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 『재난의 세계사』, 과거 속에서 미래의 통찰을 찾다

지난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에 대해 팬데믹을 선언하면서 코로나19는 공식적인 ‘재난’이 됐다. 초유의 위기 상황을 마주한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하루빨리 그들의 삶이 ‘정상’으로 돌아가기를 고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재난의 세계사』의 저자인 루시 존스는 이런 반응에 대해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재난은 끊임없이 발생했으며 앞으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냉정히 말하자면 우리는 현 상황이 ‘비정상’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재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초연함을 견지하면서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재난의 세계사』는 특히 지진 상황을 중심으로 그의 관점을 뒷받침하는 과거 재난의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정보 공유가 중요한 이유=최근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하면서 몇몇 국가의 정부는 국가 이미지 훼손 등을 우려해 피해 현황에 대한 투명한 공개를 꺼렸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맹렬한 위세는 그것이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이 사실은 역사 속 사건이 이미 보여주고 있는 바기도 하다. 

2009년 1월, 이탈리아의 도시 라퀼라 근처에서 연속적인 지진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었으나 지진이 몇 달간 계속됐고, 시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그런 와중 지진에 대한 비공식적인 정보가 난무하자, 과학계와 이탈리아 시민보호국 사이의 소통을 담당하는 공식 정부기관이 출범했다. 그러나 기관의 관료와 전문가들은 그저 지진을 설명하는 그럴듯한 서사를 만드는 데만 주력했다. 시민보호국 부국장은 관련 기자 회견에서 작은 지진들로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발산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은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주장이었고, 회의에 참가한 과학자들은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이 부담스러워 거짓임을 알면서도 정정에 나서지 않았다. 결국 공식 발표와는 달리 같은 해 4월 6일경 무려 규모 6.3의 지진이 도시를 강타했고 정부기관의 발표를 믿은 시민들은 속수무책으로 죽거나 다쳤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전의 지진에서 안전하게 대피한 사람들이었다. 이 사건은 국제 과학단체와 시민들의 공분을 샀고 시민보호국 관계자들은 재판을 받았다. 어떤 재난에서든 합리적이고 투명한 정보 공개와 엘리트 집단의 도덕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적어도 10년 전에 이미 예보된 셈이다.

◇재난 속에서 드러난 인간의 어두운 모습=재난이 잔인한 이유는 그것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수만 년 동안 불규칙한 자연에 맞서 인과관계와 규칙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진화적 특성상 재난처럼 불확실하고 이유 없는 포악함을 견디지 못하고, 늘 신의 처벌과 같은 이유를 만들며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는다. 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지만, 극단적인 재난 속에서 폭력적으로 분출되기도 한다. 

그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간토 지진이다. 간토 지진은 1923년 9월 1일 도쿄와 요코하마에서 발생했다. 강력한 본진과 여진, 화재로 인해 도시는 완전히 파괴됐다. 도쿄에서는 약 40만 채의 건물이 무너졌고 사망자 수는 최소 14만 명이었다. 이런 가운데 당시 일본의 정치권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천황의 건강 악화와 총리의 사망으로 책임을 질 만한 지도자가 없었던 것이다. 지진 무렵에 막 들어선 야마모토 곤노효에 내각은 시민들의 불만이 쌓여 폭동이 일어날 것을 염려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분노는 엉뚱한 곳을 향했다. 일본 내에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고 반란을 꾀한다는 등의 괴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더니 조선인에 대한 무분별한 학살이 자행된 것이다. 자경단이라는 조직이 만들어져 수천 명의 조선인들을 보이는 대로 고문하고 살해했다. 그리고 일본 정부 역시 방관의 형태로 이 학살에 가담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사건이지만, 이것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의 확산과 함께 혐오의 확산을 경고했다. 실제로 인종이나 국적에 따른 무차별적 혐오와 폭력이 전 세계에서 관찰되고 있다. 상실과 실패 앞에서 무언가를 탓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지만, 소수자나 외집단을 희생양 삼는 일도 재난만큼이나 끔찍하다는 것을 간토 지진이 보여준다.

◇여전히 존재하는 희망=그렇다면 재난 앞의 인간은 그저 나약하고, 안일하며 비도덕적이기만 한 존재인가? 1755년에 발생한 리스본 지진 당시 포르투갈 정부가 대처한 방식은 여전히 인간에게 희망을 걸어볼 만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지진의 결과는 똑같이 참혹했다. 근방에 자리했던 건물의 85퍼센트가 파괴됐고 약 4~5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당시 외무장관이던 드카르발류는 진지하고 침착하게 재난에 대응해 이후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한 이 형벌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왕의 질문에 드카르발류는 “죽은 자는 묻고 산 자는 먹이면 된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는 지진 직후 신속히 현장을 복구하고 피난처와 음식을 마련했으며, 재난을 틈탄 범죄를 엄벌해 사회 질서를 유지했다. 그 결과 리스본은 재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저자는 리스본 지진의 사례에서 재난 앞의 바람직한 인간상을 찾는다. 그것은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진심을 다해 분투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드카르발류가 그러했고, 오늘날 코로나19 사태를 이겨내기 위해 사명을 다하는 의료진과 방역 당국, 그리고 성숙한 시민들이 그러하다.

지구과학자인 저자는 2008년경 미국지질조사국의 과학자문위원으로서 ‘셰이크아웃’이란 이름의 지진 모형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저자는 미국 샌 앤드리어스 단층에서 언젠가는 대지진이 일어날 것이기에 이 프로젝트를 수행한다고 말했다. 정확한 시기는 학문적으로 예측하기 불가능하지만 안일한 대처로 발생하는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저자는 과학자로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본인의 이야기를 통해 불가항력적 재난과 미흡한 대처로 발생하는 재해(災害)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자연현상 앞에서 인간은 늘 한계를 지닌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재난의 세계사』는 그럼에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희망은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역사 속에 우리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과오와 정답이 모두 있다.

 

재난의 세계사
재난의 세계사

재난의 세계사

The Big Ones(원제)

루시 존스

권예리 옮김

356쪽

눌와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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