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환 교수(언론정보학과)
이준환 교수(언론정보학과)

일라이자 베일리가 도착한 솔라리아 행성은 인구가 2만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행성이었다. 솔라리아는 무인 혹성을 휴양지로 개척한 행성이라 다른 우주 식민지와 마찬가지로 로봇이 사람을 보조하는 그런 행성이다. 이곳 사람들은 사람을 직접 만나는 일을 무척 꺼려했다. 모든 대화는 홀로그램 화상통신을 통해 이루어졌고 부부만이 아주 이따금씩 필요에 따라 대면을 할 뿐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 같은 방에 있다는 사실을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가 사라진 그 자리는 로봇이 대신했다. 솔라리아 사람들은 이렇게 한평생 로봇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그들에게 사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1957년 출간된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벌거벗은 태양(Naked Sun)』에 등장하는 행성 솔라리아 이야기다. 소설에서 솔라리아는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행성으로 그려진다. 모든 사람은 철저하게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하고 있다. 지구에서 방문한 형사인 베일리가 수사를 위해 솔라리아 사람들을 면대면으로 방문했을 때 그들은 그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끔찍해 한다. 마치 마스크 없이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을 불쾌한 표정으로 외면하는 코로나19 시대의 우리들 모습과 겹쳐져서 새삼 씁쓸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건 단연 ‘비대면’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이 비대면화됐다. 캠퍼스에서의 수업이나 미팅은 물론이고 논문 발표와 심사, 심지어는 입시 면접 등도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것이 막상 생각보다 불편하지는 않다. 우리 사회가 솔라리아 행성이 된 것만 같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개념은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 T. Hall)의 근접학이론(Proxemics Theory)에서 나왔다. 그는 우리 사회의 거리를 친밀한 거리(intimate distance), 개인적 거리(personal distance),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 공공 거리(public distance)로 나눈다. 우리가 사회적 거리를 둔다는 의미는 사람들 사이에 친밀한 거리와 개인적 거리는 만들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던 그 공간이 불쾌하고 불안한 공간이 됐다.

그런데 ‘비대면’이라는 단어가 코로나 이후에 등장한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빠르게 비대면화되고 있었다. 2019년에 가장 뜨겁게 논의되던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비대면 서비스’였다. 작년에 이미 우리는 햄버거를 주문할 때 매장의 점원과 마주하기보다는 키오스크를 이용했고, 모바일로 택시를 부른 후 기사와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은 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모바일 주문배달 서비스를 사용한 이후로는 전화로 주문하는 것이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기업의 콜 센터에 전화하는 것보다 서비스 챗봇과 대화하는 것이 점점 더 편해졌다. 이렇게 우리의 “친밀하고 개인적 공간”에는 이미 컴퓨터와 AI와 같은 정보기술이 사람을 대신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끝나고 일상으로 되돌아가도 비대면 서비스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비대면 서비스는 보다 많은 곳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AI 기술이 부쩍 성장하면서 사회적 동반자로서의 로봇 개발 역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 이들 로봇이 솔라리아의 로봇처럼 우리의 모든 일상을 함께 하는 날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연구자로서 기술을 어떻게 개발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은 무척 흥분되는 일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지독한 개인주의를 재촉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기술이 차지한 ‘친밀하고 개인적인 공간’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지금은 코로나로 피폐해진 정신 탓에 솔라리아 행성의 교훈 따위를 떠올리게 되지만 다 잊고 그 공간이 일상의 체온으로 가득 채워지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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