운동은 점의 형태인 각 물체의 무게중심이 공간을 이동해 특정한 모양을 만드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어 저자는 조르주 쇠라의 회화가 이를 예술의 방식으로 증명한 사례라고 분석한다. 쇠라는 점묘법을 통해 대상을 화폭 위에서 수백만 개의 점으로 묘사해 그렸다. 저자는 쇠라가 이로써 물체를 구성하는 점들이 이동하며 만든 공간상의 도형을 미술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한다. 쇠라의 화풍은 불연속적인 점들이 만들어내는 사물과 풍경의 모습을 아름답게 담아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예술에 대한 관심과 물리학 전공 지식을 접목시켜, 수식으로 존재했던 물리학적 개념이 예술과의 만남으로 구체적인 형상을 갖추는 과정을 그려낸다.

동일한 점 개념을 ‘예술가의 시선’에서는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수많은 원자로 구성된 폰트의 ‘점’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예술작품의 제작 원리와 연관을 맺는가?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 유지원은 화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을 바탕으로 타이포그래피 예술작품에 사용되는 글자의 형성 원리에 접근한다. 그에 따르면 타이포그래피의 글자 크기와 형태를 결정하는 요인은 펜촉의 단면 형태다. 그리고 그 단면 형태는 각기의 펜촉이 찍는 점의 크기와 형태에 따라 달라진다. 작은 점들이 모여 특정한 단면 형태를 이룸으로써 글자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면, 이는 글자의 단면에 찍힌 점의 잉크 원자가 만들어지는 과정과도 연결된다. 쿼크가 양성자와 중성자를 이룸에 따라 원자핵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전자와 만나 ‘원자’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 원자들이 모여 만들어낸 무수한 점들은 타이포그래피 단면에서 ‘글자’라는 형태를 이룬다. 이 글자는 또다시 글자의 의미와 조합돼 ‘텍스트’를 구성한다. 저자는 글자를 이루는 탄소 원자들이 텍스트에 이르기까지 합성되는 과정을 통해, 글자의 크기와 형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고민하게 한다. 글자를 단지 책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관점을 넘어서, 글자의 점들을 통해 과학적 원리와 예술의 연속적인 관계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통해 두 저자가 핵심적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예술과 과학을 분과 학문의 틀에 가두지 않고 통합의 영역으로 끌고 나와, 둘을 파악하는 인식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메세지를 예술 분야 중에서도 미술을 통해 구체적으로 전달한다. 저자 김상욱은 화가 몬드리안의 추상 회화를 예로 들며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사진기가 등장한 후 미술의 판도가 바뀌었음을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진기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 때문에 그간 미술이 추구해 왔던 재현의 가치는 점차 퇴색됐다. 그러자 미술계에서 작품을 관통하는 새로운 주제의식으로, 점·선·면·색채 등의 순수한 조형 요소만으로 화폭을 구성하는 추상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저자 유지원도 과학 이론에 근거해 제작된 예술작품을 언급하며, 기술의 혁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출해내는 방법에 주목한다. 그는 대표적인 예시로 요리스 라르만의 조형예술 작품 「뼈 의자」를 소개한다. 이 의자는 인체의 뼈가 성장하는 과정을 수학적으로 디자인한 작품으로, 라르만은 생물학 방정식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제작했다. 저자는 디자인을 “기계의 복제로 대량생산을 행하는 조형예술 분야”라고 소개하며, 수학과 공학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디자인이 탄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술이 과학을 조우할 때 기존의 작품이 따랐던 전형에서 벗어난 창의적인 작품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두 저자는 과학 기술의 발전과 예술의 발전이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고 역설한다. 그들은 미술작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과학자는 예술적으로, 예술가는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택해 문화예술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저자 유지원은 ‘뉴턴의 아틀리에’가 “경계가 무너지는 공동 공간”의 상징이라며, 이곳에서 “과학과 예술의 속성이 서로 스며든 본연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뉴턴의 아틀리에』는 둘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과학과 예술에 접근하기 위한 진입 장벽을 낮추는 안내서다.

 

뉴턴의 아틀리에: 과학과 예술, 두 시선의 다양한 관계 맺기
뉴턴의 아틀리에: 과학과 예술, 두 시선의 다양한 관계 맺기

뉴턴의 아틀리에

과학과 예술, 두 시선의 다양한 관계 맺기

김상욱, 유지원

440쪽

민음사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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