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삽화: 김지온 기자 kion27@snu.ac.kr

지난 27일(수) 6·25전쟁의 전쟁 영웅이자 한편으로는 친일파 경력을 비난받고 있는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 논란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달 중순 국가보훈처는 앞서 백 장군을 찾아가 사후 서울현충원 안장이 어려움을 밝히고 대신 대전현충원 안장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런데 여권 일각에서는 백 장군의 현충원 안장 자체를 반대하며 현충원 내 친일 인사 ‘파묘(破墓)론’ 등 강경한 주장을 내세웠다. 보훈처와 정부의 조처에 대해 군은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재향군인회는 여권의 움직임에 대해 “국군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기도 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 몇몇 야권 인사들도 백 장군을 균형 있게 평가해야 한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사실 백 장군을 둘러싼 논쟁은 최근 10여 년간 여러 차례 불거진 바 있다. 2011년 8월 서울현충원이 백 장군에게 사후 서울현충원 내 안장을 약속했을 당시에도 지금과 비슷한 논쟁이 벌어졌다. 현충원 안장을 찬성하는 측은 창군 과정과 6·25전쟁에서 백 장군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 찬성측은 특히 전쟁 영웅으로서 그의 공로는 결코 폄훼될 수 없는 것이라고 본다. 반면 안장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백 장군이 해방 이전 만주지역의 조선인 빨치산을 소탕하는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기 때문에 현충원 안장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친일반민족행위 경력이 너무나도 명확하므로 조국 독립을 위해 힘쓴 순국선열들과 함께 묻힐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립은 현충원 안장 논쟁뿐만 아니라 백 장군의 국군 최초 원수 추대에 관한 논쟁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백 장군을 국군 원수로 추대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친일파 경력자를 국군 최초 원수로 추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 곳곳에서 제기되었다. 

최근 백선엽 장군을 둘러싼 여러 차례의 논란은 백 장군 개인의 과거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백 장군을 포함한 국군 창군 초기 과정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관한 서로 상반된 견해가 녹아들어있다. 친일파 경력이 있으면서도 창군 및 전쟁 과정에서 상당한 공로가 있는 이들은 백 장군뿐만이 아니다. 국군은 창군 과정에서 일본제국 육군, 만주군, 간도특설대 출신자 중 다수가 주요 창군 멤버로서 관여했고, 1949년 좌익 출신자들에 대한 대규모 숙군을 거치며 강렬한 반공주의가 그들의 과거 이력을 가렸다. 그들 중 일부는 6·25전쟁을 겪는 동안 여러 차례 전공을 세우며 계속해서 군부의 주축으로 자리잡았고 국군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가장 유명한 전쟁 영웅인 백선엽 장군의 경력만이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백 장군의 공과는 곧 대한민국 초기 국군 지휘부 대부분의 공과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백 장군을 비롯해 해방 이후부터 대한민국 초기 단계까지 창군과 전쟁에 큰 역할을 했던 이들은 확실한 명암이 있지만 밝은 쪽과 어두운 쪽을 구분해서 보기란 참으로 지난한 일이다.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한국 현대사의 초기 단계에서 활약한 이들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인물 연구일 것이다. 그들이 살아온 역사적 배경, 그 속에서 그들이 택한 역사적 선택, 그리고 그 역사적 결과에 대한 전반적인 학술적 분석이 필요하다. 이러한 학문적 연구를 바탕으로 질곡의 한국 근현대를 살아간 인물들에 대한 더욱 심층적인 역사적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백 장군이 당장 어디에 묻힐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어떠한 사람이었다고 보다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시기가 오길 바란다.

 

 

 

박훈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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