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한일관계의 현재와 미래, 남기정 교수에게 묻다

남기정 교수(일본연구소)
남기정 교수(일본연구소)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끊임없이 이어졌던 일본과의 갈등은, 최근 들어 계속되는 양국 정부의 강경한 태도로 정점까지 치달았다. 도무지 풀 수 없는 매듭 같아 보이는 문제의 실마리를 잡아보고자, 『대학신문』은 지난 19일(화) 국제대학원(140동) 남기정 교수(일본연구소)의 연구실을 찾았다.

역사에서 비롯된 갈등

◇문재인 정부는 한일관계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이는가?=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는 ‘2015년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 비판적인 메시지를 내곤 했지만, 당선 이후에는 현실적인 대응도 함께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5년 위안부 합의의 파기 또는 무효화가 국정 과제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위안부 문제를 외교 문제보다는 인권 문제로 접근해 국내적으로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등 우리의 역할도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기에 일본도 강제동원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는 한국 정부를 이해한다는 비공식적 입장이 있었다. 하지만 강제동원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자, 일본은 이것이 한일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는 신호를 계속 보냈다.

문재인 정부가 일본에 의도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보인다는 비판도 있는데,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문재인 정부라서가 아니라, 우리의 태도를 강제하는 여러 제도적 기초가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의 불법성을 전제로 배상 책임을 묻는 판례는 이미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나온 바 있다. 그리고 이 판결은 헌법 정신과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우리 정부의 해석에 따른 당연한 결과기에, 일본에 문제를 제기하게 된 상황을 문재인 정부가 의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거래로 문제를 덮는 대신, 사법 절차를 통해 해결하는 것을 선택했기에 오히려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 사법적인 판단은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민주적인 원칙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려면 양국 간의 마찰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강제동원 문제에서 비롯된 외교적 마찰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없었나?=우리 정부는 절대로 대일외교에 소홀하지 않았다. 나름의 노력을 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정권 초기에 문희상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특사를 파견해 한국 정부의 기본 입장을 전하기도 했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관련한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국가정보원장이 일본에 가서 설명하기도 했다. 그리고 강제동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도, 사법적 판단은 존중하면서도 한일관계를 중요하게 여겼기에 일본에 외교적 문제와 사법적 문제를 따로 다루는 투 트랙으로 가자는 제의를 했다. 이를 일본이 거부한 것이다. 아베 내각이 강고하게 강제동원과 관련된 한국 정부의 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어떤 협력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나왔기에 상황이 어려워졌다.

일본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2018년 한국 사법부가 내린 판결이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일본의 해석에 큰 수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일기본조약 이후의 한일관계를 ‘65년 체제’라고도 부르는데 조약에 대한 양국의 해석이 서로 다르기에 문제가 제기된다면 다툴 수밖에 없는 구조가 이미 내재돼 있다. 그동안은 서로 해석이 다르다는 전제를 암묵적으로 깔고 있었기에 문제는 없었지만, 이제는 사법부의 판단이 나왔기에 한국은 암묵적인 태도로 일관할 수 없게 됐고, 일본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변화하는 국제정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가 냉각 국면을 해결할 계기가 될 수 있을까?=코로나19는 국제정치의 장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코로나19는 국제정치가 결코 고정돼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줬는데, 이는 우리에게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따르던 기존의 국제 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패권 약화와 중국의 굴기 때문이다. 중국도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내 전염병의 통제에 성공한 데 반해 유럽과 미국은 실패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그동안의 전략을 바꿔 ‘건강 실크로드’*를 도입함으로써 중동이나 아프리카, 심지어는 이탈리아와 세르비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구조가 됐다. 그렇기에 이제는 일본이 더 이상 미일 동맹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게 됐다. 코로나19 이전에 일본은 미‧일 동맹과 유럽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행사가 가능했기에,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 그렇기에 그동안은 문재인 정부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도 무시, 수출규제 등 누르기 전략으로 일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전략적 고려를 바꿔놓았기에 일본은 우리의 문제제기에 강경한 태도로 일관할 수 없을 것이고, 이는 곧 우리에게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이외에도 다른 기회가 있나?=일본 내 아베의 입지가 약해지고 있다는 점도 하나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아베노믹스의 성적도 저조하고 외교적으로도 뚜렷한 성과가 없는 아베 내각은 업적이 없는 말로를 맞을 위기에 놓여있다. 아베의 입장에서는 한반도에서 업적을 세우는 것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이다. 일본 외교의 마지막 숙제로 남은 납북자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북일 국교의 정상화를 이뤄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아베의 입장에서도 조금씩 노력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과 협력할 수 있다는 여지가 보인다는 등 예전에는 아베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 기대하기 어려웠던 말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그 자체로 일본의 태도가 유연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이 메시지가 진지한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여러 전략적 측면에서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한국도 전략적인 마인드로 이런 변화를 받아들인다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코로나19가 열어준 기회다.

포스트 코로나와 한일관계

◇그렇다면 우리는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중견국 외교’를 통해 일본과 새로운 외교형식의 장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각자 코로나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여러 문제점을 보인 탓에, 미국과 중국 중심의 국제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국제 질서가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K방역’을 통해 국제적 위상을 높인 한국은 일본과 협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거버넌스를 만들어 볼 수 있다. 군사적, 경제적 질서를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어도, 방역은 생명의 문제이자 재산의 문제기에 방역 거버넌스로는 모두를 모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투명성도 가진 한국과 일본이 앞장서서 시스템을 만든다면, 다른 나라들도 같이 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쌍두마차처럼 끌고 갈 기회가 생긴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각각 단독으로 시스템을 만들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협력의 장이 펼쳐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문제는 한국과 일본이 역사적 문제로 인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장기적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입장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된다면 역사 문제와 외교 문제를 투 트랙으로 다루는 것이 가능해지고 코로나19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양국이 주도적으로 룰과 거버넌스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상황에 반기를 들 나라도 딱히 없는 코로나19 국면이 주도권을 쥐고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과 우리가 협력할 가능성이 있을까?=지금 한일관계에서는 충분한 가능성이 보인다. 올해 일본 외교청서에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라는 표현이 다시 들어왔다. 이는 과거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중요도가 낮았기에 지금까지 등한시되던 한일관계의 중요성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됐다는 것을 시사한다. 일본이 한일관계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일본과 대화할 기회가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총선에서 한일 역사 문제를 풀어낼 의지를 가진 인물들이 대거 당선된 만큼, 제21대 국회는 지금의 기회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일본을 설득하고, 문제를 매듭짓자고 접근하면 일본도 문제를 더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반도에 입힌 깊은 상흔만큼 무겁게 새겨진 민족적 분노는 매년 3‧1절마다, 그리고 광복절이 돌아올 때마다 되살아나 한일관계가 넘어야 할 산의 높이를 체감케 해준다. 하지만 한일갈등은 경제적 측면에서도 외교적 측면에서도, 이젠 분노만으로는 미뤄둘 수 없는 문제기도 하다. 기존의 국제 정세 아래에선 도무지 해결할 길이 없어 보이던 문제가, 코로나19가 갑자기 열어준 기회의 문을 통해 이번에야말로 해결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건강 실크로드: 중국의 경제권 구상 계획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건강‧보건 분야까지 확대하는 방안

 

사진: 이연후 기자 

opalho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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