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驛馬)의 삶
역마(驛馬)의 삶
  • 대학신문
  • 승인 2020.05.31 04: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지수(환경대학원 석사과정)
서지수(지구환경과학부 석사과정)

얼마 전, 모임에서 처음 만난 분에게 사주를 봤다. 사실 나는 유사 과학을 아주 싫어하고 미신이나 민간요법들도 잘 믿지 않는다. 하지만 사주가 빅데이터를 이용한 통계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어서, ‘얼마나 잘 맞나 보자’라는 생각으로 그저 재미 삼아 사주를 봤던 것이다. 그가 말했다. “1월, 3월에 어디 멀리 다녀오셨나요?” 나는 놀라서 반문했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그는 내 사주팔자에서 1월과 3월에 ‘역마’가 등장했다고 알려줬다. 역마란 한자어 그대로 ‘역(驛)’과 ‘말(馬)’이라는 뜻이다. 역은 조선 시대에 정거장 같은 개념이었다. 파발꾼이 말을 타고 이동하다가 쉬어 가던 곳으로, 말이 지치면 역에서 다른 말로 갈아타기도 했다. 그래서 ‘역마’는 계속 이동하며 떠돌아다니는 존재를 의미한다. 그가 나더러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던 것은 내 사주에 나타난 ‘역마’ 때문이었다.

내 사주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눈치챘겠지만, ‘역마’다. 돌이켜보면, 나는 여행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 대학생 때는 방학마다 ̒내일로̓를 이용해 기차가 갈 수 있는 곳을 도장 깨기라도 하듯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만 20세가 되자마자 해외여행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미국, 캐나다,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일본, 중국, 호주, 뉴질랜드, 베트남, 유럽, 몽골 등 시간될 때마다 여행을 하러 쏘다녔다. 내가 대학생 때 열심히 알바했던 가장 큰 이유는 어디로든 여행을 가기 위해서였다. 즉흥적이고 발길 닿는 대로 하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그래서인지 더 쉽게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어서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역마’는 비단 여행을 하는 데에서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분야에서도 나타났다. 어렸을 적부터 장래 희망을 이야기하면 손가락을 다 세고도 모자랐고, 여전히 지금까지도 하고 싶은 것과 공부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다. 나는 선택과 집중으로 한두 개만 깊게 파고드는 것은 잘하지 못한다. 대신 산발적으로 다 조금씩 해 버리는데, 소셜 댄스인 스윙을 배워서 공연했고, 유도를 배워서 대회에도 나가 봤고, 연극이 하고 싶어서 동아리에 들어갔고, 뮤지컬도 하고 싶어서 극단에 들어가 대학로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느닷없이 베이킹을 시작해서 친구 생일에 케이크를 선물한다든가, 갑자기 미싱기를 사서 옷을 만들다가, 한복에 꽂혀서 한복을 만들고, 입고, 사진을 찍고, 그러면서 모델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아주 프로페셔널하지는 않더라도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조금씩 건드려 보고 경험하는 것 자체가 참 재미있었다.

사주에서 ‘역마살’은 ‘역마처럼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액운’이라는 뜻으로 그 액운이 사람을 지치게 하고 파멸로 이끈다고 하는데, 어쩌면 한 분야에 진득하니 깊게 파고들지 못하는 내 모습은,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역마살’에 아주 잘 부합한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저것을 거의 동시에 하면서, 또 새로 해볼 것을 계획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쉽게 지치고 힘들어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지치고 힘듦 속에서 에너지가 피어난다. 내가 새로운 것을 도전할 때 시도하는 용기가 나에게 주는 뿌듯함과, 처음 해 보는 것에서 어느 정도의 경지까지 오르게 됐을 때 나타나는 성취감에서 특히 에너지가 솟구친다. 또 이 과정에서 새로운 분야의 다양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새로운 사람들과 낯선 교감을 통해 발생하는 긍정적인 에너지 역시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아주 큰 힘이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