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김대은 기자
문화부 김대은 기자

특집 기사의 소재를 고민하던 도중, 예전에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소집해제된 지 벌써 2년이 지난지라 기억을 떠올릴 겸 당시 자주 방문하던 인터넷 커뮤니티 ‘공익 갤러리’를 방문했다. 기사를 내기 위해서는 실제 당사자들의 멘트가 필요했으므로 제보를 받기로 했다. 먼저 공익 갤러리에 제보를 받는다는 글을 올리고, 『대학신문』에 올라오는 기사인 만큼 서울대생의 제보도 필요하다 생각해 에브리타임과 스누라이프에도 제보 글을 올렸다. 사이트마다 서너 명씩 도합 열 명 정도의 멘트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한 기대는 완전히 오산이었다. 올해 초부터 제보를 받기 시작해 벌써 한 계절이 지났지만 세 사이트로부터 단 한 명의 제보도 받지 못했다. 결국 부랴부랴 훈련소 동기들과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사회복무요원 출신 형동생들, 심지어는 게임 길드 단체 채팅방에까지 연락을 돌려 열 명 내외의 취재원을 확보했다.

그토록 인터넷 익명 게시판을 통해 사회복무제도의 부당함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이들이 왜 정작 공식적인 창구를 통해 문제를 제기할 기회를 마다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 이유 중에는 언론에 대한 불신이나 개인 신상 노출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제도 개선을 원한다면 어느 정도 용기를 내봄직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만 의견을 교환하다 보면 폭넓은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는 중립적인 입장은 사라지고 가장 극단적인 말들만이 남게 된다. 이를테면 공익 갤러리에는 사회복무제도를 일제강점기의 강제 징용에 빗대어, ‘우리나라 내의 강제 징용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일제의 강제 징용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같은 글이 수백 개의 추천을 받기도 한다. 이번 기사에 많은 도움을 주셨던 군인권센터 방혜린 상담지원팀장은 “사회복무요원으로부터 들어오는 상담 중에는 ‘저는 장애인을 혐오하는데, 장애인 수발 업무는 혐오 업무이므로 제가 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같은 것도 있어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라고 말했다. 만약 이러한 말들이 공개적인 공론장에서 다뤄졌다면 틀림없이 커다란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얼마 전 군 복무 중인 수리과학부 학생이 자살했을 때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학교 커뮤니티에 ‘학내 구성원이 자살을 했는데 연석회의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노동자 파업에는 잘만 연대하면서 이런 문제에는 침묵한다’ ‘운동권들의 스펙 쌓기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같은 글과 댓글이 수십 개의 추천을 받은 것이다. 직접 연석회의에 나가 공식적으로 발언할 생각은 않고, 본인이 관심 있는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는 이유로 익명성의 뒤에 숨어 인신공격을 자행한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가 마련된 데에는 지난 수십 년 간 감옥행을 자처하고 단체를 조직해 활동했던 수많은 병역거부 운동가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다. 사회복무 문제도 마찬가지다. 병역거부자 임태훈 씨가 설립한 군인권센터도 좋고, 사회복무제도 폐지 헌법소원을 주도한 이다훈 씨의 강제노동청산위원회도 좋다. 진정으로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사회를 점차 낫게 만드는 사람들의 활동을 트집 잡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과 연대하고 단체를 조직해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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