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웅 교수(역사교육과)
김태웅 교수(역사교육과)

최근 학부 학생들을 인솔해 서울 정동과 청계천 일대를 답사했다. 물론 발열 여부를 검사하고 거리두기에 유의하였다. 답사를 다녀온 뒤 학생들의 답사 소감문이 속속 들어왔다. 그 가운데 어느 학생은 답사에 두 번 참가했음에도 답사의 이유를 잘 몰랐는데 이번 답사를 통해 그 이유와 의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사정을 들어본즉 답사 과정에서 많은 정보와 지식을 전수받았지만 정작 답사를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답변은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정동 답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답사란 그 사건이 그때 왜 일어났는가와 함께 왜 여기서 일어났는가를 파악하고자 할 때 가장 우선해야 할 기본 작업임을 강조했던 내 설명이 조금은 가슴에 와닿았던 듯했다. 그럼에도 그 학생의 이러한 토로는 나에게는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우리 선생들이 당위 논리에 빠져 역사 교사 지망 학생이라면 답사의 이유와 의미를 당연히 알겠지라고 기대했지만, 이는 처음부터 성립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 자신의 경험에 몰입된 나머지 학생의 처지에서 그들이 겪었거나 간접적이나마 체험했던 과거의 흔적들, 그들이 알고자 했던 것을 무심코 넘긴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 50대와 60대 세대는 어려운 시절이지만 배고픔이 점차 가시는 시대에 이른바 밥상머리 교육을 받고 성장했다. 할머니로부터 베개 밑 구전 설화를 전해 듣거나 아버지, 어머니, 큰아버지로부터 ‘6·25동란’ 때 집안 어른들이 겪었던 참혹한 이야기, 인민학교 시절 경험담을 나의 과거인 양 듣고 자랐다. 이들 어른이 늘 가까이 계셨고 말씀이 별로 없었지만, 간혹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끔씩 당신들의 체험을 회고하시곤 하였다. 지금도 이런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 경험담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인상적이기 때문인가 싶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과거 이야기의 의미라든가 역사 현장의 중요성을 몸으로 익혔던 것 같다.

그러나 현재는 그렇지 않다. 모든 게 너무나 빨리 변하고 각종 지식과 정보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과거의 망각으로 넘어가고 있다. 어쩌면 구세대와 신세대의 기억 단절은 당연할는지 모른다. 그러하니 역사의 현장을 같이 찾고 성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물며 역사에 관심을 갖지 않는 이로서는 구세대의 이런 안타까움이 기억의 강요로 비칠 수 있다. 1980년 5월만 해도 이러한 단절은 뚜렷이 나타난다. 50·60대 세대에게 광주는 동시대의 역사이자 자신의 역사지만 현재 신세대에게는 전축판의 흘러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설화일 수 있다. 따라서 이를 두고 같은 구세대 간에도 이견이 나오거니와 시대를 달리하는 세대 간의 기억 단절은 말할 나위가 없다.

주지하다시피 물리적 시간이 단절되면 될수록 서로 같이 디뎌야 할 기억의 공간은 더욱 넓어질 필요가 있다. 공간을 같이 밟아야 논쟁도 하고 이해도 해 가며 서로의 간극을 좁히거나 차이를 인정할 거리가 생기지 않을까 한다. 기억의 공간이 매몰되거나 훼손된다면 물리적 시간의 단절은 물론이고 역사적 시간의 간격마저 더욱 커져 전망조차 불투명해질 수 있다. 물론 역사 수업이 이러한 기억의 단절을 억제하는 효과를 발휘할는지 모른다. 그 역시 나의 역사가 아니라면 한낱 입시 준비를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효용성이 떨어지면 역사 저편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따라서 말로는 세대 간의 소통을 역설하면서도 실제로는 후속 세대의 고민과 열정을 경청하기보다는 내 삶을 ‘라떼는 말이야’라는 방식으로 일방적인 전달만 하고 있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나이가 들수록 주머니는 열고 말은 적게 하라는 어느 노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제대로 실천해 봤는가. 자식들과의 대화에서 들었던 답답함을 또다시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재현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서로에게 경청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자리가 자주 마련돼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마음 한 켠이 무거운 것은 무엇 때문인가. 정작 내 주변에서 살아 숨 쉬는 우리 학교의 역사를 학생들과 공유해 보려고 했는가. 그리고 그런 기억의 공간을 제대로 만들고 있는가. 최근 서울대의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관이 학생들이 접근하기에 편한 장소에 들어서지 못하고 공간 부족을 이유로 외딴곳에 부지를 선정했다는 소식이 나를 우울케 한다. 학생들이 편안하게 접근해 쉽게 기록물에 접하지 않은 채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5월을 보내면서 무거운 마음을 떨치기보다는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문제일까. 보여주기식 박제화된 기억의 공간이 아니라 신·구세대가 같이 숨쉬며 소통의 매개고리로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의 장소로 거듭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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