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기고 | 중앙동아리 ‘총문학연구회’

풍경은 밤과 비슷하고 사람들은 조금 줄었을 뿐인데 왜인지 온몸의 감각이 온통 생경하다. 계산대를 만지는 느낌은 더 선명하면서 서늘하다. 방학 동안에만 대타로 심야 시간대를 맡기로 해 벌써 삼 주나 지났는데 여전히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다. 아직도 밤의 편의점은 내게 낯설다. 

대체로 조용하다. 이 거리는 엄청난 번화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무실이 몰려있는 거리도 아니고, 그냥 어정쩡한 느낌의 서울 동네이기에 밤의 생존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어둠 속 어딘가에서 가게로 오는 손님들은 드물기에 본의 아니게 더 유심히 보고 관찰하게 된다. 

그들이 편의점 안에서 할 행동에 대한 예측에 가장 도움이 되는 지표는 몇 명이 함께 들어왔는가이다. 이 시간까지 세 명 이상의 그룹을 지은 손님들은 십중팔구 술자리에서 넘어왔기에 대부분 취해있다. 한 명이 뭔가를 사라고 고성을 지르고 나머지는 뭐가 그리 웃기는지 마구 웃어댄다. 껌 통을 통째로 쓰러트리거나 뭔가를 발로 차지만 않는다면야 그런 왁자지껄함이 나쁠 건 없다. 둘인 손님은 남녀이거나 남자 두 명일 때가 많은데, 남녀는 대체로 말없이 콘돔을 사가며 왜인지 괜히 나를 뻔히 쳐다봐 나까지 불편하게 만든다. 남자 두 명은 역시 취해있으나, 보통 왁자지껄하기보다는 진지하게 헛소리를 하거나 싸우는 경우가 많다. 후자의 경우는 조금 곤란하다. 둘 중 누가 잘못했냐고 물어보며 화를 내던 사람도 있었다. 

여기까지는 경험을 쌓으며 누적된 데이터로 어느 정도 파악을 해 대응이 가능하지만, 혼자인 손님들은 정말 예측이 어렵다. 먼저 취객. 말없이 들어와 물건을 카운터에 쓱 던지고 다시 가져가는 매너 없는 부류와 통제를 해 줄 주변인이 없어 행패를 부리는 부류가 있다. 물론 둘 다 기분이 나쁘다. 전자의 경우는 마음을 수습해야 하고, 후자의 경우는 편의점을 수습해야 한다. 

이들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 취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홀로 스르륵 들어와 오랫동안 머무는 손님이 가끔 있다. 직장인도 아닌 것 같은데, 이 시간에 술도 마시지 않고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도 아닌 곳에서 나타나 이 편의점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것일까. 집에 있다가 나온 건가. 그렇다면 왜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굳이 편의점 안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있는 것일까. 여기 오기 전 저런 옷차림을 하고 머문 장소는 대체 어디인 걸까.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와서 저토록 절망적인 표정으로 핸드폰에 눈을 붙일 듯한 자세로 라면을 먹는 걸까. 갑자기 핸드폰을 내려놓더니 창문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나는 그런 우울한 사람들의 삶이 향하는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두고 수많은 가설들을 세워본다. 이를테면, 야근을 끝냈으나 집은 멀고 막차는 끊겼는데 택시비가 아까워 여기서라도 머무는 것일까.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 연인과 시간을 보내다 갑자기 뭔가가 잘못되어 홀로 튕겨져 나온 것일까. 어딘가로 떠나기엔 너무 바빠서 이런 곳에서라도 특이한 휴식을 취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주변 사람도 직업도 없는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버린 외톨이인 걸까. 여럿이 오거나, 취해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그들은 표정이 없고 어떤 사적인 단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이런 ‘취하지 않은 채 혼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찰과 상상은 어느새 이 이상한 새벽 편의점 알바 중 나의 최대 소일거리가 되어버렸다. 의식하지 못한 새 나의 시선은 그들에게 고정되어 있다. 물건만 사서 바로 나가버리는 손님일지라도 나는 그들이 스스로 조금도 공개해주지 않는 삶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그리고 나는 이들이 가리고 있는 비루한 삶을 자꾸만 침범하고 싶어진다. 지금 입고 있는 그 옷은 어디서 사서, 왜 하필 지금 입고 있는지까지 온통 내 마음대로 이유를 만들고 찾아내려 한다. 저 과격하게 접힌 카라는 저 사람의 연인이 바람기에 화가 나서 구겨버린 것 아닐까. 저 절뚝거리는 걸음은 그가 골목에서 운 나쁘게 마주친 깡패들에게 맞은 흔적이 아닐까. 

지금 또 누군가가 홀로 걸어 들어온다. 이 사람은 다른 새벽 인간들보다 조금 더 개성이 넘치고 자주 모습을 비춘다. 매번 비슷한 세미 정장을 입고 무표정하게 들어와 캔커피를 사서 편의점 밖 벤치에 앉아 마신다. 꼭 담배를 두 개비에서 세 개비정도 곁들인다. 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자식들과 아내를 해외로 멀리 떠나보낸 기러기 아빠일까 아니면 밤업소와 관련된 일을 하는 호스트일까. 아무튼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마도 아닐 것이다. 내가 그와 대화를 하면 어떨까. 그의 상처받은 삶을 내가 보듬어줄 수 있을까? 어느 화창하고 기대감 가득한 날에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와 대화하고 손 내밀어주고 싶듯, 그의 외로운 취사에 나는 끼고 싶었다. 더러운 편의점 의자에 나란히 앉아 당신은 어떤 빛을 쫓았는지 그 빛이 꺼져버렸는지 아니면 그냥 길을 잃었는지. 우리는 비록 서로를 모르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나는 새벽의 수많은 사람을 보아 왔다. 그는,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중에서도 가장 깊고 어두운 사연을 가진 인물이었고…새벽의 공기 속에서 나는 그의 충분한 대화 상대가 되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가 앉아있을 때 어쩌면 나는 카운터를 잠시 비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창 하던 와중에 그가 물건을 골라 카운터 앞으로 온다. 나는 일어서서 그가 내미는 물건을 집는다. 이상하다. 캔 커피가 두 개다. 내가 한창 그 추가된 커피 캔에 대한 추측을 시작하려는 찰나 그는 처음으로 내 앞에서 입을 뗀다. 그리고 말한다.

“올 때마다 표정이 많이 지쳐 보이는데, 한 잔 마셔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얼굴을 본다.

이태윤(사회교육과·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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