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삽화: 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달밤」, 「복덕방」, 「영월영감」 등의 작가 상허 이태준은 여러 작품에서 낡고 잊히거나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에 의해 사라져가는 조선말에 애정을 가졌고, 낡고 사라져가는 것을 표상하는 노인을 그린 다수의 소설을 창작했다. 「고완품과 생활」이란 수필에서는 무용하거나 생명력이 없는 느낌을 주는 ‘골동품’이란 표현 대신 ‘고완품’이라는 표현을 썼다. 고완품에 대한 애정 역시 고고한 품격을 지닌 옛것을 숭상하는 그의 상고주의적 태도를 잘 보여준다. 이태준이 1933년부터 1946년까지 기거한 고택으로, 현재는 전통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는 성북동의 고즈넉한 한옥 ‘수연산방’은 이태준의 이러한 정신이 어른거리는 공간이다. 

수연산방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북동 주변은 다양한 문화유산과 근현대 예술인들의 옛집이 많아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린다. 수연산방에서 불과 7~8분 정도만 걸으면 성북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문화공간인 간송미술관이 나온다.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문화재와 유물을 보유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이다.(1938년 조선의 빛나는 보배를 모아두는 집이라는 뜻의 ‘보화각’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1966년 이후 간송미술관으로 개칭되었다.) 특히 간송 선생이 한글 창제 원리가 담긴 『훈민정음 해례본』(국보70호)을 찾아낸 일화나 친일파 집의 불쏘시개로 영원히 사라질 뻔한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을 아궁이에 넣기 직전 구출했다는 극적인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태준은 위의 수필에서 그저 옛것을 완상하거나 소장하려는 것은 돈과 시간을 들여 자신의 서재를 묘지로 만드는 일이라고 경계했다. 간송 전형필이 일제강점기에 막대한 재산을 쏟아 문화재들을 수집한 것은 단지 탐미적 대상에 대한 소장욕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 점에서 일제강점기에 사라져가는 것들에 애정을 가졌던 이태준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 며칠 전 간송미술관이 보물로 지정된 불상 2점을 경매에 내놓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누적된 재정난으로 인해 소장품을 매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간송의 장남인 전성우 전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의 별세 후 막대한 상속세가 부과되어 재정난이 악화됐다고 알려졌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사립미술관이나 사립박물관은 누군가가 수집하지 않는다면 사라질 것들을 수집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와 의의가 있다. 더구나 일제강점기에 문화유산을 지켜내기 위해 사재를 털어 유물들을 확보했던 간송의 뜻을 생각한다면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에서는 공공기관이 나서서 매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경매에 출품된 불상이 사유재산인 만큼 사유재산에 대한 공적인 개입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경매에서 개인에게 낙찰될 경우 문화재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이 가로막힐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간송미술관의 소장품 경매는 한 차례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고, 이번 사태는 비단 간송미술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간에서 보유한 문화재들의 관리와 보존의 문제와도 관련돼 있다. 무엇보다 사라져가는 것을 보존하고자 했던 간송의 정신이 지켜지기를 바란다.

 

유예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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