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루판 여행, 부끄러운 기억의 소환
투루판 여행, 부끄러운 기억의 소환
  • 대학신문
  • 승인 2020.05.24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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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 강사(협동과정 미술경영)
김찬동 강사(협동과정 미술경영)

코로나19로 인한 긴 휴관을 끝내고 뮤지엄마다 제한적 개방에 나서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세계문화관을 새롭게 조성하여 이집트,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 등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 대한 관심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박물관을 찾았다. 일차적으로는 새로 단장한 아시아관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됐지만 어쩌면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부끄러운 과거의 특별한 기억이 필자를 그곳으로 소환해 내었는지도 모른다.

여행의 즐거움은 일상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접하게 되는 특별한 경험에 있다. 여행지의 사람들과 다른 문화를 접하며 삶의 지경을 넓히는 일은 참으로 소중한 자산이다. 패키지 여행의 경우, 대개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정해진 코스를 돌며 엇비슷한 곳에서 인증샷을 찍고 오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특별한 목적의 여행은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다채롭고 밀도 있게 진행된다. 여행지에 대해 아는 만큼 그곳에서 얻는 경험과 지식은 확장된다. 

필자는 1990년대 초 문화계의 지인들과 두 번에 걸쳐 천산남로와 북로를 따라 실크로드를 여행하였다. 실크로드에 대한 관심과 로망은 순전히 NHK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덕분이었다. 낙타 방울 소리와 키타로(喜多郎)의 메인 테마곡인 〈caravansary>로 시작되는 다큐멘터리는 신비로운 세계로의 초대였다. 당시는 수교 초기여서 중국 자체가 매혹의 땅이었다. 특히 신장 위구르 지역은 교통이 불편한 오지여서 그곳을 찾는 한국인들은 거의 없었다. 현재는 중국이 육로와 해상의 실크로드를 재건해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고자 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펼치면서 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고속철도가 놓인 상황이니 격세지감일 뿐이다. 

당시의 실크로드 여행은,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필자의 인생관을 바꾸어 놓을 만큼 큰 경험이었다. 서양식 교육과 좁은 한반도 안에서 굳어진 ‘우물 안 개구리’ 식 사고의 벽돌들이 드넓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만나 여지없이 무너지던 경험이었으니 말이다. 둔황이나 쿠차 등 모든 곳이 다 흥분과 경이의 공간이었다. 서유기의 배경인 화염산이 있는 투루판 여행은 참 부끄러운 자신을 돌아보게 한 특별한 경험이었다. 투루판에는 불교 벽화와 불상으로 가득한 베체클리크 천불동이라는 유명한 유적지가 있다. 우리 일행이 그곳에 도착한 날은 공교롭게도 섣달그믐이어서 모든 동굴의 문은 육중한 자물쇠로 잠겨있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관리인도 부재중이어서 가이드를 통해 관리인의 부인에게 개방을 사정했는데, 부인이 커다란 도끼를 들고 와 자물쇠를 부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너무 미안한 마음과 함께 문화유적을 이렇게 다루는 관리체계의 허술함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은 그다음 순간에 벌어졌다. 문을 열고 들어간 동굴 내부는 아무것도 없는 흙벽뿐이었다. 그러니 관리인의 부인은 그렇게 용감한 행동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곳의 수많은 유물은 20세기 초 영국, 독일, 러시아, 일본 등 제국주의 탐험대들에 의해 대규모의 약탈이 자행됐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문을 열자고 했으니 관리인의 부인은 우릴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했을까? 더 어이없는 사실은 그곳에서 약탈된 유물들의 일부가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의 오타니(大谷) 탐험대가 약탈해 온 유물들의 일부를 조선총독부가 관리해 오다가 해방을 맞는 바람에 일본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그대로 남겨놓은 것이 그 연유이다. 그것들이 현재 아시아관에 전시되고 있는 유물들인 셈이다. 여행 중 저지른 무지의 소치를 생각할 때면 열정만 앞섰던 젊은 날들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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