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준 사회부장
박경준 사회부장

예로부터 내려오는 속담 중에서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좋은 출발이 무조건 좋은 결말로 이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시작의 중요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선제골, 선취 득점을 기록한 팀의 승률은 그렇지 못한 팀의 승률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으며, 긴 논문을 쓸 때에도 연구 배경, 연구 목적을 비롯한 서론이 탄탄하지 못하다면, 결코 좋은 연구로 이어질 수 없다. 이는 정치, 그리고 사회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다. 국회나 정부가 시작부터 각종 논란으로 인해 개운하지 못하다면, 공약을 실천하고, 과제를 해결할 만한 추진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21대 국회는 출범하기 전부터 여러 논란으로 인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 미래통합당 민경욱 후보가 중심이 돼 제기한 4·15 총선 부정선거 의혹부터, 양정숙, 윤미향 등 당선인 개개인의 도덕성에 관한 논란까지 그 범주는 다양하다. 며칠 뒤인 5월 30일 제21대 국회의 임기가 시작되는데, 새로 출범하는 국회가 당면한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 어느 때보다 새로 출범할 국회의 역할이 강조되는 상황 속에서, 여러 자격 논란에 둘러싸인 ‘개운하지 못한 시작’은 유권자, 당선인, 낙선한 후보 그 누구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결코 바람직한 시작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들은 모두 제21대 국회가 시작부터 찜찜하기보다는, 논란으로부터 벗어나 당면한 과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개운한 시작이 되기 위해서는 여야 모두 그들의 당파적 입장을 고수하기보다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당선인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의혹을 규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간접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들의 대표자인 입법부가 그들에게 권력을 위임한 당사자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당선인들로 채워진다면, 국회는 부여된 권력의 정당성이 약화되는 것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고, 또 다시 반복되는 ‘식물 국회’의 비극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4·15 총선에 대해 일부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제기하고 있는 부정선거 의혹도 마찬가지다. 물론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야당 내에서도 소수에 해당하고, 총선을 부정선거라고 간주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국회가 출범하기 전부터 선출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잔존한다면, 당선인들 입장에서도, 총선에서 승리한 여당의 입장에서도 이는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다. 월터 미베인 교수(미국 미시간대 정치학과)가 총선 결과에 대해 ‘통계적 이례현상’(Anomalies)이라고 주장하고, 일부 유권자들이 선거의 공정성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승리한 여당은 부정선거 의혹을 두고 ‘안타깝다’라는 입장 외에 뚜렷한 반박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야당 내에서 통계청장 출신인 유경준 당선인과 이준석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반박이 이뤄지고 있다. 여당은 깨끗하게 의혹을 떨쳐내고 떳떳하게 임기를 시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심해봐야 한다. 먼지가 없더라도 이불을 털어봐서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누구나 비슷한 경험이 있겠지만,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 혹은 긴 여정을 시작할 때, 집에 놓고 온 짐이 있는 것 같다는 의심이 든다면, 결코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갈 수 없다. 가고자 하는 방향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시작이 개운하지 못하다면, 출발할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면, 실패는 불 보듯 뻔한 결과다. 물론,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견해의 스펙트럼은 긍정적 입장에서부터 부정적 입장까지 매우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그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도 모든 국민들은 이번 국회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끝나는 ‘식물 국회’, 매번 반복되는 최악의 국회로 끝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좋든 싫든, 어쨌든 이 국회에 앞으로 대한민국의 4년을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며칠 뒤 임기가 시작되는 제21대 국회가 찜찜한 시작보다는 개운한 시작을 선택하며, 인생에서 처음 행사한 나의 ‘한 표’가 가치 있었던 표로 역사에 남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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